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지막 한 조각의 참하늘빛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나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애타게 무엇인가를 찾아 헤맸던 것 같다. _p.14
엄마가 내 세계로 넘어온 적은 없었지만, 나는 종종 엄마의 세계로 넘어가곤 했다. _p.45
돌아보면 나는 아프고 나서 알게 된 것이 무엇보다 많았다. 아파서 할 수 없었던 일만큼이나 아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도 있었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 짓기 어려웠다. 모든 것들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_p.67
사실 나는 식탐뿐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잘 조절되지 않는 무언가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되어버리고 마는 일들 앞에서 나도 같이 속수무책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_p.72
매일 아침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내가 자주 한 생각은 이런 것들이었다. 누군가 내 삶의 소중한 것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다는 생각, 또는 누군가가 마련해놓은 장난에 휘말리고 있다는 생각. 그래도 다행히 그런 생각에 오래 잠식당하지는 않는다. 그럴 땐 다시 이런 말을 되새길 따름이다. ‘내 앞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삶이 있을 뿐이다. 그 사실만 기억하면서 살아야 한다.’ _p.97
나에게 글쓰기란 크고 작은 문턱들이 끊임없이 내 발치에 걸리는 일이다. _p.104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어려운 이론서를 잘 독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은 이제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_p.131
한 권의 책을 찾는 여정에서 또 다른 책을,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는 이 순간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내가 전혀 모르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자주 길을 잃고 싶어진다. 책이라는 드넓은 세계에서만은 얼마든지 그러고 싶다. _p.157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하다고, 그러기 위해 좋은 길잡이가 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이 만남은 우리가 더 훌륭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에 꺼내 먹을 수 있는 작은 쿠키 같은 기억을 차곡차곡 쌓는 데 있다고, 나에게 말한다. _p.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