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의 마음을 꿰뚫는 통쾌한 이야기
동화의 초고를 읽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이 ‘재미있다’와 ‘통쾌하다’였다. 재미있다고 느낀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통쾌했던 이유는 명백하다. 어릴 적에 누구나 들어 봤을 것 같은 이 말, “너 자꾸 말 안 들으면 호랑이가 ‘어흥!’ 하고 잡아 간다!”를 어른 대신 어린이가 내뱉었기 때문이다. 물론 표현은 조금 달랐지만.
어른이 아이의 잘못된 언행을 제지할 때 종종 써먹는 이 말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잘못을 바로잡는 교육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고, 정말 겁에 질리는 아이도 있을 테고, 때로 억울하다고 느끼는 아이도 있을 것 같다. 어른이 일방적으로 규칙을 정해 놓고서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혼나는 상황이거나, 어른이 잘못해도 호랑이가 잡아 가는지 궁금해질 수도 있을 테니까.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이하정 작가는 스스로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이 말에 주목했다. 아이의 일침 덕분이었지만 어른이 어린이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야말로 동화 쓰기의 시작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호랑이가 잡아 간다는 말은 ‘잘못하면 혼내 줄 거야.’를 제법 적절하게 비유한 표현이라 느꼈고, 아이가 잘못을 하면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 동화 덕분에 듣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고려하는 세심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 미움도 때론 약이 된다? 위기를 자초한 간절함이 가족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해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매순간 같은 마음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 서운한 마음이 커지고 어느새 미움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도희도 그랬다. 수학 단원 평가를 앞두고 엄마는 도희가 제일 좋아하는 야구도 못하게 하면서, 손꼽아 기다리던 야구장 가는 약속마저 아주 쉽게 저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경기 티켓까지 팔려고 하는 엄마, 엄마를 나무라기는커녕 갑자기 잡힌 출장 때문에 도희는 안중에도 없는 아빠. 도희는 부모님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했다. 이때 순간적으로 폭발한 미움과 야구장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제대로 얽히며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호랑이가 엄마, 아빠를 어디론가 데려간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장을 넘겨야 알 수 있겠지만 아무튼, 도희가 순순히 호랑이에게 부모님을 맡길 수 있었던 건 ‘단 하루 동안(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라는 마음의 방패막이 때문이었는데, 막상 부모님을 되찾아야 하는 시점에는 엄청난 위기가 도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호랑이와의 대결뿐! 도희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야구로 가족을 위기에서 구하려 한다. 그리고 도희네 가족은 함께 경기에 임하면서 잠시 잊고 지내던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 회로를 되돌려 본다. 순간의 미움 때문에 도희는 호랑이와 숨 막히는 내기를 하게 되었지만 변함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고, 좋아하던 야구를 좀 더 깊이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를 잠깐 미워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필요악이 아닐까 싶다. 잠깐 미워하고 나면, 상대방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보고 나면 미웠던 마음은 가라앉고 이해와 사랑이 단단해질 것만 같다. 혹시 호랑이가 내 마음을 읽는 날이 오면 나는 어떤 내기를 하면 좋을까 머릿속에 복잡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즐거운 마음으로!
◎ 호랑이, 멸종 위기, 함께 사는 지구
도희가 엄마, 아빠를 되찾으러 갔을 때 주식회사 배고픈 호랑이의 일원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거의 사라졌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다만 먹이를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지요. 그래서 이렇게 회사를 만들어 뭉쳐 살고 있답니다.” 지구에서 사라져 가는 호랑이, 호랑이뿐 아니라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자연이 점점 훼손되고,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져 가는 건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배고픈 호랑이를 이겨라》는 어쩌면 위험에 처한 자연이 결국 인간을 위협하게 되는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유쾌하며 틈새 없는 이야기 흐름과 위트를 겸비한 사랑스러운 그림 덕분에 책장이 술술 넘어갔지만, 함께 살아가는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