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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거의 밀물이어서


  • ISBN-13
    978-89-7973-612-0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도서출판 전망 / 도서출판 전망
  • 정가
    10,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3-11-16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정기남
  • 번역
    -
  • 메인주제어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해양시 #바다시 #해양시집 #시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0 * 205 mm, 173 Page

책소개

정기남 시인의 해양시집이다. 시인은 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항해사로, 해상교통관제사로 오랫동안 배를 탔다. 바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지니고 있으며, 또 그것을 시로 형상화하려는 진지하고 치열한 노력이 편편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측항해, 구면삼각함수, 오차삼각형, 풍배도, 킹스턴 밸브, 거멀못, 갱웨이, 흘수선 등 바다를 알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시어들이 생경하면서도 이채롭다. 핍진한 체험과 역동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이 시집은 한 권의 시집이면서 한 권의 바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푸른발부비새
감도 있습니까?
쇄빙선
천측항해
나침반
무중신호
이류무移流霧
모터 탱커 쌍코 프레스티지M/T SANKO PRESTGE
견습항해사
등대선燈臺船
도버해협
사르가소해
처녀 입항

제2부
흘수선吃水線
태풍주의보
널배
킹스턴 밸브
갱웨이gangway
거멀못
예인하다
나문재
꼼장어
준설하다
깡깡하다
양묘揚錨하다
3등 항해사와 1등 조타수

제3부
8만 마리 물고기가
갯비나리
바다의 무늬를 새기다
심청이 바다
송장헤엄
세월을 뒤집어엎다
바다는 거의 밀물이어서
유조선이 폭발했다
전복
원목선이 뒤집혔다
목선
해녀의 맨살

제4부
구멍 숭숭 바다
달은 바다에서 이지러지고
바다에 회랑을 두르고
몰운대
남외항에 묘박錨泊하다
고래
다대포구에 와서 노을지다
호마이카 바다
오르페우스의 바다
동두말 등대
칠산바다

해설 바다에서 읽는 공空의 지도 _김수우(시인)

본문인용

푸른발부비새



섬에 남은 것이라곤 푸른발의
푸른 다리들뿐이어서
푸른발로 부비부비하면서
조난당한 바다의 말씀들이
쌍으로 춤추듯이 뭉그러지고
구름처럼 둠칫거리다가
흩어지지 말자는 다짐으로
사금파리에 가시털이 돋고
꽁지깃에 뾰족부리가 솟고
절름발이 물갈퀴는 뒤뚱거리다가

갈라파고스 제도
습지의 심장들이라서
혓바닥을 발바닥에 맞대기할 때
습윤의 경계들이라서
귓바퀴를 서로의 입술에 꽂을 때
태평양 무풍대에 달뜨고
산크리스토발섬이 발기할 때
바다는 검은 태반으로
배꼽과 탯줄을 다시 이을 때

달아 문 열어라
그림자는 버려두고 오너라
달의 허리가 흔들리는 야한 밤에
푸른발이 부비부비하면서
푸른발부비부비하면서



감도 있습니까?



골짜기에 숨은 항구
무스카트 앞을 지날 때부터
페르시아만으로 접어들기 전부터
유조선은 등화관제를 했다
걸프전이 한창이었고

공중을 난무하는 초단파 통신은
“감도 있습니까?”
미래의 안녕을 호출하는 게 아니었다
인도양 산호충의 뿌리가 뽑혀나가고
상층대기권이 뒤집어졌다
전파의 통달거리는 늘어났지만
뱃놈들은 브릿지에서 더 외로워졌다

호르무즈 해협이 목을 누르고 있었다
포경선의 갬Gam*처럼
불통의 낱말들이 건네졌다
뭍에서 밀려난 자들 사이로
절름거리는 말들이 오갔다

뱃놈들의 귓바퀴가
새된 소리를 감청하고 있다는 소문이
바다를 배회하고 있었다
감도가 감도를 묻고 있었다
여기는 서아시아의 바다인데
메두사의 뗏목이 떠다니고 있었다
메카 순례 항로가 폐쇄되었다는
급전이 날아다녔다
“감도 있습니까?”
미사일이 아라비아 갯골을 파고들고 있었다



* 갬Gam: 두 척 이상의 포경선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교적 교류.



