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부, 달 밝은 밤에』 김이삭 작가의 신작
귀신 못 보는 무녀 무산의 괴력난신 수사활극
『감찰무녀전』!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철저한 고증, 톱니바퀴가 맞아 돌아가듯 정교한 구성으로 많은 사람에게 호평을 받았던 『한성부, 달 밝은 밤에』의 스핀오프 역사추리소설이 출간됐다. 김이삭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 『감찰무녀전』은 세종 재위 시절, 벌어졌던 두박신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역사추리소설이다.
세종 18년 도성과 경기 지방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두박신 사건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의 전말을 무산과 설랑, 돌멩이 파헤쳐 나간다. 사건을 쫓을수록 두박신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과연 백성들의 억울한 마음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작품 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총 세 명이다. 신기 없는 무녀 ‘무산’, 귀신 보는 양반 서자 ‘설랑’, 앞 못 보는 판수 ‘돌멩’이다. 각기 다른 큰 결함을 지닌 이들은 장점으로 서로의 약점을 보듬는다. 무산은 뛰어난 추리 능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귀신을 보는 설랑은 귀신의 목소리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친화력이 좋은 돌멩은 주변으로부터 정보를 모은다. 세 명의 조합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습은 독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또한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모도 잘 드러난다. 무산의 캐릭터는 무뚝뚝한 느낌을 주지만, 내면의 큰 상처를 가진 인물로 점차 설랑과 돌멩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눈여겨 볼만하다. 서자이자 신병에 걸린 설랑 역시 사건을 파헤쳐 가며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설랑에게 응원을 보내게 될 것이다.
김이삭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생생한 표현으로
되살아난 무속신앙이라는 세계
유교를 숭상한 조선에서 무속신앙은 ‘삿된 것’에 가까웠다. 가장 잘 알려진 토착신인 마고할미가 요망한 능력을 가진 마귀할멈으로 등장하고, 이를 선비가 퇴치하는 서구암 전설과 무격은 기생, 노비 등과 같이 천민 계급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무속신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무당에게 자신의 운세를 점치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무당을 찾았다. 양반들도 자신이 죄를 짓거나 액을 쫓기 위해 굿을 했다.
『감찰무녀전』은 철저한 고증과 무속에 관한 여러 지식이 잘 어우러져 당시로 돌아간 듯한 몰입감을 불러일으킨다. 부적을 쓸 때 지켜야할 금기, 두박신에게 제를 지내는 백성들, 왕신을 모시는 마을 사람들, 귀신을 쫓기 위해 벽사를 하는 무녀, 무당들이 역을 했던 활인원의 모습까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의 말까지 다 읽어야
『감찰무녀전』은 완성된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사건은 두박신 사건 조사지만, 친우를 떠나보낸 뒤 자기 혐오에 시달리던 무산의 영혼을 구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군가를 잃는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얼마나 각별했든 피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상 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감정이고 문화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떠나간 이를 추모하곤 했다.
『감찰무녀전』을 관통하는 주제 역시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다가 가슴 한편이 시린 이유는, 캐릭터들이 가진 상실의 감정에 공감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죄책감을 못 이긴 무산은 궁궐을 떠났고, 샛눈 아범은 굶어 죽을지도 모르지만 샛눈 어멈의 복수를 위해 두박신에게 제물을 바치려 한다. 소란도 오랜 세월 부적을 써가며 친우의 혼을 묶어 둔다. 이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떠나간 이를 기린다.
귀가 난무하고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풀어가면서도, 김이삭 작가가 놓치지 않은 것은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 대한 따스한 위로이다. 실연으로 상처 받은 그들을 위로 하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는 작가의 메시지가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감찰무녀전』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작가의 말’까지 다 읽어야 한다. ‘작가의 말’의 마지막 문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수많은 무산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다시 찾아오기를, 슬픈 이별의 뒷면에서 재회를 기다리는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4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