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이 책에서 일컫는 포에트리 인덱스(poetry index)란 역사의 특정한 구간에서 시적 형태를 얻어 개입하는 텍스트를 뜻한다. 다만 이 책 안에서 역사적 기록과 픽션, 에세이는 구분되지 않는다. 공적 역사와 사적 역사 역시 구분되지 않는다. 단지 한 권으로 엮인 텍스트 다발이기에, 아무 페이지나 펼쳐 내키는 방식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29p
누군가들의 기억은 고전이 될 수 있을까. 펼쳐서 볼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까. 기억은 책이라는 물성에 비해서, 찢기거나 훼손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젖거나 타들어 갈 일도 없다. 다만 기억은 제 안에서의 길을 스스로 변형한다.
64~65p
때로 어떤 하루는 살갗 위를 조금씩 긁어내리는 칼날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뱀처럼 아주 조용하게 미끄러져 가는 시간의 몸과 그 속에 피처럼 배어있는 불안, 뜻밖의 모퉁이를 자꾸 만나고 또 만나다가 소진되는 삶, 언제나 내 예상을 배반해 경로를 벗어나는 흐름과 같은 것들. 밝은 벽지와 정갈한 세간살이가 갖춰진 방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내 속에서 자꾸만 타들어 가는 심지를 느낍니다.
82p
따라서 필요한 것은 공고한 형태로 완성된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는 형태의 시구(詩句) 조합에 가까운 것이다. 자연히 거대한 책, 즉 역사성 안에 쪼개지고 분절된 시가 인덱스처럼 개입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인류 최후의 책이라는 개념을 상정해보자면, 그것은 결국 기억이라는 이름의 고전일 것이다. 그 책에 주석처럼 덧붙여질 수 있는 장면들이란 무엇인가.
92p
그렇다면 세상을 떠난 사람을 주어로 두고 그이를 말해보고자 하는 문장에서는, 오로지 과거형의 술어들만 허락되는 것일까? 가령 이런 식으로. ‘그’는 체조를 했고 식사를 했고 야구를 보았다. 개를 키웠고 십자매를 키웠고 화단에 물을 주었다. 그렇게 생겨난 과거형의 문장들은 마치 산 자와 죽은 이 사이에서 엄중하게 닫히는 철문과도 같다. 문 바깥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무력하다. 결국에 참도 거짓도 아닌 문장을
되뇌어본다. ‘그는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간다.’ 그 문장은 이런 식으로 고쳐볼 수도 있겠다. ‘그는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간다.’
106p
밤새 우글우글 앓아온 열 때문에 벗겨진 입술을 가진 사람이
긴 사연을 말하기 위해 내 앞으로 다가와 앉는 오후
대화는 피부 위에 문양처럼 옮겨와 앉습니다
돌처럼 고요한 말들은 고요한대로 무겁습니다
당신은 눈꺼풀을 느리게 껌벅이고
우린 점차 덫에 가까워지는데
톱니처럼 서로 맞물린 시간 속에는
잘린 새끼손가락이 뒹구는 평원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끝난 약속들이 모여 있는 그곳을
붉게 젖어들다가 단숨에 솟구치는 그 땅을
뜰이라고 불러 봐도 될까요
네가 허락한다면
나는 한 무더기의 잠을 헤치고 씩씩하게 걸어가
움켜쥐고 싶은 손을 찾아 헤맬 것입니다
복종 없이 천진한 얼굴을 들여다볼 것입니다
-「플로리스트의 뜰」 일부
150p
그러나 나를 섬에 가두는 것들에 대항한 분투는 결국 평생에 걸쳐 진행돼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결국 눈먼 채로 혼곤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환영의 서사가 아닌가. 결국 바운더리라는 것은 드높은 담장처럼 세워진 것이나, 철근처럼 견고하게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툭 치면 바스러지는 먼지 허울과도 같은 환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형태로 누적돼 온 바운더리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그것을 감지할 때 아주 잠깐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우리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광주를 생각한다.
*17p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