쇄빙선



발트해 지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초입 들어서자
너덜겅처럼 엔진 소리가 들끓었다
화물선이 몸뚱이 채 진저리쳤다
항적은 툰드라의 비행운처럼 제 꼬리를 물고

빙붕의 허리가 휘청,
뱃길이 접힐 듯 꺾어졌다
마냥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라서

엄동에는 오래 허리를 그러안을 일이다
뭉근한 아랫목의 사랑법이 그러듯이
샅이 데워지고 발굽을 세워서
썰매 날이 얼음을 흘레붙듯이
비탈을 올라탄 씨황소가
목덜미를 짚어 지긋이 눌러갔다
동토는 은근하게 녹아내려야 한다

돌아보니 길이 닫히고 있었다
우둘투둘했던 낱말들이 봉합 중이었다
복창을 앓던 난바다 가라앉고

푸른 도깨비불이 날았을까
다시 고요, 연금鍊金의 얼음꽃이 피었다
당신의 심중으로 헤엄쳐가는
향유고래의 교신이 은밀했다
물 아래로는 뜨겁게 녹는 중이고

뱃길을 내야 했다
당신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야 했다



천측항해


1. 박명시薄明時

별을 끌어내렸다
별은 제 발로 내려오지 않는다

이제 밤길을 가야 하는데
성간星間이 흐릿했다
구름은 저 아래로 표류하고
항해사는 두 다리를 버텨 섰다
가까스로 수평에 눈을 맞추고
별똥이 떨어지는 자리를 살폈다
알테어牽牛星와 베가織女星를 겨눠서
먹줄 쳐 놓은 수평선으로 끌어내렸다

시간은 천천히
미명을 불러왔다

어둠과 밝음이 엇섞여야
바다는 제대로 자리 잡는다
시리우스天狼와 데네브白鳥가 차례로 잡혀 왔다
만화경처럼 별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거울과 유리창을 맞대고
섹스탄트를 곧추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일순, 정지의 순간이 지나가고
바다가 바르르 떨렸다

거울에 비친 하늘과
선창 너머 바다가
푸른 점선으로 겹쳐졌다
해도의 좌표 위에
검은 빗금이 그어졌다

2. 오차삼각형誤差三角形

항해사는 커튼을 치고
해도실로 들어섰다
여름의 대삼각형*이
해도 위에 내려와 있었다
천측계산장을 폈다
허상을 가려내려고
천측계산표로 별들의 합合과 차差를 구했다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항해는
구면삼각함수**로 풀어내야 한다
오차삼각형 안에
당신을 위리안치한다
바다가 잠시 흔들리고
배가 간신히 빠져나갈 틈이 생겨났다

별이 끌려오고
지구가 흔들리고

어둠은 볼온하게 굴절 중이었다



* 대삼각형: 알테어, 베가, 데네브가 이루는 삼각형을 말한다. 여름철 별자리를 찾는 데 기준이 되고, 항해사가 천측할 때 주로 사용된다.
** 구면삼각함수: 구의 세 대원의 호로 이루어진 구면삼각형의 각의 크기와 연의 길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함수.




나침반



바다는 방향을 모르네
풍배도*의 장미 화살로
바람을 가늠해 볼 뿐
어차피 항해는 추측으로 하는 거지
자유롭게 떠 있어야 하는데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몰라 떨다 보면
국자가 남쪽을 가리키기도 하지
매생이 떠다니는 바다는 미끄러운 녹색
사막의 수반에 별을 띄우고
달의 방위를 지우면
바다는 말 더듬듯 어눌해지지
자계磁界의 바다는 흐릿하여
등대의 빛을 보정補正해보지만
서역으로 가는 사막에서는
작은 물방울만 떠다니고
다리 분질러진 콤파스로는
찌그러진 달밖에
그려내지 못한다네
수전증에 걸린 듯
부르르 떨리는 손 맞잡고
트레몰로 트레몰로로
다 같이 돌고 싶은데
미처 한 바퀴도 돌지 못하네
바다 요정들이 지느러미 세워
물 위에 그려낸 그림
파도가 쓰러져 내리며 지워버리네
하얀 지우개 똥이 흩어지고
바다는 여전히 방향을 모르네



* 풍배도: 어떤 지점에서 일정한 기간 중의 풍향별 빈도를 방사 모양의 그래프로 나타낸 그림.

