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세상과 사람을 만나는 소중한 경험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줄다리기가 바로 ‘공부 대 게임’, ‘독서 대 휴대폰’ 같은 것들이다. 꼭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문제인가 싶어 안타까우면서도 게임이나 휴대폰에 중독된 어린이들이 많아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어린이들만의 문제일까. 휴대폰 하나 손에 쥐고 며칠의 자유 시간이 생긴다면 기뻐할 어른이 상당수일 것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여가를 즐길 거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며 새로운 재미를 찾아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어린이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경험의 폭도 시간 활용에 대한 자율성도 어른들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어린이들의 경우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하루가 지나다 보니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알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틈이 나면 게임, 휴대폰, 인터넷 세상에 몰입하게 된다. 더구나 부모가 ‘공부 이만큼 하면 게임 한 시간 하게 해 줄게.’ 같은 조건부 보상 개념으로 게임이나 휴대폰 사용을 허락하면 상대적으로 공부와 독서는 재미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게임이나 휴대폰에서 떼어 내고 싶은데, 아이들은 계속해서 빠져드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휴대폰 게임, 컴퓨터 게임에 목을 매던 환희가 ‘데이터 단절’이라는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밤골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환희에게 새로운 놀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환희가 처음부터 할아버지와 자기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놀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중에도 그저 어느 여름 방학에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와이파이를 쟁취하겠다고 애쓰는 과정에서 밭에서 고추를 따고, 뱀이 나타난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논물에 휴대폰을 빠트리고, 송아지가 태어나는 걸 지켜보고, 할아버지 댁에 감자를 가져다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밤골에서 경험한 모든 일들에 환희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활용해 웬만한 일들이 비대면으로 가능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 편리함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지 않아 생기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경험하고 있다. 데이터로부터 단절된 환희가 밤골에서 생짜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문제를 헤쳐 나갔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숙제를 하다가 잠시 짬이 날 때 게임 화면 속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는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우리가 랜선 밖의 진짜 세상에서 사람들과 자꾸 부대끼며 소중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이를 뛰어넘어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과정
나이든, 성격이든, 환경이든 서로 엇비슷하면 아무래도 친구가 되기 쉽다. 서로를 잘 알아야 이해심이 생기고, 이해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가깝게 지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수월하다는 것이지 필수 요건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신기할 만큼 서로 닮은 점이 없는데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상대방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보아 주고, 서로에 대해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환희와 밤골 노인회장 할아버지도 나이를 뛰어넘어 친구가 되었다. 환희는 처음부터 밤골에 오고 싶은 게 아니었고, 할아버지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꼬마가 마냥 반갑진 않았을 텐데 옥신각신하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다행히 두 사람 사이에는 유튜브에 관심이 있고, 동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툭툭 내뱉듯이 말을 걸고, 톡톡 말대답을 잘하는 것도 서로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두 사람 사이에 얼마 되지 않았던 공통분모가 늘어날수록 관계는 돈독해졌다. 그리고 관계의 발전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좋아하는 게 가득한 어린이가 넘쳐 났으면
환희는 게임 말고 좋아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게 뭔지, 꿈이 뭔지 묻는 것을 싫어했다. 친구들이 당당하게 축구 선수, 과학자, 레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할 때마다 괜히 주눅이 들곤 했다. 우리가 꿈을 꾸며 사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누구나 정해진 시기에 꿈을 세팅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꿈이란 마치 미래의 직업을 정하는 일처럼 인식되는 경우도 많아서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일찍이 찾지 못하면 안 되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다. 어린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언제 스스로 즐거운지 깨달을 기회가 아주 많으면 좋겠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넘쳐 난다는 걸,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환희는 여전히 공부보다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데 게임이 제일 좋지는 않다. 게임만큼, 아니 게임 이상으로 가슴 뛰는 일이 생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