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은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에나 변방 지역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복속된 군사지역이었고, 땅이 척박하고 농업생산력도 높지 않아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주목받지 못했다. 근대에 와서는 대구의 위성도시쯤으로 취급되면서 정치적으로는 물론 교육, 문화적으로도 종속되어 자립적 기반을 갖출 수 없었다. 자연히 뛰어난 인재가 길러지기 쉽지 않은 도시였다. 하지만 자연과 지리 조건만으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인간이 길러지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문학예술은 한 시대의 고난과 모순이 집약된 공간에서 태어난다.
영천은 주변 어느 지역보다 걸출한 문장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개성 있고 독특한 문학적 세계를 펼쳐 보이면서도 문학사적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들이 적지 않다. 다만 다양한 문학적 자산을 지역적으로 평가하고 아우르는 작업이 부족해서 뚜렷한 지역성을 획득하지 못했을 뿐이다. 각각의 작가들이 시대와 개성과 경향을 달리하지만 지역성으로 꿰어보는 시도로 ‘영천문학지도’ 조홍감 붉은 가을 울음 깊은 들녘이여를 기획했다.
가사와 시조문학에서 천의무봉이었던 노계 박인로 이래, 근대에 와서는 항일여성운동가로 1930년대 조선 문단에 각인된 백신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시대 한글학회에서 일한 언어학자로 시인이었던 정희준, 무엇보다 50년대 끄트머리에 등장해 ‘단편 소설 미학의 건축가’로 불리는 하근찬은 높다. 노계의 ‘조홍감’과 ‘10월’의 이미지가 짙게 밴 이 책은 배냇자리가 영천인 작가들이, 영천을 배경으로 쓴 작품만으로 가려 뽑았다. 각 작품마다 꼼꼼하게 살피고 세심하게 그 현장을 들여다봐야만 읽을 수 있는 풍경과 숨은 이야기들이다.
이 책의 4부는 현역작가들로 꾸몄다. 장편 소설 도동 사람전반부에서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기의 영천을 그린 안삼환, 배냇자리가 은해사 부근이면서 은해사와 백흥암과 거조암, 금호강과 갈대에 대해 선명한 이미지를 남긴 송재학 시인, 첫 시집부터 최근까지 소년기의 그 장터거리를 노래하고 있는 백무산 시인, 영천 10월 항쟁에 대해 추적하고 연구해 노래해 온 이중기 시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