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증명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삶이 삶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항상 넘쳐야 했다. 가진 게 없어서 몸을 흔들었다. 몸을 흔들면 몸 밖으로 내가 흥건했다. 그러면 말을 거는 사람도 몇 있었다. 그러나 그뿐. 비워진 마음을 채우는 사건은 없었다. 「산책」 부분
피가 나면 헝겊보다 하얀 시로 내 상처를 아물게 했던 그리운 말들을 되뇌며 떠난 친구를 위해 가만히 시를 외우는 늙은 저녁에, 아픔이 아픔을 덮는다. 사랑이 세상을 덮는다. 초록 풀 무성한 여기는 나의 평원이다. 햇살이 눕고 내 마음도 그 옆에 누워서 여전히 푸르뎅뎅해진다. 다시 만나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산책」 부분
살이 녹고 뼈가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수많은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내가 선택한 문장은 여름이었지만 그것으로부터 작별을 당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은 불면의 날들. 나는 그날의 일들을 조금씩 글자로 옮기고 있다.「비 오는 화동」 부분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자꾸만 우스워진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나는 젖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자꾸 눈물이 났다. 다다르니 처음 보는 길이었다. 어두웠고 무서웠다. 나약한 마음이 드니 등골이 낭떠러지처럼 깊어진다. 아무도 나를 위해 뛰어들진 않을 것 같고, 나도 나를 안아줄 수 없는 하루였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훌훌 털길 바란다. 「소나기」 부분
문학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때. 참을 수 없는 눈물 속엔 빛이 있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끝없이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눈물의 바깥에서 시작된 어떤 꿈이, 너무 정직해서 그 사람을 배신할 때. 내가 보았던 어둠과 텅 빈 불빛. 그것은 세계였을까. 「여행」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