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닥친 기후생태위기 앞에서
사유하고 실천한 ‘함께’의 기록
지금 여기에 도래한 기후생태위기 앞에서 소위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 곁의 존재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엇을 고민하며 어디를 바라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만나기 어렵다.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는 한국 사회에서 기후생태위기를 살아가는 다양한 동시대 여성 시민의 구체적인 고민과 삶에 대한 부분적인 해법을 나누고 전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위치에 선 열 명의 여성 및 젠더퀴어 필자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해 ‘함께’의 한가운데로 나아가고 거듭나는 사유와 실천의 고백록이다. 지금 여기의 기후생태위기 앞에서, 생존, 생계, 일상의 존속이 철저하게 각자의 몫으로 맡겨진 삶의 위기 앞에서, 멈춰 서서 자신의 앞과 옆과 뒤를 돌아보고 사회 전체를 돌아보는 글이다. 필자들은 이 세계의 보편 가치로 자리 잡은 자본주의, 능력주의, 각자도생, 타자화의 논리가 어떻게 필자들의 삶에도 뿌리내려 왔는지를 각기 다른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고백한다. 또한 이 같은 논리가 지금의 기후생태위기를 불러온 원인과도 다르지 않음을 성찰하면서, 다시 함께 서로를 일으키며 공동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과 방향이 무엇일지를 모색한다.
또한 “곁의 존재들과 함께 뿌리내리기”, “부분적이고 불안한 희망일지라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시작으로”라는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진 본문에는 사이사이에 네 편의 시가 실려 있다. 공부하고 토론하고 사유하는 삶을 지탱하는 것은 타자와 공감하는 예민하고 예리한 마음의 태도에서 비롯됨을 필자들의 시에서 느낄 수 있다. 열 명의 여성과 젠더퀴어로 구성된 필자들이 함께 만들어 온 기록인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용기의 조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인, 교사, 미술가, 연구자, 활동가, 공동체미디어 대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10개의 시선
〈농가에는 슬픔의 영들이 떠돌고〉는 자본주의적 추출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 농민의 삶을 딸의 시각을 통해 다루는 글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농민이 중층적 소외를 경험해 왔던 자리는 고스란히 기후위기를 가속화한 성장주의와 가부장제적 사회질서가 은폐해 온 자리였다는 점이 이 글에서 아프게 성찰된다. 저자는 자신이 뿌리내리려 한 도시에서의 삶이 타자와 경쟁하며 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점을 기후재난 그리고 농촌 현실과 겹쳐 보며, 사회 시스템 전환에 대하여 소망해 본다.
지난 2~3년간 기후운동을 경험한 필자는 〈발 딛고 선 모든 자리의 돌봄〉에서 지금-여기, 기후생태위기 앞의 싸움에는 모두에 대한 보편적 돌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자도생과 개인의 능력, 경쟁을 보편화한 현 세계의 단단한 믿음체계가 실은 지극히 인위적이고 역사적인 자본주의를 토양 삼아 자라난 것임을 분석한다. 아울러 개인의 삶과 생존이 철저하게 각 개인에게 맡겨진 사회에 질문을 던지면서 이 같은 믿음체계를 대신할 보편적 돌봄의 인식론을 제시하고, ‘보편적 돌봄 소득’이라는 사회적 장치를 제안한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는 산책을 하며 하천에 살아가는 새들을 관찰하는 게 취미였던 필자가 인간중심적인 개발로 야기된 기후위기 앞에서, 탄압과 배제의 대상이 된 새들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글이다. 필자는 특히 오랜 시간 인간과 공생하며 살아왔으나 70~80년대 이후로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골칫덩이’로 전락하여 서식지 파괴의 피해를 입은 백로의 삶에 집중한다. 이들을 골칫덩이로만 묘사하는 인간 중심의 이기주의, 공생을 도모하기보다 토건산업을 우선으로 한 개발중심주의를 이야기하며, 결국은 이 문제가 과연 누구로부터 기인한 것인가를 묻고자 한다.
〈물러서지 않도록, 풀뿌리 바리케이드에서〉의 필자에게 ‘풀뿌리’와 ‘지역’이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오롯한 서식지이기도 하고, 곁의 존재들과 함께 뿌리를 내리고 서로 얽어 가는 관계의 공간이기도 하다. 필자는 기후위기에 대응한 체제 전환이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영역에서 분리되고 동떨어진 어떤 곳이 아니라 발 디딘 삶의 공간에서부터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여기며 행동한다. 자본주의, 기후위기, 불평등을 넘어서는 정치적 삶은 바로 ‘우리’라는 현장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내 손에 쏙 들어오는 세상〉은 2023년 서울에서 문화예술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의 일상이 얼마나 괴상하고 분열적인지를 보여 주는 글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정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 성공에 대한 매혹, 세련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 윤리적 삶에 대한 동경,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 그러나 이 한 사람의 일상은 자본주의와 각자도생을 내면화하도록 강제된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자신의 이 이상한 일상에 대한 고백을 통해 실은 이 사회가 얼마나 이상한지를 묻는다.
〈기적의 아침〉은 '미라클 모닝'이라는 현상을 계기 삼아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구조 하의 개인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지를 돌아본다. 저자의 우울과 불안, 완벽주의에서 시작된 취약성에 대한 고민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의 아픈 몸들과 아프게 될 몸들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셈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생물학자인 도나 해러웨이의 논의를 살펴보며 응답과 실뜨기, 즉 새로운 관계성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기적의 아침〉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희망에 대해 함께 상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함께, 오래, 잘, 살아요〉는 ‘아픈 몸’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노동자계급 여성으로 태어나 가치관과 신념을 지키고 이상을 실현하며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기 착취에 열중하던 필자가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집중 돌봄과 경제 위기를 겪으며 ‘아픈 몸’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그 지점에서 멈추어 성찰한다. 자신이 가부장제×자본주의의 모순을 가리고 기후위기를 촉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동안 행해 온 열심과 노력의 방향 바꾸기를 실천할 것을 말하며 속도와 효율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을 가려내고 축출한다. 이 체제는 사람에게는 불평등을, 우리가 기대어 살아가는 땅에는 기후생태위기를 가지고 온다. 〈누구도 남기고 가지 않는다〉는 ‘누구도 남기고 가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장애인 인권 운동의 가치를 통해, 모두가 존중받는 삶을 고민하는 것이 기후생태위기를 비롯한 현재의 삶의 위기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임을 말하고자 하는 글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연결이 필요하다〉는 필자가 자신의 어머니의 울퉁불퉁한 손을 애도하면서 학교 청소 노동자, 급식 노동자의 손과도 새롭게 만나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다. 필자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학교 내 노동자의 위태로운 삶과 만나게 되면서 위험한 노동환경과 불안정 노동의 관계를 직면하게 되었고, 자본주의가 학교와 사회에서 어떻게 여성과 노동을 타자화하고 차이를 서열화하고 노동하는 몸을 규율 및 통제하며 착취하는지를 증언한다. 또한 이 같은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이 자본주의적 시초 축적의 선행 과정임을, 그리고 이것이 생태학살과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원인이자 결과임을 진술한다.
〈하지만 신념은 스몰토크, 취향 그리고 농담처럼 단단하지〉는 현장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무엇이 ‘나’의 현장이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확장되는 과정을 담은 글이다. 필자는 30대 내내 이어진 “내가 있는 곳을 현장으로 만들자”라는 고민을 ‘공동체’라는 키워드로 풀어놓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에 대응하고 공동체의 변화에 함께 동참해 나가는 저마다의 자리에서의 실천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