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는 약 1만여 종의 새가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은 어느 정도 이주를 한다고 본다. 그러니 대략 계산해도 5000가지가 넘는 이주 형태가 있을 수 있으며, 그중에 어떤 새도 정확히 같은 경로로, 정확히 같은 시기에, 정확히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진 않는다는 점에서 이주 경로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해진다.
-p.16 〈이주하는 새들〉
어린 자식과 함께 문밖을 나서는 일이 하나의 도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만약 같이 밖으로 나서야 하는 자식이 한둘이 아닌 넷, 다섯 혹은 그보다 훨씬 많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외출이 몇 분이나 몇 시간 정도가 아니라 며칠 혹은 몇 주, 심지어 몇 달이 걸릴 일라면? 단지 슈퍼마켓에 가거나 친척 집에 가거나 휴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두 번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온 가족이 이주를 하는 것이라면?
-p.22 〈새가 이주하는 이유〉
성조는 깃털갈이 시기에 가장 취약해진다. 깃털이 눈에 띄게 빠지면 비행 능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흰죽지(Aythya americana) 같은 오리류를 비롯한 기러기류와 고니류는 깃털갈이 시기에 날개깃이 모두 빠져서 일시적으로 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종들은 깃털이 다 빠지기 전에 더 안전하고 고립된 지역으로 이동하는 ‘깃털갈이 이주’를 한다.
-p.38 〈다양한 이주 유형〉
새들이 원활한 비행을 위해 몸무게를 너무 많이는 늘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철새는 살을 빨리 찌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를 겪는 동시에 어떤 부위의 무게는 줄인다. 비행 중에는 쓸모없고 속도를 더디게만 하는 생식기관은 거의 사라질 정도로 줄어들고, 일단 이주를 시작하면 모래주머니, 위, 장, 간을 포함해 확장됐던 소화관도 줄어든다. 더 많이 날고 덜 먹을 때는 불필요한 부위의 무게를 대부분 덜어낸다. 심지어 어떤 철새는 이주하기 전에 다리 근육도 많이 줄인다.
-p.50 〈이주를 위한 준비〉
철새는 일반적으로 두 서식지 사이 경로 상의 어느 지역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 속도가 빠른 폭풍우, 이르게 찾아온 홍수로 달라진 강바닥, 혹은 산불로 타버린 지역과 같은 작은 변화들이 그동안 새들이 따랐던 경로를 쉽게 바꿔놓는다. 허리케인에의해 해안선이 바뀌고, 산사태로 육지의 윤곽이 달라지고, 심지어 지진으로 최적의 서식지가 이동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철새는 이전에 선택했던 서식지와 파악된 경로를 버리고 다른 서식지와 경로를 찾아야 한다. 공기의 흐름, 바람 패턴, 계절에 따른 날씨 변화가 새들의 이주 기간 내내 날아갈 경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p.54 〈이주 경로〉
결국 ‘맹금류 무리’라는 건 환상일 뿐이지만, 놀라운 숫자로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이주비행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깜짝 놀랄 만한 장관을 빚어낸다. 예를 들어 동쪽은 대서양에, 서쪽은 시에라마드레산맥에 가로막힌 멕시코 베라크루스 지역은 이주하는 맹금류를 매우 좁은 통로로 끌어들이는 병목 구간이다. 그 결과 새들이 한창 이주하는 시기에는 한 장소에서 450만 마리 이상을 볼 수도 있다.
-p.65 〈이주 경로〉
자동차로 장시간 여행하는 사람들이 목적지에 닿기 전에 어딘가를 경유하거나 가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듯이 대부분의 철새도 이동 중 주기적으로 멈춘다. 새들은 단지 지친 몸을 쉴 뿐만 아니라 남은 여정에 에너지로 쓸 풍부한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가능하면 비옥한 서식지를 골라서 멈추려는 경향이 있다. 자원이 풍부해 수많은 철새가 쉬었다 가는 이런 장소를 일반적으로 ‘중간기착지’ 혹은 ‘통과서식지’라고 부른다.
-p.74 〈아직도 멀었어?〉
새의 시력과 청력은 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하다. 이 어마어마한 인지감각 덕에 철새는 몸속에 서식지 간의 이주 경로를 담은 자기만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 특히 낮에 이주하는 맹금류와 칼새, 제비, 사다새, 벌새 같은 종류의 새들에게 산, 섬, 강, 협곡, 해안을 아우르는 지형을 담은 이 지도는 무척 중요하다.
-p.83 〈철새가 길을 찾는 법〉
철새는 이주하는 동안 가끔 일반적이지 않은 장소에서 우연히 쉴 자리를 발견해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알래스카에서 중국 방향으로 날아가면서 탈진한 철새가 강력한 윈드시어를 마주치면 태평양을 이동하던 화물선을 긴급한 피난처로 활용할 수 있다. 새는 그곳에서 하루 이틀을 쉬며 선원들이 호의로 나눠주는 음식을 즐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배는 계속해서 항해해 새를 원래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에 있는 캘리포니아 남부, 호주 혹은 에콰도르에 데려다놓을 수 있다.
-p.94 〈미조(迷鳥), 길을 잃다〉
새들은 나무와 절벽, 다른 새와 같은 익숙한 장애물은 잘 인지하는 반면 익숙하지 않은 인공 장애물은 피하지 못하고 쉽게 부딪쳐 부상을 입는다. 빛 반사를 일으키는 유리 건물과 창문들은 새들의 충돌 사고가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장애물이다. 특히 유리 표면에 식물과 하늘이 반사되어 완벽하게 안전한 피난처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더욱 위험하다.
-p.103 〈익숙한 경로에 도사린 위험들〉
명백하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적 정신을 지녔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철새가 계절에 따라 다른 종으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새들이 깃털갈이를 하는 모습과 여러 시기에 다양한 종이 이주하는 모습을 관찰한 그는 대륙딱새(Phoenicurus phoenicurus)가 꼬까울새로 탈바꿈한다고 선언했다. 두 종이 같이 목격된 적이 없으며 몸 크기와 깃 색깔이 비슷하다는 점으로 가설을 뒷받침했다. 오늘날 그 생각은 말도 안 된다고 느껴지지만 지난 2000년 이상 동안 철새의 이주가 학자들을 매료시켰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p.118 〈새의 이주에 관한 헛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