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 마음을 형용사들로 가득 채우지.
심지어 나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까지 상상하지”
생의 끝자락에서 겸허히 받아들이는 세상의 신비
영혼의 지평을 넓혀주는 시인, 메리 올리버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미국 최고의 시인”(〈뉴욕 타임스〉)으로 불리는 메리 올리버의 시집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2024년 새해를 여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국내에 메리 올리버의 시와 산문을 꾸준히 소개해온 마음산책에서 『천 개의 아침』 『기러기』 『서쪽 바람』에 이어 네 번째로 선보이는 시집이다. 시인은 살아생전 새벽같이 일어나 예술가들의 낙원인 프로빈스타운을 홀로 거닐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숲과 들판, 모래언덕, 바닷가를 누비며 온몸으로 자연 풍광을 보고 듣고 느끼려 애썼다. 불현듯 이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듯한 감각에 휩싸이면 이를 노트에 아름답고 정연한 문장으로 써 내려갔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며 영혼의 지평을 넓히던 메리 올리버가 일흔 중반에 접어들며 쓴 시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오래 묵은 생의 고통을 떨쳐내고 죽음이란 신성한 법칙에 기꺼이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장하고 스러져가는 자연물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낀 삶의 유한성과 신비를 고스란히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종내 시인은 노쇠한 몸으로 “날개를 단 기분을 느끼는 날들”(「할렐루야」)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생의 끝자락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필멸의 감각을 두려움 아닌 겸허한 환희로 수용한 메리 올리버. 긴 세월 자연과 교감하며 만물을 사랑하고 자신도 사랑하게 된 그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따스하고 너그러운 품으로 세계를 끌어안는다. 그리하여 시인이 남긴 애틋하고 진솔한 시어들은 우리에게 은총과 같은 위안을 선사한다.
어떤 이가 // 내게로 와서 / 머물더니 / 서서히 // 삶을 바꾸는 / 모든 것이 되었지. / 오, 모든 이에게 // 그런 행운이 왔으면 좋겠어. _「아픈, 아프지 않은」 중에서
“그 아름다움은 선물이었지”
자연이 건네준 치유력과 포용성
메리 올리버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적으로 몹쓸 짓을 당하고는 집에 있는 걸 견딜 수 없어 월트 휘트먼의 시집을 들고 숲속을 돌아다녔다.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느꼈으나 들판에 피어난 꽃, 바람에 넘실대는 잎사귀, 우렁차게 흐르는 강물, 푸른 달빛에 몸을 맡기며 조금씩 평안을 되찾았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마음을 치유했던 경험을 글로 쓰던 시인은 세상을 긍정하고 찬양하는 법을 체득해갔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움직이지 않는 시커먼 것”(「겨울의 풍경」), “빛 없는 지하실”(「증거」)로부터 벗어나 “햇살 쏟아지는 길”(「산미겔데아옌데에서의 첫날들」)로 홀가분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나는 잠이 깨어 / 어둠의 / 마지막 시간을 / 달과 단둘이 // 보내지. / 달은 / 마치 좋은 벗답게 / 내 불평 // 들어주고 / 그 빛으로 / 확실한 위안 주지. _「달과 물」 중에서
과거의 그늘에서 자유로워진 시인은 한결 너른 포용성을 보여준다. 「연못에서」는 시인과 갓 태어난 아기 기러기들의 만남을 그리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여섯 마리 아기 기러기 중 다섯은 무럭무럭 자라 튼튼한 날개를 갖지만 한 마리는 성장이 더디더니 끝내 날아오르지 못한다. 그러자 시인은 가을이 되어 멀리 떠나는 기러기들을 환송하고, 남은 한 마리를 조용히 부둥켜안는다.
자연은 많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고 // 그중엔 가혹한 것들도 있지. / (…) / 그리고 내가 /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 훨훨 날아간 / 그 다섯 마리 새끼와 // 두 부모에 대해선 / 기뻐하고 / 남아야만 했던 날개 없는 한 마리는 / 가슴에 품어주었지. _「연못에서」 중에서
“나는 신성함의 일부다”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숭고한 시선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메리 올리버는 삶 너머의 풍경까지 예민하게 감각한다. 「맴돌이를 생각하며」에서 시인은 어느 오후에 초록 늪지를 걷다가 한쪽 다리를 저는 사슴과 마주친다. 성치 못한 다리가 허공에서 맴도는 모습을 보며 사슴에게 ‘맴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은 “그저 말이나 웅얼거리는 무해한 웅얼이”라고 칭한다. 둘은 종과 언어를 초월한 교감을 나누는데, 오래지 않아 맴돌이는 어느 청년의 화살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이때 시인은 사슴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우리 모두 미완성의 삶을” 남길 뿐이라 읖조린다.
「클라리온강에서」도 생사를 초월한 듯한 태도는 여실하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오후 내내 강물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버터이자 행운일 것이고, 자신의 개를 죽인 진드기, 백합, 숲, 사막, 녹아가는 만년설, 잠재적으로는 우리 모두일 것이라 상상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서 신의 모습을, 일종의 신성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우리가 “신의 의도와 희망의 작은 조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만물을 경외하는 자세를 통해 삶에 깃든 숭고함을 깨닫도록 이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켜 / 숭고한 생각으로 이끄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 세상이라는 훌륭한 스승에게 영광 있으라. _「증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