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이후 유럽에서 항해술이 발전하고, 다른 대륙을 침략하여 식민지가 생기기 전까지, 각각의 대륙은 거의 동등하게 자기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는 거의 고립되어 있었다. 오히려 유럽에서는 중국이나 인도, 아라비아를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15세기 이후, 세계는 유럽 위주로 재편되었고, 그들이 만든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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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문화나 항해술 같은 장점을 지닌 것도 분명하지만, 바이킹은 전체적으로 보면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도적’ 집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제국주의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것을 주도한 나라는 주로 스칸디나비아의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그리고 가까운 덴마크, 독일, 영국이었다. 바이킹이 오래 전부터 살았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유럽의 본류 역사에서 변두리로 소외당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역사를 내세우려고 생각해보니 바이킹의 역사가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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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자신이 직접 무역으로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선박의 통행 안전을 보장하면서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서해, 동해, 남해를 넘어,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근처를 아우르는 거대한 넓이의 바다를 모두 장악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 시기의 인물로서는 한중일 삼국의 역사서에 비중 있게 기록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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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바스쿠 다 가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살인과 약탈을 저질렀는데, 그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아랍 배 학살 사건’이다. 바스쿠 다 가마가 망망대해에서 아랍의 민간인 선박을 나포한다. 배에 오른 군인들이 그들을 무장해제 시킨 뒤 배에다 불을 지르고 함대로 돌아온다. 바스쿠 다 가마는 사람들이 배 위에서 아우성치며 불에 타 죽는 모습을 멀리서 느긋하게 감상했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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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청나라를 여행할 당시 조선의 백성은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린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서 살았는데, 막상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청나라에
가서 보니 백성들도 벽돌로 만든 2층 집을 지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선에서 벽돌집은 벼슬아치의 저택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박지원이 받았을 문화적인 충격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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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턴의 본격적인 탐험은 1849년부터 시작된다. 그는 대서양 남쪽에서 출발하여 칼라하리 사막, 은가미 호수, 빅토리아 폭포, 킬리만자로를 거치며, 아프리카 내부를 지그재그로 여행한다. 물론 나아가기만한 것이 아니라, 밀림 속 부족들의 거주지에 머물면서 기독교를 전파한다. 마침내 인도양 쪽에 도착하니 장장 15~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는 현지 부족의 말을 배웠고, 그 말을 통해 원주민들과 더 친해지면서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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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노르웨이 자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근 국가인 러시아에서 혁명과 내전이 발생하여 그 와중에 수백 만 명이 굶어죽게 되자, 사재를 털어서 구호소를 설립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다.그는 192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살벌한 경쟁이 펼쳐졌던 ‘탐험의 세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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