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등고래는 왜 망망대해에서 노래를 부를까?
한때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 우영우는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고래를 좋아해서, 무슨 일이든 고래와 연관시켜 이야기를 전개하곤 한다. 그래서 한때 혹등고래의 노래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혹등고래는 왜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지능이 높은 생물이니만큼 취미생활이라도 하는 걸까?
혹등고래는 수컷만 노래를 부른다. 수컷 혹등고래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망망대해에서 짝을 찾기 위해서다. 바닷속은 햇빛이 잘 닿지 않아 시각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냄새 분자가 확산되는 속도도 느려 후각도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반면 수중에서 소리가 전파되는 속도는 대기보다 4배나 빠르다. 넓디넓은 바다에서 보이지도 않는 암컷 혹등고래에게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보내는 신호가 혹등고래의 노래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해마다 ‘신곡’이 나오고, 히트를 친 신곡은 유행가가 되어 그 지역의 혹등고래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 따라부른다.
수컷 혹등고래가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필사적으로 짝을 찾는 동안 암컷 혹등고래는 아주 여유롭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위에는 수컷이 넘쳐난다. 암컷은 수컷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그저 마음에 드는 수컷들을 내키는 만큼 골라 여러 번 교미해 확실하게 임신하고, 출산한 다음에는 육아에만 전념한다.
다윈이 발견한 또다른 자연선택, 성선택
《필사의 수컷, 도도한 암컷》은 성선택(성도태) 이론을 중심으로 동물세계의 번식 활동과 종족보존 전략을 보여준다. 자연선택(자연도태)과 비교하면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이론 역시 찰스 다윈이 발견했다.
다윈에 따르면, 주변 환경이나 조건에 적응한 생물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한 생물은 사라졌다. 자연선택의 결과다. 그런데 다윈이 보기에 자연선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략도 존재한다. 생존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거나 심지어 불리한데, 배우자에게 선택받거나 배우자를 차지하려는 투쟁에서 유리한 덕분에 자손을 남길 수 있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견됐다. 바로 성선택이다.
성선택은 현재 진화생물학에서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예로는 수컷 범고래의 쓸데없이 큰 등지느러미, 수컷 공작새의 낭비스러운 장식깃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동물 세계에서는 이 모든 부담을 거의 대부분 수컷이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컷은 암컷에게 선택받아 자기 자손을 남기기 위해 때로는 목숨까지 걸지만, 암컷은 여유롭고 도도하다.
해양동물과 육상동물, 암컷과 수컷, 새끼까지, 놀라운 생존 전략
《필사의 수컷, 도도한 암컷》에서는 다양한 동물의 번식과 출산, 육아에 관한 생태를 다룬다. 범고래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등지느러미를 지닌 것도, 혹등고래가 3,00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들리도록 노래를 부르는 것도, 민부리고래가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 싸우는 것도, 일각고래가 유니콘이라고 오해받을 만큼 위턱의 앞니를 키우는 것도, 해달이 암컷을 물어뜯는 것도 모두 짝짓기를 위해서다. 고릴라의 실버백, 오랑우탄의 플랜지, 바비루사의 엄니, 사슴과 기린, 코뿔소의 뿔, 코주부원숭이의 덜렁거리는 코, 맨드릴개코원숭이의 화려한 얼굴색은 짝짓기와 관련되어 기관이 발달한 결과다.
돌고래가 아기를 거꾸로 낳는 것도, 난산의 위험에도 말이 새끼를 다 키워서 낳는 것도, 토끼가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 것도 위험에 노출된 자연에서 최대한 많은 새끼를 안전하게 낳고 한 마리라도 더 많이 키워내기 위해서다.
이렇듯 다양한 동물의 고환과 자궁의 형태, 번식 양태, 출산과 육아의 방식 등은 더 많은 자손을 남기려 처절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각고의 노력을 다양하게 기울인 결과, 동물은 각양각색의 번식 행동과 몸의 구조를 발달시켰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고도 극적인 과정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경이롭다.
치열한 짝짓기는 생존 그 자체
저자 다지마 유코는 범고래의 매력에 빠져 해양 포유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수의학의 지식과 견문을 바탕으로 바다와 육상에 사는 포유류의 번식 전략에 해박하다.
이 책은 5장에 걸쳐 포유류의 번식과 생존 방식을 다룬다.
1장은 망망대해에 울려퍼지는 고래의 노래-해양 포유류의 구애 전략, 2장은 은빛으로 반짝이는 고릴라의 등-육상 포유류의 구애 전략으로, 해양 포유류와 육상 포유류가 번식을 위해 어떤 구애 전략을 펼치는지 설명한다.
해양이든 육상이든 동물들은 나름의 상황에 맞춰 번식을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몸을 변형시킨다. 1장에서는 범고래의 등지느러미, 혹등고래의 노래, 민부리고래의 상처, 일각고래의 엄니, 해달의 구애 전략, 복어의 미스터리 서클을 통해 해양 포유류의 구애 전략을 설명한다. 2장에서는 고릴라의 실버백과 드러밍, 오랑우탄의 플랜지, 바비루사의 이빨, 사슴과와 솟과 동물의 뿔, 코주부원숭이의 코, 맨드릴개코원숭이의 얼굴 색깔을 통해 해양 포유류와는 다른 형태로 발달한 육상 포유류의 구애 전략과 몸의 기관을 살펴본다.
3장은 전광석화같은 염소의 교미-수컷의 번식 전략, 4장은 돌고래는 아기를 거꾸로 낳는다-암컷의 번식 전략으로, 수컷과 암컷의 번식 전략을 소개한다.
고래, 염소, 말, 바다코끼리, 사자, 바다표범 등의 고환과 음경 전략을 설명하면서, 생식기가 왜 그런 형태가 되었는지, 교미 방식은 어떻게 선택하게 됐는지 알아본다. 포유류는 모두 자궁과 태반으로 번식하지만, 자궁과 태반, 출산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도, 그런 형태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5장은 새끼 코끼리는 웃는다-새끼의 생존 전략에서는 새끼 동물들의 본능적인 생존 전략을 살펴본다.
야생동물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생명을 위협받는다. 따라서 태어나자마자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고민한다. 새끼 동물들이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이거나 귀여워 보이는 황금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는 포유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신비로운 전략이기도 하다.
자손과 종의 번영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는 치열한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늘 한결같이 진지하다.
왜 짝짓기인가?
동물은 눈물겨운 구애, 번식, 생존 전략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 종을 이어나간다. 맹목적이라서 바보 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런 동물의 행위에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경이로운 발상과 섬세한 전략, 필사의 노력이 숨어 있다.
《필사의 수컷, 도도한 암컷》의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망설이지 않고 기꺼이 살아나가는 동물을 보며 생명을 부여받고 살아가는 기쁨과 용기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만큼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인간은 동물만큼 절박하지도 않고 생존을 위협받지도 않지만, 만족할 줄 모르고 즐기지도 못한다. 그럴 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동물의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필사의 수컷, 도도한 암컷》을 읽으며, 동물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동물을 이해하면서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을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