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은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말수 적은 여성이다.
수줍어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도 않던 그녀가
살충제 위험 여부를 판단하는 청문회에서
DDT 살충제가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위험성을
40분에 걸쳐서 강력하게 발언하며 의원들을 노려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외에서 들어온 불개미, 말라리아 모기,
매미나방, 딱정벌레 등은 나라마다 골칫거리였다.
화학자인 뮐러가 만들어 낸 DDT는
지중해 지역에 널리 퍼진 말라리아 모기를 감소시켰고,
이 공을 인정받아 뮐러는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당시 이 살충제는 인간에게는 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비로운 DDT는 해충을 없애 주어,
나무나 농작물이 말끔하게 자라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DDT를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숭배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신비한 마법의 하얀 가루가
어떤 재앙을 몰고 올지 알지 못했다.
대중은 과학 지식이 전혀 없었고
지식인들은 정부와 기업과 결탁하여
그 위험성을 숨겼기 때문이다.
원래 레이첼 카슨은 바다와 관련한 것은
무엇이든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바다를 애타게 사랑하는 생물학자였다.
당시 사람들은 바다에 관해서 아는 지식이 별로 없었다.
그저 신비로운 존재로만 알 뿐이었고,
그나마 아는 것도 오류가 많았다.
그렇기에 레이첼 카슨은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바탕으로
바다를 주제로 한 책들을 출간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레이첼 카슨이 바다에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였고,
글을 쓰고 탐방하는 내내 충만했다.
그러나 『침묵의 봄』은 달랐다.
살충제 DDT의 무분별한 살포로,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고
새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DDT 살충제의 위험을 알리는 『침묵의 봄』을
4년간에 걸쳐 쓰면서 레이첼 카슨은 내내 고통스러웠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DDT는 살인 무기였다.
이 강력한 무기는 기형아를 만들었고,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걸리게 해,
인간은 물론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했다.
레이첼 카슨은 이 모든 것을 외면하고 가만히 앉아
무작정 바다만 동경하고 있을 수 없었다.
독성이 강한 살충제 대량 살포는
생태계 파괴를 의미했지만,
20세기 중반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보호 개념은 없었다.
DDT를 지속해서 살포한다면 사람들은 병들고,
급기야 새들이 없는 봄을 맞이할 거라는
레이첼 카슨의 증거는
새하얀 마법의 가루에 열광하는 대중에 찬물을 끼얹었다.
몸에 해가 없다고 믿었던 대중은 열광만큼 분노했다.
그러나 이미 생명을 잃었거나 병들었고,
뒤따라오는 자연재해는
오로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이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살충제 회사들은
레이첼 카슨을 ‘실력 없는 여성 과학자’니
‘빨갱이’니 하며 레이첼 카슨을 적극적으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4년에 걸쳐서 『침묵의 봄』을 쓰면서
그 위험성을 되풀이해서 고증하고 감수했기에,
이런 레이첼 카슨이 내미는
DDT의 화학적·의학적 증거를
그들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과의 싸움은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병든 몸으로 레이첼 카슨은
이 작업을 소명으로 삼았고,
결국 DDT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 사건은 자연을 스스럼없이 훼손하던 시절,
환경 혁명의 시발점이었고,
자연보호 개념을 대중에 심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레이첼 카슨의 외침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