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중국인민해방군 창군 100주년을 맞이한 2027년 8월 1일, 중국은 재통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타이완 침공을 기어코 단행한다. _〈본문 14쪽〉
머리 위로 드리운 거대한 먹구름 2개와 작은 먹구름 하나. 이 먹구름들은 서로 밀접하게 붙어 있다. 작은 불꽃 하나만 튀어도 천둥과 번개가 연쇄적으로 칠 수 있는 복합 장마전선이 동북아시아에 발달한 셈이다. 두 거대 핵보유국 러시아와 중국(2). 그보다 작지만 전체 장마전선을 거대한 뇌운 덩어리로 단숨에 바꿀 수 있는 소형 핵보유국 북한(0.5). 이들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상황(2+0.5)을 나는 동북아시아 ‘핵 2.5 시대’라고 정의한다. _〈본문 17쪽〉
1장 미국의 잃어버린 20년과 신냉전
윤장호 하사의 전사 직후 한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철수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어떤 언론사도 미국 등 다국적군의 전사 소식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전쟁 기간 최다 전사자 배출 국가는 미국(2465명), 영국(455명), 캐나다(158명), 프랑스(86명), 독일(54명) 순이었다. 모두 전투병을 보낸 나라들이다. 한국군 전사자는 단 1명이지만, 전사자가 발생한 직후 한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비전투 병력을 뺐다. 미국이 지고 있는 부담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_〈본문 29쪽〉
《국방 전략서》의 전제는 명확하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 무분별하게 관여했던 미군들을 불러들여 재편과 재무장을 단행하는 것. 그렇다면 미군이 물러난 자리에 생기는 병력 공백은? 동맹과 우방이 메꿔야 한다는 취지다. 앞으로 세계 분쟁 관여에서 그만큼 ‘기회비용’을 따지겠다는 의미다. 동맹이 갈취하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장의 본질은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최우선 위협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쟁에 전적으로 미국 홀로 대응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 문제 역시 동맹과 우방의 참여를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_〈본문 33쪽〉
거대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펜타곤이 제시한 실질 국방 예산 증가율은 3~5퍼센트다. 그러나 여기에 턱없이 못 미치는 1퍼센트 중반대의 증가율로는 재무장은 차치하고 현상 유지에도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_〈본문 39쪽〉
2022년 발표된 《국방 전략서》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 변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위협을 새로 추가했지만, 최우선 위협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중국을 미국의 가장 종합적이고 심각한 도전으로, 러시아를 급성 위협으로 명시했다. 반면에 기존 2순위에 위치했던 북한과 이란은 3순위인 테러 단체와 뭉뚱그려져 ‘기타 위협’으로 재분류되었다. 명목상 분류 순위로만 본다면 오히려 북한 문제는 전임 트럼프 정부보다 가중치가 더욱 떨어진 듯한 인상마저 든다. _〈본문 40쪽〉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충돌 상황에서 개입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delusion입니다. _〈본문 42쪽〉
“도대체 우리가 왜 한국을 지켜줘야 돼? 우리는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어. 한국은 부자 나라잖아.” _〈본문 46쪽〉
부담 분담의 뜻은 말 그대로 미국이 지고 있는 짐burden을 나누는 것sharing이다. 미군 주둔비 분담도 짐을 더는 한 가지 형태로, 비용 분담cost sharing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비용만 지불한다면 미군은 용병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비용 분담금 인상 요구 당시 워싱턴 조야의 군 출신들이 “우리는 용병이 아니다”라며 비판한 맥락도 이 때문이다. 다만 펜타곤이 강조하는 부담 분담의 본질은 따로 있다. 동맹의 ‘자체 국방력 강화’와 ‘거대 패권 경쟁의 참여’다. _〈본문 52쪽〉
한 펜타곤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나에게 “더 이상 한국이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동맹은 상호적”이라며 한국이 말로만 ‘피로 맺어진 동맹’(혈맹)이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동맹인 미국과 동맹이 아닌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외친다면, 미국의 관점에서 중국 편에 붙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_〈본문 56쪽〉
