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말 급해서 그러는데요. 그러니까…… 음, 엄마를 1년 만에 만나는데…… 선물하려고 했던 십자수가 망가져서요…….”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아줌마가 그제야 손을 멈추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딱딱해서 마치 ‘어쩌라고?’ 하고 되묻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너무 창피하고 민망해져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저렇게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 앞에서 울다니, 이게 무슨 꼴이람! 나는 아줌마가 뭐라 더 말을 할까 봐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곳에 더 있다가는 훨씬 심한 망신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_ 본문 17~18쪽 중에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좋다는 아빠도, 이 상황이 되도록 외국에서 공부만 한 엄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지만 내가 있는데, 나의 엄마, 나의 아빠인데 따로따로 살겠다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랑 결혼까지 하겠다고? 사정상 따로 살 수밖에 없는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서로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린 걸까? 하지만 어제 그렇게 눈을 마주치며 웃어 놓고? 이제껏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지독하고 나쁜 사람인 것 같았다. _본문 30~31쪽 중에서
엄마가 하는 말들은 되게 그럴듯하고 멋지게 들렸다.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사정이 있으면 같이 살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족이 있고, 혈연이 아닌 사람끼리 모여서 가족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내 꿈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가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람? 내 꿈은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사는 것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엄마, 나의 아빠가 나의 꿈을 빼앗아 가 버렸다. _본문 37쪽 중에서
거실로 나가 보니 늘 시리얼이나 배달 음식만 놓여 있던 식탁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생선구이 등이 놓여 있었다. 정원 아줌마는 밥솥에서 푼 밥을 식탁 위에 놓으며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아직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먹고 가.”
나는 차려진 밥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간은 아침 식사를 아예 하지 않거나 간단하게 시리얼로 때워서인지 밥을 보고도 전혀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_본문 72~7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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