서평

정기남 시인은 항해자였다. 그는 큰 배를 몰았고 세계의 항구들을 넘나들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유년 시절 남해와 뻘밭을 만난 그의 가슴바닥에 진즉 바다의 상상력이 자리 잡았던 걸까. 실제로 그는 천측계산장을 읽는 선장으로서 바다의 지도를 펼치고 또 펼쳐야 했다.(…)
나침반은 떨고 있다. 떨리는 나침반 바늘을 응시하면서 그의 촉수 또한 미세하게 떨린다. 「천측항해」과 마찬가지로 나침반을 읽는 일조차도 그에겐 끊임없이 흔들리는 영혼과 같다. 풍배도는 어떤 지점에서 일정 기간 바람 방향을 관측한 그림으로 바람장미라고 부른다. 바람을 계급별, 방향별, 그 발생빈도와 속도를 따라가며 지켜본다는 것은 어떤 공부일까. 매번 새롭게 피어날 바람장미. 바람의 틈과 겹을 보는 일, 그 형상화된 바람장미는 무한한 암시이다. 바람을 가늠하고 항해를 추측하는 내내 나침반 바늘의 떨림을 보다가 문득 북두칠성을 발견하는 시선에서 대자연의 무한이 다가온다. 바다가 “말 더듬듯 어눌해지”는 순간이란 우리는 도무지 감지할 수 없는 깨달음의 세계가 아닐까. 바람의 방향과 속도에 혼신을 기울이는 순간에 감지하는 자유란 또 무엇일까. 그래프로 그려낼 수 없는 그 무엇, 숨은 파장에 시인은 촉수를 뻗어 바람의 줄기와 잎을 헤아린다. 하여 나침반의 떨림은 이 시집 전체에서 숨은 은유로 작동한다.(…)
정기남 시인이 경험한 바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한국 해양문학의 물기둥을 새롭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부산도 그렇지만 한국은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다. 바다를 제대로 이해할 때 삶도 꿈도 더 선명해진다. 시인은 이 시집 외에 다른 시력詩歷이 없다. 하지만 바다에 대한 무한 애정을 시인의 눈으로 건너려는 의지는 누구보다도 높고 간절하다. 이 시집이 해양문학에 어떻게 자리 잡을지는 잘 모르지만, 한 인간의 바다가 어떻게 삶과 꿈을 관통하는지 생각할 때 그의 문학은 매우 새로운 세계를 확보했다고 믿는다. 혹여 시편에 가끔 묻어나는 생경스러움은 엄청난 독서가 선물한 그의 철학적 상상력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한결 접근하기 좋을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바다를 믿자. 거기에 사랑의 험난함과 사랑의 간절함과 사랑의 뜨거움이 출렁이고 있으니. 바다를 배우면 하늘을 배우는 것이니. 실제로 생명의 모든 여정이 항해라면 이 별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항해 중임을 그는 자각했으리라. 바다는 오늘도 우리에게 광막한 우주이다. 그 심연 또한 아득하다. 바다를 배우는 일, 바다를 사랑하는 일은 그 광막함과 아득함을 끝까지 저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 심연에는 우리를 회복하는 가시풀이 자라고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바다에게서 심연의 춤을 배운다.
_ 김수우(시인) 해설 중에서

저자소개

저자 : 정기남
순천매산중고, 한국해양대학 항해학과를 졸업 후 배를 탔다.
해상교통관제사로 일하면서, 『해상교통관제시스템론』을 냈다.

지금은 바다를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 부산의 인문학 공간 <백년어>에서 해양문학을 함께 읽고 있다. 공저로 『오솔길 안에는 아직도 오솔길이』, 『들뢰즈와 탈주하기』가 있다

출판사소개

1992년 설립된 부산 소재 출판사.
* 시, 소설, 수필, 문학평론 등 문학 중심 서적 발간.
* 그 외 문화비평, 인문학, 번역서, 사진집 등 단행본 다수 발간.
* 1999년부터 시전문계간지 <신생> 발간(현재 통권 95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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