마이크 켈리 공화당 간사는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회색 지대’ 전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전부터 만연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함께 출석한 제임스 설리번 국방정보국 사이버 담당관은 중국의 경우 심리전, 여론전, 법률전으로 구성된 3개 전쟁, 이른바 ‘삼전三戰, three warfares’ 군사 교리military doctrine를 바탕으로 상대국의 사기 저하와 국내 외 여론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증언했다. _〈본문 64쪽〉
두 저자는 초한전을 수행하기 위한 24가지 전법을 제시했다. 종래의 군사 전법으로 핵전쟁을 의미하는 원자전, 재래전, 생화학전, 우주전, 전자전, 유격전, 테러전, 생태전을 열거했다. 또 비군사非軍事 분야의 전쟁 수행 방식으로는 금융전, 무역전, 자원전, 경제원조전, 법률전, 제재전, 언론전, 이념전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군사 영역을 초월한 초군사超軍事 분야의 전쟁 수행 방식으로는 외교전, 인터넷전, 정보전, 심리전, 기술전, 밀수전, 마약전, 사이버전을 명시했다. (…)
이 책의 핵심 전제는 앞으로의 전쟁이 어느 특정 영역에 국한해서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_〈본문 67쪽〉
초한전 교리의 등장으로 미국으로서는 땅, 하늘, 바다, 우주, 사이버 등 모든 영역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홀로 만리장성을 구축하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적성국이 영역을 한정 짓지 않기 때문에 싸워야 할 전장이 늘어날수록 방어하는 측의 비용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모두 온전히 미국민의 혈세로 말이다. 미국이 세계 경찰 국가 역할에 피로도를 느끼는 이유다.
미국이 동맹의 부담 분담을 강조하는 이유도 무한에 가까운 공터에 더 이상 홀로 요새를 세우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_〈본문 73쪽〉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제 워싱턴D.C.에서 중국의 군사 전략인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 Denial, A2/AD’는 일상 용어가 되었다. 쉽게 풀이하자면 내 앞마당에 못 들어오게 하고, 어떻게 운이 좋아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활동 못 하게 방해한다는 의미다. 상상해보라.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증원 병력이 해상에서 차단당했더라면 당초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중국-북한 군세를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도련선島鏈線, island chain’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된다. 섬과 섬을 사슬처럼 잇는 선이라는 뜻이다. 미군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은 태평양에 총 3개의 도련선을 설정했다. _〈본문 76쪽〉
미군은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에 맞서 장거리·고정밀 타격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공표했다. 멀리서 때린다는 것은 누군가는 앞에서 ‘몸빵’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 북한과 중국의 포화 사격망 한가운데 놓여 있다. 자신들이 진격해 올 때까지 한국이 제1도련선 안에서 스스로 버텨낼 수 있는 역량을 미국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맹과 우방이 1순위 위협(중국, 러시아)에 대해서도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목할 대목은 도련선 안쪽에 있는 국가들이 미국의 핵심 동맹(한국, 일본, 필리핀)이나 우방(타이완)이란 점이다. 유사시 이 나라들이 도련선 안쪽에서 해상 만리장성이 허물어지도록 난리를 쳐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도련선 안쪽 국가들의 무장 강화는 역으로 중국을 만리장성 안에 가두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_〈본문 80쪽〉
많은 한국인은 미국의 방위 의무가 북한 침공에 한정돼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범위는 미군이 참전하는 한 태평양 지역 전체를 포괄한다. 남중국해나 타이완 등 한반도와 떨어진 곳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해도 한국은 자동 참전 의무를 진다. 펜타곤은 한국이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그물망을 끊을 수 있는 가위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_〈본문 81쪽〉
