서브컬처가 대중문화를 끝내버릴 것입니다. 대중문화의 에필로그에 선 여러분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9p 에필로그)
최근의 인터넷에서 언급되는 흥미로운 주제가 있습니다.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보긴 하지만 오타쿠는 아니지 않느냐.”. 그 대상은 오타쿠의 경계선에 서 있는 작품들입니다. 「진격의 거인」, 「원펀맨」, 「강철의 연금술사」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네요. (중략) 재미있는 점은 오타쿠들은 오히려 오타쿠가 되기 싫다고 하는 사람보다도 「진격의 거인」 따위를 보고 자신을 오타쿠라고지칭하는 사람들을 더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가짜라고 부르죠.
(17p 1장 서브컬처의 시대)
사실 오타쿠가 볼 법한 문화라면 모두 오타쿠 컬처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음악에서도 오타쿠들이 흔히 들을 법한 음악이 있습니다. 그것을 J-POP이라고 부르면 특유의 차이점을 짚기 어렵기 때문에, 오타쿠들은 J-POP이 아닌 보컬로이드 음악, 혹은 애니 음악 등으로 따로 검색하곤 합니다. 오타쿠 문화를 따로 정의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요. 인터넷 방송도 오타쿠들이 보기 시작하면 오타쿠들을 위한 미소녀 캐릭터를 동원합니다. 버츄얼 유튜버는 그렇게 등장했지요. 어느 문화든, 오타쿠들이 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오타쿠 컬처에 편입되게 됩니다. 문화에 소비자가 종속된 것이 아닌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문화니까요.
(27-28p 1장 서브컬처의 시대)
이제 ‘모든’ 대중을 노리는 것은 무리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어떤 창작물이든 타깃층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점입니다. 대중문화는 시장 세분화로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그렇게 깨부숴진 대중문화는 결국 ‘특정 세대 혹은 계층 혹은 성별’만이 즐기는 문화로 다시 뿌리내립니다. 대중문화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폭발하며, 작은 문화들로 뿌리내립니다. 이 1장의 첫 번째부터 꾸준히 말했던 그 단어의 시대입니다. 서브컬처의 시대!
(43-44p 1장 서브컬처의 시대)
소년만화라는 말은 그대로 뜯어보면, 소년이 주인공인 만화처럼 느껴집니다. 루피와 이치고, 나루토가 그렇듯이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소년만화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드래곤볼」의 손오공은 나이가 들어 손자까지 봐도 소년만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은혼」의 경우처럼 주인공인 사카타 긴토키가 아예 처음부터 아저씨여도 소년만화라고 불리죠. (중략) 소년만화에서 소년들을 전율시키는 것은 노력을 통해서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소년만화에서는 성장을 묘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86-87p 4장 성장하는 일본, 멈춰 있는 일본)
「드래곤볼」에서 가장 임팩트가 강한 장면은 ‘호오 전투력이 올라가는군요’ 장면일 것입니다. 프리저가 분노한 손오공을 보면서 말하는 것이죠. 이 작품에서 하나의 공식을 성립하기도 하는 장면입니다. 손오공은 빡치면 세진다. 시쳇말로 표현해서 죄송합니다. 이 공식을 주입당하게 된 독자들은 프리저가 끼고 있던 스카우터가 폭발해버릴 때, 주인공의 전투력이 성장했음을 즉각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동시에 주인공인 손오공의 기분까지 전달받을 수 있죠. ‘손오공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빡쳤구나’. 스카우터가 보여주는 마법입니다.
(93p 4장 성장하는 일본, 멈춰 있는 일본)
기존의 SF 장르의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세계멸망급의 서사에 맞서는 경우는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를 주인공이라는 존재가 맞서는 것이었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역으로 주인공이 재앙을 불러오기까지 합니다. ‘구하지 못하면 세계가 멸망한다’가 아닌, 주인공이 세계의 존망을 ‘선택한다’에 가까운 스토리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은 유행이 되어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죠. 이것을 이른바 ‘세카이계’라고 부릅니다. 일본어로 세카이는 세계라는 뜻입니다.
(179p 6장 가볍게, 오타쿠와 서브컬처)
창작자는 여전히 본질을 고민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거대 서사를 담은 작품들조차도 욕망을 담지 못하면 도태됩니다.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에 그림체는 오히려 전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모두의 공감대보다는 특정하고 확실한 욕망이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1장에서 말했던 ‘서브컬처’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바로 그 선두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작품입니다. 욕망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이러한 의의도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와 우울한 거대 서사에 매몰되어 있던 오타쿠들이 현실의 즐거움에 눈을 뜨게 해줬다는 의의지요. 거대로봇을 조작하면 어떨까? 같은 상상을 하던 오타쿠들은 이제 ‘학교에서 즐거운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와 같은 상상을 합니다. 물론 둘 다 망상에 가까울지라도, 어느 쪽이 더 현실에 가까운 지는 자명합니다.
(185p 6장 가볍게, 오타쿠와 서브컬처)
당연히 2022년을 뜨겁게 달군 가수 얘기를 했으니, 2023년을 뜨겁게 달군 가수 얘기도 해야겠죠. ‘요아소비’입니다. 정확히는 가수 그룹이지요. 작곡가는 원래 밴드를 오래 하다가 보컬로이드로 작곡하는 동인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 아야세입니다. 그가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이쿠라라는 보컬을 만나서 결성한 것이 ‘요아소비’이지요. 「최애의 아이」의 「아이돌」을 만든 그룹입니다. 보컬로이드로 대표되는 서브컬처 문화가 J-POP에 적극적으로 섞여 들어갔다는 점 외에도 특기할 점이 있습니다. 문화를 유튜브가 선도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애니메이션의 내용이나 캐릭터보다도 ‘음악’이 먼저 유행을 타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275-276p 10장 게임과 2차 창작, 참여하는 서브컬처)
오타쿠들은 누구보다 그들의 ‘진짜’를 갈구하면서도, 그 ‘진짜’가 ‘가짜’에 섞여 나오는 것을 증오합니다. 마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과 같은 느낌입니다. 자신이 보기 싫은 부분들은 어딘가에 묶어놓고, 자신이 보고 싶은 이미지만 소비합니다. 미래의 문화를 주도할 사람들은 이들입니다. 보컬로이드 등이 출현한 것이 이미 20년이 지난 일입니다. 한국은 일본이 깔아놓은 ‘이미지 소비’의 판에 가장 먼저 올라탄 국가입니다. 일본에서 버츄얼 유튜버가 등장한 2016년, 단 2년만에 한국에서도 최초의 버츄얼 유튜버가 등장했습니다.
(300p 11장 아이돌과 인터넷 방송, 모두의 서브컬처)
오타쿠가, 아니 미래의 문화 소비자인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콘텐츠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어떤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아이돌을 만나서 서로 인사를 했다는 만족감은 유사 사회관계일 것입니다. 사실 아이돌은 내 얼굴 따위 기억도 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그 만족감만은 진짜입니다. 굳이 그 안에서 ‘사실은 공허할 것이다’ 따위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301-302p 11장 아이돌과 인터넷 방송, 모두의 서브컬처)
앞으로의 대중문화는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세분화된 만족’을 줄 수 있는 서브컬처만이 살아남겠지요. 그런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지금의 서브컬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302p 11장 아이돌과 인터넷 방송, 모두의 서브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