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이라는 개념의 감옥에 우리가 가둔 것들
책을 펼치면 뭔가 심상찮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긴장감 속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적인’ 독자는 한 가지 당황스러운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친한 친구끼리 ‘메롱’하고 도망가도 학교폭력으로 처리된다고? 꼬투리를 잡아 보복성 신고로 괴롭히면, 교사와 피해 학생 모두 속수무책일 거라고? 허위 신고가 들어와도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시켜야만 한다고? 언뜻 황당하기까지 한 이 질문들에, 오늘날 학교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모두 ‘YES’뿐이다.
학교폭력의 법적 정의는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다. 친한 친구가 ‘메롱’하고 도망가도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면 학교폭력에 부합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정의하는 재판정의 피고석에는 우리가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성큼성큼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어쩌면 아이가 학교에서 겪은 모든 ‘나쁜 일’들의 다른 이름이 ‘학폭’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의 일상은 경계 없는 법적 언어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중이다.
친구들끼리 달려가다 메롱이라고 놀렸다고 ‘보복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쯤이야, 지나고 나면 그냥 웃어넘길 만한 해프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본 실제의 현실은 조금 더 비극적이다.
2023년 한 해, 서이초 선생님의 비극적인 죽음 직후부터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가십으로든 드라마로든 학폭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주제가 되었다. 그 사이에서 던져진 많은 말들 속에서, 정작 ‘학폭’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학생들의 삶, 그리고 가장 일선에서 분투하던 교사들의 당사자적인 외침들을 주목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 가짜 학폭이 아닌
‘학교 현장의 진짜 학폭’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
‘당신의 자식은 학교폭력의 가해자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부모가 있겠는가? 이것보다 더 아픈 것은 ‘피해자입니다’라는 말뿐일 터. 학폭 가해자는 반드시 엄벌해야 하고, 교실에서 즉시 쫓아내야 하는 세태 속에서 어떤 부모도, 자기 아이가 정말 무고했건 아니면 진짜 ‘나쁜 새끼’였건, 가해자로 프레이밍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반면 피해자는 반드시 억울함을 풀어야 하고 다소 무리한 주장을 해도 용인받는 것이 다반사니, 모두 피해자가 될 방법은 없는지 연구하기 시작한다. 쉬운 해결책(?)은 보복성 고소로 원고와 피고의 위치를 뒤바꾸는 것이다.
이 책은 ‘내 자식 지키기’라는 진군나팔의 굉음 속에서 유탄을 맞아 비틀대는 어느 교사의 이야기다. “이 글은 소설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사건, 배경, 기관명 등은 모두 허구의 내용입니다”라며 ‘소설’은 시작하지만, 우리는 영화관에서 그 비슷한 메시지들을 보며 늘 직감해 왔듯, 그것은 ‘이 작품은 사실에 기반했습니다’보다 훨씬 더 날것의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는 안내와 다름없다.
책 뒤의 추천사에 적힌 많은 교사들 – 교육계의 진보와 보수, 현장과 학계를 총망라한 - 의 절실하고 또 절실한 문장과 문장들의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그것이 교실이 마주한 한 편의 현실이다. 물론 법은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도, 분리도, 강력한 교정도 필요불가결하다. 하지만 법적 계산만이 난무하는 현실은 교육이라는 현실에 참여하는 여러 당사자들이 선의를 발휘할 여지를 남겨놓지 않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일차적으로는 교실이라는 하나의 교육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그 작은 디오라마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역시 남기고 있다.
현실의 무거움을 그림의 귀여움이 조금은 완화시켜준다는 것이 이 책의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랄까. 현직 초등교사 3인(‘꿈몽글’ 멤버 L, K, H)이 뜻을 모아 자료를 조사하고 현실을 토론하고 분석하며 한 꼭지씩 적어, 그려 내려간 결과물이 바로 이 책, 『학폭교사 위광조』다. 모쪼록 ‘학폭교사 위광조 선생’이 다음, 그리고 그다음으로 겪을 에피소드는 조금 더 해피엔딩이었으면 하는 염원을 쪽지처럼 붙여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