유무형의 창과 방패를 갖춘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종래와는 한 차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사이버 공격에 견뎌낼 수 있어야 하고, 십자포화 사격 때문에 뭉쳐 있어서도 안 된다. 서로 분산되어 있어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군은 그 방안을 ‘킬웹Kill Web’에서 찾았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근간이 되는 ‘킬체인Kill Chain’을 알아야 한다. _〈본문 83쪽〉
각 군의 독자 킬체인을 그물망처럼 포개어 서로의 킬체인을 공유할 수 있는 방식이 타격 ‘그물망’ 체계, 킬웹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타격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소요 시간도 대폭 줄일 수 있다. _〈본문 87쪽〉
이런 역량을 현실화하려면 하늘을 담당하는 공군도 지상과 해상의 전투에 적극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육군도 연안에 들어온 적 구축함을 파괴할 수 있는 해상 공격 능력이나 공중의 적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해군도 공중과 지상 전투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각 군이 세분화해 맡았던 영역인 땅(육군/해병대), 하늘(공군), 바다(해군), 우주(우주군)의 경계선을 허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땅, 하늘, 바다, 우주, 사이버로 나뉘었던 전장에 각 군이 모두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군사 용어로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 MDO’이라 부른다. _〈본문 89쪽〉
각기 따로 놀던 군대를 하나의 유기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인 공격 조합을 구성해 적시에 명령 내릴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펜타곤은 각 군이 별도로 운용하는 정보 수집 센서와 전술 통제망을 단일화하는 지휘 통제 연결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 사업의 정식 명칭은 합동전영역지휘통제Joint All Domain Command & Control, JADC2로 말 그대로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지휘 통제 체제인 셈이다. _〈본문 91쪽〉
한편 미군이 다영역 작전을 채택한 데는 수십 년간 국방 예산 압박을 받고 있는 현실의 셈법도 반영되었다. 펜타곤이 분류한 1순위 위협인 중국과 러시아, 2순위 위협인 북한과 이란, 3순위 위협인 테러는 각기 다른 역량을 갖고 있다. 종래의 셈법이라면 각각 적성국의 역량에 맞는 군대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을 가진 미국으로서는 여유가 없다. 다영역 작전의 전쟁 교리는 중국과 같은 최대 패권 경쟁국이든 그보다 위험 순위가 낮은 북한과 같은 대상이든 분리 대응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군대로 탈바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군대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주한미군 활용 용도가 잠재적으로 한반도에서 인도태평양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군대로 바뀐다는 의미다. 펜타곤이 주한미군을 한반도 ‘붙박이 군대’로 두고 싶어하지 않는 속내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 남중국해나 타이완해협 유사시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군대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반도를 떠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련선 가장 안쪽에 있는 한반도에 상주하면서 중국 목 밑에 비수를 겨눌 수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구성은 육군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펜타곤 당국자들이 육군의 장거리·고정밀 타격 역량 획득을 다영역 작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고 있는 것도 중국을 염두에 둔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사실은 펜타곤의 시야가 더 이상 한반도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_〈본문 93~94쪽〉
2장 동북아 핵 2.5 시대 가중되는 미국의 부담
중국이 현재의 핵무기 확장 속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2035년경에 약 1500개를 실전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1500개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세계 핵탄두 보유고 순위를 비교해보자.
