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평면표지(2D 앞표지)
2D 뒤표지

네가 이 세상의 후렴이 될 때


  • ISBN-13
    979-11-980983-1-3 (03800)
  • 출판사 / 임프린트
    유미주의 / 유미주의
  • 정가
    14,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3-12-21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이서영
  • 번역
    -
  • 메인주제어
    인물, 문학, 문학연구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문학 #시 #에세이 #픽션 #비평 #일기 #역사 #인덱스 #로컬 #각주 #데이터 #기록 #정체성 #영화 #극장 #전집 #바운더리 #인물, 문학, 문학연구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00 * 180 mm, 180 Page

책소개

이 책은 역사를 '한 권의 책'이라는 개념으로 상정하며, 그것이 고전(공적 기록)과 일기(사적 기록) 중에 어느 쪽에 가까워질지 묻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비선형적으로 배치된 일기, 픽션이 되고자 하는 파편들, 각종 예술 장르에 대한 비평적 에세이 등 다양한 기록이 우발적으로 담긴 이 책은 지역의 역사적 인물과 공간을 함께 경유하며 로컬과 픽션, 글쓰기 장르의 경계를 묻는다. 무엇보다 이러한 형식 실험 안에는 총 일곱 편의 시가 포에트리 인덱스(poetry index)라는 이름으로 개입된다. 과연 시라는 장르는 이 책의 어떤 주석이 되어 기능하게 될까?

목차

2021
2123
1488
2012
1987
2018
2020
1953
2019
re: 2021
2017
re
2022
2023
re

본문인용

일러두기
이 책에서 일컫는 포에트리 인덱스(poetry index)란 역사의 특정한 구간에서 시적 형태를 얻어 개입하는 텍스트를 뜻한다. 다만 이 책 안에서 역사적 기록과 픽션, 에세이는 구분되지 않는다. 공적 역사와 사적 역사 역시 구분되지 않는다. 단지 한 권으로 엮인 텍스트 다발이기에, 아무 페이지나 펼쳐 내키는 방식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29p
누군가들의 기억은 고전이 될 수 있을까. 펼쳐서 볼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까. 기억은 책이라는 물성에 비해서, 찢기거나 훼손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젖거나 타들어 갈 일도 없다. 다만 기억은 제 안에서의 길을 스스로 변형한다.

64~65p
때로 어떤 하루는 살갗 위를 조금씩 긁어내리는 칼날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뱀처럼 아주 조용하게 미끄러져 가는 시간의 몸과 그 속에 피처럼 배어있는 불안, 뜻밖의 모퉁이를 자꾸 만나고 또 만나다가 소진되는 삶, 언제나 내 예상을 배반해 경로를 벗어나는 흐름과 같은 것들. 밝은 벽지와 정갈한 세간살이가 갖춰진 방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내 속에서 자꾸만 타들어 가는 심지를 느낍니다.

82p
따라서 필요한 것은 공고한 형태로 완성된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는 형태의 시구(詩句) 조합에 가까운 것이다. 자연히 거대한 책, 즉 역사성 안에 쪼개지고 분절된 시가 인덱스처럼 개입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인류 최후의 책이라는 개념을 상정해보자면, 그것은 결국 기억이라는 이름의 고전일 것이다. 그 책에 주석처럼 덧붙여질 수 있는 장면들이란 무엇인가.

92p
그렇다면 세상을 떠난 사람을 주어로 두고 그이를 말해보고자 하는 문장에서는, 오로지 과거형의 술어들만 허락되는 것일까? 가령 이런 식으로. ‘그’는 체조를 했고 식사를 했고 야구를 보았다. 개를 키웠고 십자매를 키웠고 화단에 물을 주었다. 그렇게 생겨난 과거형의 문장들은 마치 산 자와 죽은 이 사이에서 엄중하게 닫히는 철문과도 같다. 문 바깥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무력하다. 결국에 참도 거짓도 아닌 문장을 
되뇌어본다. ‘그는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간다.’ 그 문장은 이런 식으로 고쳐볼 수도 있겠다. ‘그는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간다.’

106p
밤새 우글우글 앓아온 열 때문에 벗겨진 입술을 가진 사람이
긴 사연을 말하기 위해 내 앞으로 다가와 앉는 오후
대화는 피부 위에 문양처럼 옮겨와 앉습니다
돌처럼 고요한 말들은 고요한대로 무겁습니다

당신은 눈꺼풀을 느리게 껌벅이고
우린 점차 덫에 가까워지는데
톱니처럼 서로 맞물린 시간 속에는
잘린 새끼손가락이 뒹구는 평원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끝난 약속들이 모여 있는 그곳을
붉게 젖어들다가 단숨에 솟구치는 그 땅을
뜰이라고 불러 봐도 될까요
네가 허락한다면

나는 한 무더기의 잠을 헤치고 씩씩하게 걸어가
움켜쥐고 싶은 손을 찾아 헤맬 것입니다
복종 없이 천진한 얼굴을 들여다볼 것입니다 
-「플로리스트의 뜰」 일부

150p
그러나 나를 섬에 가두는 것들에 대항한 분투는 결국 평생에 걸쳐 진행돼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결국 눈먼 채로 혼곤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환영의 서사가 아닌가. 결국 바운더리라는 것은 드높은 담장처럼 세워진 것이나, 철근처럼 견고하게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툭 치면 바스러지는 먼지 허울과도 같은 환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형태로 누적돼 온 바운더리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그것을 감지할 때 아주 잠깐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우리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광주를 생각한다.

 

*17p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인용

서평

시를 마침내 도달해야 할 종착지로 여기는 이들은 평생 시에 가닿지 못한다. 시는 바로 그곳을 향해 가기 위한 지도를 구겨버리는 일로부터 출발하는 것. 헤매는 것. 흩어지는 것. 달아나는 것. 그러다 절망하며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엎드렸을 때 코끝에 호흡으로 걸리는 것. 멀쩡하게 구축된 것 하나 없이 허물어진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시인의 마음이 여기에 있다. 슬픔의 역사가 다른 표정으로 계속되는 이 세상을 우리가 왜 쉽게 져버릴 수 없는지에 대하여, 세상 곳곳에 울려 퍼지는 ‘예술’이란 후렴에 의해서라는 시인의 답을 우리는 이렇게 만난다. 
_양경언(문학평론가)

서영과의 내력을 짧은 연보로 써보자면, 2012년은 서영을 처음 만나 친구가 된 해이다. 그 후로 십몇 년간 서영이 쓰는 시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시로써 타인의 몸을 빌려 슬픔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2017년은 서영과 함께 작은 독립잡지를 만든 해, 우리는 사소한 결정을 두고 골몰하기도 하고 금남로를 따라 오래 걷기도 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몇 번의 전시회에서 서영의 시와 산문을 읽었다. 그리고 2023년은 서영의 첫 책이 나온 해로 기억되겠지. 서영의 책을 읽고 생각했다. 이 연보의 끝에는―지금은 정확한 연도를 적을 수 없지만―반드시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시인, 사람들의 “어깻죽지를 긁어주러 오는 천사” 같은 시인과 친구가 되어 기뻤다고.
_조온윤(시인)

저자소개

저자 : 이서영
광주 출생.
시를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문학동인 공통점으로 함께 하며, 동명의 잡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었다.
2023 문학에세이『네가 이 세상의 후렴이 될 때』를 출간하였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