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그는 조선과 일본에 걸친 경계인이었고, 등산의 실제적 준비와 세밀한 실행 과정을 챙기는 엄격한 실무가이면서도 항시 히말라야와 아프리카 야생의 고원 등 천상에 닿은 산들의 그 너머를 망연히 꿈꾸는 몽상가였다. …… 내가 보기에 그의 진면목은 오히려 그 산들 너머로 인간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그의 몽상가적 능력이다.(「역자 후기」 중에서)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의 학문적 회고록
이 책은 저자인 이즈미 세이이치(泉靖一)가 평생에 걸친 다양한 산악활동과 학문적 작업들을 회고적으로 기록한 자서전적 기록이지만, 그의 전반기 삶의 무대였던 당시 조선에서의 초창기 등반 활동과 근대화 이전의 제주도와 한라산 그리고 북녘의 금강산과 백두산, 관모연산 등에 대한 생생한 기록으로 우리에게 특히 의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나아가 북만주 및 몽골, 중국 전역의 다양한 민족들의 독자적 문화 그리고 남태평양의 서뉴기니지역과 남미 안데스지역에 이르는 그야말로 전세계의 ‘머나먼 지역들’의 특색있는 문명들에 대한 인류학자로서의 냉철한 현장 조사 기록들로 구성되어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세계를 두루 조망하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이즈미의 탐험가, 등산가로서의 낭만적인 기질이 절묘하게 표현된 우수한 문학성으로 더욱 가치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즈미는 일본의 저명한 인류학자로서, 어린 시절 경성제국대학 교수인 부친을 따라 1926년 당시 조선에 와서 동대문소학교에 전학한 후 경성중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산을 좋아하여 경성중학 시절부터 서울 주변의 여러 산들에 등반 활동을 하였는데, 근대적 의미에서의 산악 활동이 없었던 당시 조선에서 이는 최초의 근대적 등반운동의 개척사에 해당한다. 서울 근교의 주요 산들, 특히 백운대 인수봉을 드물게 암벽등반으로 오르고 당시의 산행을 자세하게 기록한 내용들은 한국등반운동사의 중요한 초기 기록이 되고 있다.
근대한국 등반운동의 개척과 고고학적 성과
겨울철 금강산 등산을 최초로 시도한 뒤, 근대화로 훼손되기 전의 내ㆍ외금강산에 대한 자세하고 애정어린 기록도 남겼으며, 경성제대에 입학한 뒤에는 최초의 대학산악회인 경성제대산악회를 창설하여 북한 지역의 관모봉과 부전고원을 거쳐 백두산 등정까지 실행하여 당시 조선 주요 산들의 모습과 산행과정들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후 그는 경성제대산악회의 적설기 한라산 최초 등반을 이끌었는데 그 과정에서 동료의 조난 실종사고가 발생하였다. 실종 수색작업에서 제주도의 농어촌민들뿐 아니라 한라산 무속인들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처음으로 당시 조선 민중문화의 실상을 접했다. 그는 그 생동하는 독자적 모습들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 영향으로 당초의 일본문학 전공에서 사회학 전공으로 전과하였으며 그 졸업논문으로 「제주도-그 사회인류학적 연구」를 제출한 바 있다.
그후 그의 산악 탐험과 민족학적 관심은 북만주와 몽골, 나아가 중국 대륙 전반으로 펼쳐졌고,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남태평양의 서뉴기니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작업으로까지 확장되었지만, 비록 그의 활동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부수된 것임에도 그는 현지인과 현지문화의 상대적 독자성을 철저히 존중하는 반식민주의적 입장을 뚜렷이 유지하였다.
종전 후에는 도쿄대학에 인류학교실을 개설하는 등 전후 일본 인류학계를 이끌었고, 남미 브라질의 일본계 이민사회를 연구하면서 남미 안데스지역 탐사에 흥미를 갖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등반활동과 함께 잉카문명 유적의 발굴조사에 착수한다. 이 작업은 15년 이상, 여러 차례에 걸친 도쿄대학조사단의 대규모 ‘Field Work’를 통한 체계적 작업으로, 페루지역의 여러 잉카 및 잉카 이전 시기 유적들을 세계 학계에 소개하게 되었다. 특히 코토시지역에 대한 발굴 작업은 전인미답의 성과를 거두어 전후 안데스고고학을 세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바탕이 되었다.
그후 그는 도쿄대학의 인류학교실을 이끌면서 세계에 일본을 대표하는 인류학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한편 국립민족학박물관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그의 모든 모색과 방황으로 기록된 한 뛰어난 인간의 면모는 제대로 그 꽃을 펼쳐 보이기도 전에 55세의 그야말로 연부역강한 나이로 홀연히 그 막을 내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추도사로서 등산, 탐험, 민속학 등에서 이즈미와 가히 쌍벽을 이루었다고 해도 좋을 우메사오 다다오(梅棹忠夫)의 그야말로 가슴에 와닿는 글이 한 편 덧붙여져 있어 일독의 값어치가 더욱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