미국과학자연맹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FAS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핵탄두 보유량은 러시아, 미국, 중국 순으로 각각 5889개, 5244개, 410개다. 1500개는 중국이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네 자릿수 핵보유국에 등극한다는 의미다. 특히 주목해야 할 내용은 비록 미국이 두 번째 자리를 차지했지만, 핵무기 노후화 등으로 인해 보유량이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에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대목이다. 북한의 경우 언제나 실제 핵 보유량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있는 편이지만 미국과학자연맹은 40개 이상으로 추정하면서, 역시 증가세를 보인다고 밝혔다. _〈본문 101~102쪽〉
중국이 ‘최대 억제’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는 주변국을 겨냥해 핵 협박을 늘릴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핵탄두의 수적 우위를 활용하면 평시에도 경제적 갈취, 동맹 이간질, 외교적 압박 등의 선택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중국이 최근 들어 전략폭격기를 타이완의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에 전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시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핵탄두의 수적 차이가 오히려 평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최소 억제의 상징과 같았던 ‘핵무기 선제 불사용’ 원칙을 철폐할 수 있다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_〈본문 106쪽〉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전략사령부가 던진 핵심 의제들이 북핵 문제는 콕 찍어서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국가 존립 위협인 북핵이 미국의 관점에서는 0.5 위협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대목이다. 핵무기 보유량 네 자릿수인 러시아, 그리고 조만간 같은 반열에 들 중국과 견주어 북한은 아직 불과 두 자릿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미국의 위협 인식 셈법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_〈본문 110쪽〉
한국 언론 기사만 본다면 워싱턴D.C.가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에 엄청 긴장한 것처럼 비쳤으리라. 하지만 북한 문제는 미국 의회에서 더 이상 주요 의제에 들어가지 않는다. 나아가 주한미군사령관의 역할 또한 한반도를 넘어 확대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발언은 타이완 또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도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다. 지금까지 주한미군을 북한 침공 시에만 사용하는 ‘붙박이 군대’로 여겼던 한국 사회로서는 적지 않는 충격을 준 일화다. 한국인으로서는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갈등에 주한미군이 투입될 경우 한반도 안보 공백을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_〈본문 115~116쪽〉
북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핵무장 찬성 여론이 60퍼센트를 꾸준히 넘기고 있다. 이 수치는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보수·진보를 넘어 중도층까지 아우르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1년 안에 핵무장 할 수 있다고 했다. 핵무장론이 나올 때마다 미국의 답변은 한결같다. “그쪽으로 가면 재미없을 줄 알아.” 핵무장 선택지 대신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 억제력(핵우산)은 확고하다는 상투적인 약속과 함께. _〈본문 124쪽〉
판타 부차관보는 한때 200개에 달했던 한반도 내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면 핵을 반대하는 한국 내 정치권과의 마찰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은 굳이 동맹의 영토 안에 없으면서 해안으로 들어왔는지도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이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정부의 셈법은 단순히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관점에서는 더 큰 위협인 중국, 러시아의 핵을 동시에 억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잠수함을 통해 공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특성 때문이다. _〈본문 131쪽〉
비싼 돈 들여 핵무기 현대화를 하자니 사회 기반 시설 확충, 경제 부양 등 다른 현안들이 눈에 밟힌다. 핵무기 재테크를 안 하자니 확장 억제력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동맹국들이 신경 쓰인다. 미국으로서는 복수의 핵무장 적성국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023년 7월 20일 미국의 오하이오급 탄도미사일핵추진잠수함SSBN(전략핵잠수함)이 부산에 입항한 것을 두고 한국은 확장 억제력 강화의 일환이라고 환호했다. 반면에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확장 억제력 공약을 이행하는 미국의 심경은 복잡하다. _〈본문 134쪽〉
가령 트럼프 정부 당시 피터 판타 미 국방부 핵문제 담당 부차관보는 2019년 5월 간담회에서 “오직 미국의 핵 억제력만이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줘 연쇄적인 핵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는 진부함마저 느껴지는 이른바 ‘핵 도미노 현상’을 내세운 것이다. 이들 전현직 관리를 설득시키지 않고는 아무리 미국 내 소수 의견에 편승해 한국 여론을 부추긴다고 하더라도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없다. _〈본문 155쪽〉
