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이후 돈의 원칙이 명예의 원칙을 대체한 우리 문명의 진정한 상처를 미리 내다볼 만큼 뛰어난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멜모스, 14쪽)
행정부서의 사무 공간은 현재의 사회계약이 근거하고 있는 돈의 봉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에 꼭 필요한 범용한 존재들만을 양산하는 곳이다.(멜모스, 16쪽)
악마가 그에게 넘긴 열쇠로 보물단지를 열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쾌락을 두 손 가득 퍼내던 그는 이내 빈 단지 밑바닥을 긁는 신세가 되었다. 순식간에 얻은 그 어마어마한 힘은 순식간에 집행되고 효력을 발휘하고 소진되었다. 전부였던 것이 전무로 변했다.(멜모스, 63쪽)
“왕의 값어치가 얼마인지 시세도 정하고 백성들의 무게도 저울로 재며 제도들의 가치도 결정하는 곳이 한 군데 있다. 거기서는 (…) 사상과 믿음도 수치로 계산된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할인되어 거래된다. 교황도 거기에 자신의 계좌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거기서는 하느님마저도 자신의 피조물들의 영혼에서 나온 수입을 담보 삼아 빌리고 빌려준다. 거래할 영혼을 하나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거기가 아닐까?” 카스타니에는 마치 국공채를 거래하듯이 영혼도 거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증권거래소로 향했다.(멜모스, 76쪽)
뗏목이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는 필리프를 남겨두고 반대편 강가로 미끄러져 갔는데, 워낙 육중한 데다 속도까지 붙어 있었던지라 땅에 부딪히면서 크게 요동을 쳤다. 그 바람에 뗏목 가장자리에 있던 백작이 강물로 굴러떨어졌다. 백작이 강물에 떨어진 순간, 유빙 하나가 그의 머리를 강타했고, 그렇게 몸뚱어리에서 잘린 머리통이 포환처럼 멀리 떠내려갔다.(아듀, 139쪽)
“당신에게는 오페라에나 나오는 그런 터무니없는 사랑이 필요했던 거군요. (…) 당신이 말하는 헌신적인 사랑이란 그러니까 선입견을 따르는 겁니까?”(아듀, 154쪽)
12월 초순 무렵, 많은 눈이 내려 대지가 하얗게 뒤덮이자 대령의 눈앞에 베레지나가 펼쳐졌다. 이 가짜 러시아는 놀라울 정도로 실상과 가까웠는지라 대령의 군대 동료들 여럿은 예전에 겪었던 비참한 광경이 그대로 자신들 앞에 펼쳐진 느낌을 받았다.(아듀, 156쪽)
세상에는 정체 모를 괴물과 매일 싸움을 벌이고,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는 불행한 능력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강한 존재들이 있다. 쉬시 백작이 그런 강한 존재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두 명, 한 사법관과 한 늙은 의사뿐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주 잠깐 당신의 전능한 손을 그 강한 존재들에게서 거두어들인다고 해보자, 그 순간 그들은 맥없이 푹 쓰러진다.(아듀, 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