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의사를 불신하는 세상
로사와 수호가 마주한 인간의 두려움
수호는 아홉 살 때 처음으로 로사를 만난다. 당시 로사는 인간형이 아니라 작은 다각형 보드 형태였다. 정도원 박사는 수호의 손 위에 로사를 올려주는데, 문제가 생긴다. 로사가 아무런 명령 없이 갑자기 활성화되더니 수호의 정신을 장악한 것이다. 수호는 알 수 없는 기계어를 뱉으며 혼란스러워하고, 그것을 계기로 정도원 박사 부부는 로사를 폐기하기로 결정한다. 비록 아무도 모르는 정도원 박사 가족만의 일이었지만 이 사건은 장차 로봇 의사가 될 로사가 어떤 공포를 가져오게 될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시간이 흘러 폐기된 줄 알았던 로사가 살아서 동물들을 진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호는 로사를 본래의 제작 목적인 의사로 복귀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사건이 있었다. 로봇이 인간을 강간하여 살해하는 등 AI의 범죄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였다. 하지만 수호는 결심한다. 오해를 딛고 로사의 쓸모를 세상에 증명해 보이기로. 그것은 수호의 가문을 위한 일이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결정권을 가진 로사의 존재 그 자체다. 로사의 의사 복귀를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로사를 향해 계란과 토마토를 던지기도 한다. 이런 소설 속 묘사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기대하는 한편 두려워하고 있는 현대인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미 많은 매체 및 영상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은가.
“레지던트 정수호 씨의 어시스턴트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보조 업무로 시작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는 정수호 선생님의 어시스턴트 닥터입니다.”
“그럼 당신은 미래에 반란을 일으키거나, 당신의 담당 의사인 정수호 씨 혹은 당신의 창조자인 에로스에 반항할 계획이 있습니까?”
기자 한 명이 심각하게 묻자 주위가 술렁였다.
_P.8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 인공지능의 발달은 불가피하지만 그만큼 범죄의 가능성이나 우리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응급실 로봇 닥터』는 인간이 상상해 마지않던 로봇의 존재를 등장시키며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인지, 그들이 우리를 해할 가능성인지. 그 두 가지 중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미래를 마주하게 될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과제일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따스한 기술을 그린 SF
인간과 비인간의 화합을 기대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인간이므로 인간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에게 이득이 되는 것, 도움이 되는 것,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하지만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니고, 인간만 사는 곳도 아니다. 더욱이 점점 기술이 발전해가는 세상에서 이제 인공지능과 같이 생물이 아닌 존재와도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아무리 그들이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인간 마음대로 조종하고 이용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관계라는 것은 양쪽이 서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가장 의미가 있어. 나와 아내도 그랬고, 자네와 로사도 그럴 수 있어. 로사가 의료 로봇이라고 해서 단순한 기계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로사도 자네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고, 자네도 로사로부터 배울 것이 많을 거야. 찾아봐. 서로가 서로를 불필요하다고 느끼면 가까워질 일은 영원히 없겠지.”
_P.172
서로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불필요해질 것이고, 그렇게 멀어질 날만 남는 것은 인간에게 외롭고 슬픈 일이다. 이해하고 필요를 인정하는 것은 앞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응급실 로봇 닥터』는 인간과 로봇을 떠나 서로 품어주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로사를 필요로 할 수 있을까? 『응급실 로봇 닥터』가 머지않은 미래에 펼쳐질 인공지능의 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