한편 유사시 즉시 사용 가능한 미국의 핵탄두 숫자가 1288개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미국은 적성국마다 유사시 투하할 수 있는 핵탄두 양을 미리 할당하는 핵전략을 세워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핵 보유량이 가장 많은 러시아, 향후 1500개 이상 실전 배치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 순으로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당연한 추론이다. 그렇다면 북핵에 대응할 핵탄두의 양은 아예 없거나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설사 여분이 있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억제하기 위해 북한에 모두 소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 할당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모호한 태도 때문에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이 유사시 확장 억제력을 제공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국은 이 대목을 미국에 집중적으로 추궁해야 한다. 자칫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한반도에 할당되는 핵무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_〈본문 163쪽〉
3장 극초음속미사일 시대 한일 관계의 함의
미국이 동맹 간 빠른 정보 공유 체제를 추진하는 본질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적성국의 진화하는 위협 때문이다. 교묘히 조기 경보 탐지를 피하고 기습 타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적성국들의 미사일 발사 역량 때문에 더 이상 한가로이 앉아 계산기만 두드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이는 비단 북한군의 교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앞에서 다루었듯 중국은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도련선 인근에 배치해놓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유사시 사이버전, 정보전 등 비군사 수단까지 함께 동원할 수 있다. 아군의 지휘 통제망에 혼란을 야기하는 방식을 교리로 차용하고 있다. 미군이 각 군을 다영역 작전 군대로 만들어서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한 배경에도 적성국의 진화하는 공격 방식이 작용했다. _〈본문 195쪽〉
극초음속 비행체가 위협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빠를 뿐 아니라 비행 궤적이 불규칙(변칙 기동)하기 때문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발사된 뒤 일정한 포물선을 그린다. 상승 과정에서 대기권을 돌파해 우주로 나갔다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예측 가능한 궤적으로 비행한다. 궤적과 시간만 잘 맞춘다면 미사일 방어 탐지망으로 요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극초음속 비행체는 중간에 궤적을 바꾸기 때문에 요격 자체가 현존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야구공으로 따지면 강속구에 변화구까지 들어간 셈이다. _〈본문 204쪽〉
보고서는 ‘발사의 왼편’의 선택지로 운동역학적kinetic 또는 비운동역학적non-kinetic 수단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군사학에서 운동역학적 수단은 미사일이나 총알 등 추진체가 미는 힘에 의해 나가는 무기를 말한다. 반대로 비운동역학적 수단은 미는 힘 없이 나가는 무기인 레이저, 전자전(사이버전), 해킹 등을 의미한다. ‘발사의 왼편’이 물리적 원점 타격 등 공격적인 선택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적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 ‘대응 시간의 길이’를 강조한 점이다. 제한된 기회의 창windows of opportunity을 놓쳐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풀어보자면 극초음속미사일이나 고체연료 미사일처럼 발사 결정 주기가 짧고 기습적으로 쏠 가능성 있는 표적일수록 ‘발사의 왼편’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런 형태의 공격 역량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때마침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된 2017년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대놓고 괌에 대한 미사일 타격을 시사한 시기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펜타곤은 더 이상 미사일이 날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방어 태세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공세적 방어 개념이 도입되면서 공격과 방어의 개념 자체가 모호해진 것이다. 여기에는 소리보다 빠른 극초음속미사일의 등장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목표물에 도달하기까지 불과 2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아서 대처 시간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이다. _〈본문 214쪽〉
‘선제공격’에 무게를 싣기 시작한 미국, 한국, 일본이지만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오판 위험성이다. 적이 발사하기 전에 미사일을 무력화하려면 조기 경보가 신속하고 정확해야 발사 원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는 더욱 발사 주기를 짧게 가져갈 것이 뻔하다. 지난 2018년 폴 셀바 미국 합참차장은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12분 안에 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한 바 있다.20 상대가 여러 대의 이동식 발사대를 전개할 경우 추적이 더욱 어려워진다. 실제로 1차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은 이동식 발사대 원점 타격에 실패한 이력이 있다. 또 핵탄두 장착 미사일이 이 중에 섞여 있다면 최우선 표적을 선정하는 데도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_〈본문 233쪽〉
