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생물의 사정을 들어 보자
약 38억 년 전 지구에 최초로 등장한 이후로 생물은 끊임없이 멸종하고 또 탄생했다. 처음 생물은 눈, 코, 입과 같은 감각 기관도 없고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은 존재였지만 긴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과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은 멸종하고 환경에 적응한 생물은 진화한 덕분이다.
한 개체에게 생기는 변이는 우연이지만 집단 안에서 발생하는 변이는 필연이다. 변이가 일어날 확률은 아주 작지만 개체 수가 많은 집단 안에서는 그 작은 확률이 어디선가 꼭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연히 일어난 변이는 보통 개체에게 별 이익을 주지 않지만 갑자기 환경이 변화하면서 이익이 되는 경우 진화가 이루어진다. 이것도 아주 드물지만 긴 시간이 가능하게 한다.
생물은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다양해졌을까? 꽃은 어쩌다 다채로운 색을 갖고 사시사철 피게 되었을까? 눈과 귀는 왜 두 개일까? 고양이와 개는 왜 성격이 다를까? 펭귄은 왜 날지 못할까? 인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생물의 멸종과 탄생의 신비로움에 대해 진화가 답변한다.
■ 생물 다양성을 낳은 진화
지구에 사는 생물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1000만 종 이상 있을 거라고 추정된다. 어떻게 해서 지구에는 이토록 많은 생물이 살게 된 걸까? 먼저 애벌레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아무 걱정 없이 살던 애벌레를 기생 말벌이 공격하기 시작한다. 애벌레 안에 알을 낳아 새끼가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태어난 새끼는 애벌레의 체액을 먹으며 성장한다. 애벌레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기생 말벌을 막고 싶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다 등에 가시가 나거나 특이한 무늬가 생기는 등 변이가 발생한다. 변이가 생긴 애벌레에게는 말벌이 덜 접근하게 되어 생존율이 높아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 애벌레는 멸종하고 새로운 애벌레가 나타난다.
말벌도 마찬가지로 애벌레의 변화에 맞춰 애벌레 몸속에 알을 낳을 수 있는 개체가 살아남게 된다. 이렇게 멸종과 탄생을 반복하면서 애벌레도 말벌도 다양한 종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그럼 꽃은 어떨까? 꽃마다 개화 시기가 비슷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개화 시기가 같으면 개체 수가 많은 꽃에 비해 개체 수가 적은 꽃들은 꽃가루를 옮겨 줄 나비나 꿀벌이 찾을 확률도 낮고 번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때도 변이가 빛을 발한다. 우연히 일주일 먼저 핀 꽃이 번식에 성공하고 원래 피던 시기에 핀 꽃은 번식에 실패하면서 개화 시기가 앞당겨진다. 꽃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개화 시기가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처럼 온갖 종류의 꽃이 여러 계절에 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인간도 한때는 패배자였다!
그렇다면 현재 지구 최강의 생물로 군림하고 있는 인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38억 년 전 나타난 생물은 약 4억 년 전까지 무려 34억 년 동안 바다에만 살았다. 그러나 먹이를 두고 경쟁하다 밀린 패배자들은 해안가로, 또 경쟁에서 밀려 민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민물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바다에서 밀려난 생물들이 계속 민물로 들어오고 민물에서도 경쟁이 시작된다. 경쟁에서 진 생물은 점차 하류에서 상류로 그리고 마침내 육지까지 도달하게 된다.
바다에서 민물과 육지로 밀려난 생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만 했다. 염분 농도에도 적응해야 했고, 아가미로 호흡하던 방식을 바꿔 새로운 기관으로 호흡해야 했다. 육지로 올라오면서는 마치 망둑어처럼 지느러미가 기어다니기 편한 형태로 변화했고, 점차 다리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네 다리와 폐를 갖게 된 육지 동물은 더 나아가 열대 우림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바로 인류의 조상이다.
인류의 조상은 열대 우림에서도 편한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거기서도 경쟁에 휘말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또 쫓겨나 초원으로 나와야만 했다. 초원에 살게 되면서 인류는 직립 보행을 하고, 털은 가늘어지고, 꼬리도 사라졌다. 초원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냥을 하고 육식을 하면서 점차 두뇌가 커진 인류는 드디어 현재의 모습과 흡사하게 진화했다.
인류의 패배의 역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맨 처음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인류가 이제는 서로 경쟁을 하고 거기서도 밀려난 사람들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까지 거처를 옮기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결국 생물의 진화 과정은 인간뿐 아니라 생물 모두의 치열한 삶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