이와 관련한 펜타곤의 속내는 다르다. ‘발사의 왼편’은 한 국가의 주권적인 결정이므로 자국의 집단 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자위 조치로 행사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일본이 북한의 공격을 받거나 공격이 임박했을 경우에 대북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일본의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선제공격 뒤 예상되는 북한의 보복이다. 북한의 총구가 도쿄가 아니라 서울로 향할 경우 2차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이 입게 된다. _〈본문 238쪽〉
이쯤에서 한일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원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세간에서는 지소미아가 북한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에 대한 정보 공유를 골자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수동적 미사일 방어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봤듯 지소미아의 범위는 ‘각 당사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 보호에 필요한 방위에 관련된 모든 정보’로 훨씬 포괄적이다. _〈본문 239쪽〉
역동적 병력 전개의 적용은 ‘한반도 붙박이’ 주한미군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오늘 한국에 있더라도 역내 수요에 따라 내일 타이완, 일본 등으로 유연하게 부대를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한반도 유사시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이 관여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_〈본문 247쪽〉
4장 우크라이나, 타이완 그리고 한반도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한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실제로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한국과의 1, 2차 미사일 지침 개정 협의에 깊이 관여했던 게리 세이모어Gary Samore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4차 개정 지침만으로도 충분히 북한에 대한 억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한국이 일본을 잠재적 적대국으로 의식한다고 하더라도 800킬로미터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미사일 사거리 지침 종료는 대북용이 아니라 대중용이라는 분석이다. _〈본문 275쪽〉
인도태평양사령관이 타이완 침공 가능성을 언급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한국과 일본 언론 사이에는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타이완 문제가 마치 중동 분쟁이나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멀리 떨어진 문제처럼 인식되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은 인도, 태국, 베트남과는 달리 어느 한쪽이 공격을 받으면 개입해야 하는 쌍무적 관계에 놓여 있다. 필리핀도 이런 의무를 지고 있지만 한국에는 병력을 투사할 수 있는 주한미군이 상주하고 있다. _〈본문 282쪽〉
나는 국내 논쟁이 미국의 속내를 제대로 꿰뚫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전작권을 놓지 않는 이유가 한국을 한반도 외의 전장 무대에 끌어들이기 위한 사슬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아시아에 항구적인 주둔 기지가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전작권을 한국에 양보해줄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워싱턴D.C. 내에서는 오히려 전작권 전환을 반기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_〈본문 289쪽〉
기존 임무의 수정이란 주한미군에 부과된 고유의 임무, 즉 한반도 방어 임무의 수정을 시사한다. 또 홀리 의원이 강조한 ‘유연성’은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한반도 방위를 위해서만 썼던 주한미군 병력을 다른 지역의 위급 상황 시 언제든지 빼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전작권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간 상관관계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_〈본문 291쪽〉
한국군으로의 전작권 이양이 완료된다면 주한미군의 기갑 전력 등 대규모 전투를 위한 병력을 더 위급한 지역에 사용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언한다. 전작권 전환 이후 주한미군 부대의 편성은 정보, 사이버, 미사일 방어 등 보조적인 성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꿔 말하자면 ‘몸빵’은 한국군이 하고 주한미군은 보조하는 역할로 출혈을 최소화한다는 이야기다. _〈본문 294쪽〉
중국과 러시아라는 최우선순위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자원을 집중한다.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기타 문제’의 관여는 동맹과 우방에 맡기고 미국은 뒤로 빠진다. 한편 최우선 위협은 미국 홀로 맞서 싸울 수 없기 때문에 동맹과 우방의 부담 분담을 늘려 거대 패권 경쟁에 참여를 유도한다. 이 같은 논리를 전작권 전환 문제와 결부하자면, 한반도 방위는 미국이 이제는 전적으로 신경 쓰기 어려운 상황이니 세세한 문제는 한국에 맡기겠다는 취지다. 전략적 유연성이 중국에 맞서 실제 주한미군 병력을 다른 지역으로 빼내기 위한 장치라면, 전작권 전환은 한국이 북한 문제를 떠맡도록 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_〈본문 299쪽〉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은 한국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으로도 일본의 역내 역할 확대를 독려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국방 전략서》에서 명시하고 있는 동맹의 부담 분담 역할 확대 관점에도 부합한다. 2순위 위협(북한)뿐 아니라 1순위 위협(중국, 러시아) 대처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셈법은 일본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소리다. 미국의 역내 역할 확대 압박은 필연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관여 문제와 연계될 수밖에 없다. _〈본문 308쪽〉
5장 미중 패권 경쟁과 대한민국의 선택지
바이든 정권의 실세인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과 커트 캠벨Kurt Campbell 국가안전보장회의 인도태평양조정관. 이 둘은 재야 시절인 2019년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미국이 왜 간접화법을 구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혔다.2
두 사람은 미국과 구소련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했던 냉전 셈법이 자본주의와 융합한 독재주의 중국에는 통하지 않는 접근법이라고 지적했다. 반중국 연대를 강요할 경우 미국이 자칫 ‘중국과 경쟁’할 때만 제3국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노골적인 ‘반중 연대’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 등의 가치와 원칙을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이런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는 만큼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명분에서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_〈본문 318쪽〉
야치 쇼타로는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1969년 일본 외무성에 들어가 인사과장, 조약국 법규과장, 조약국장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 정계를 거치지 않은 순수 정통 외교파다. 아베 총리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시한 것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구상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현재 미국의 최우선 외교 안보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발상 전환이 일본 외교관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대목이다. _〈본문 353쪽〉
현재 일본 외무성의 정원은 6604명이다. 다른 선진국들의 외교 인력을 보면 미국 3만 명, 러시아 1만 2000명, 프랑스 9000명, 영국 8000명, 독일 7000명 정도다. 일본 현지 매체들은 이런 증원의 원인으로 대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외교 정책 수요 증가를 꼽고 있다. 특히 안전 보장상 중요한 위치에 소재한 동남아시아, 태평양 제도 국가들에 재외 공관을 신설하는 동시에 사이버, 정보, 경제 안보 분야 등 전문성이 높은 외교직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초한전’ 교리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겠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외교 인력 실태는 어떨까? 외교부와 국방부에 직접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확인 결과 2023년 6월 기준 외교부 정원의 총원은 2501명이다. 이 중 외교관은 2194명, 일반직은 273명이다. 무관의 경우 53개국에 77명이 주재 중이다. 무관까지 합치면 2578명인 셈이다. 현재 일본 정원의 약 40퍼센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_〈본문 356쪽〉
글을 마치며
엘브리지 콜비 전 부차관보 등 이 책에 등장한 많은 전현직 펜타곤 관리들은 한국의 ‘중립’을 ‘적대‘와 동일시했다. 반면에 중국은 ‘작은 나라가 어찌 큰 나라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느냐’라며 반세기 만에 조공 관계를 연상케 하는 듯한 강경 대외 행보를 취하고 있다. 어설픈 ‘중립’을 표방했다가 망국의 길로 들어선 대한제국 말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국제 정세가 연상된다. 다만 이번 양자택일의 순간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더 이상 미국 편을 든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미국이 내세우는 ‘동맹 부담 분담’ 논리는 대중국 견제 참여가 ‘선택’이 아닌 ‘의무’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의 한국 보호 근거로 줄곧 주창해왔던 ‘한미 간의 혈맹’을, 이제는 거꾸로 미국이 70여 년 전 미국 젊은이들이 한국을 위해 피 흘린 대가에 대한 정당한 요구의 근거로 내세운다. 미국의 이런 셈법을 모르고 협상장에 나갔다가는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과도한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 미국 편을 들더라도 우리 국력에 걸맞은 ‘공정한’ 부담이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미국과의 협상 역량 제고와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나로서도 마땅한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반도 천동설’을 우선 깨뜨리는 것이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우는 첫 번째 길이라고 생각한다. 거대 담론인 ‘What’에 매몰되어 실행 방안인 ‘How’를 준비하는 데 소홀해선 안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한다. ‘What’에서 ‘How’로 시점을 옮기는 첫걸음을 미국 본심 읽기로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_〈본문 3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