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이른 봉건사회의 단면을 청사진으로 보여주는, 무려 700명이 넘는 등장인물로 구성된 방대한 스케일의 구도 속에 역사적 흥망성쇠를 겪는 거대한 귀족가문을 설정하고, 다시 그곳을 무대로 하여 신화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는 신비로운 사랑의 삼각관계를 깊이 있게 그려내 마침내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성찰을 제시한다.
홍루몽의 이야기는 두 개의 맥락이 녹아들어 진행된다. 하나는 봉건사회의 축소판인 가씨 가문, 즉 녕국부와 영국부의 호화로운 삶과 거기에 기생하는 수많은 군상들, 그리고 그 가문의 쇠락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사회사적 흐름이다. 여기에서는 조상의 음덕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귀족가문의 무능한 후손들이 사치와 방탕을 일삼아 도덕적으로 타락하면서 동시에 가문의 운세까지 기울게 만드는 과정과 그들의 그늘에서 사리사욕을 챙기는 위선적인 무리들의 실체가 다양한 계층의 남녀노소를 망라하여 철저하게 폭로된다.
둘째는 ‘목석전맹木石前盟’이라는 전생의 인연으로 엮어진 가보옥과 임대옥, 그리고 ‘금옥량연金玉良緣’이라는 현세의 운명으로 엮어진 가보옥과 설보차의 비극적인 삼각관계이다. 이 사랑 이야기는 가씨 가문의 거대한 저택 안에 있는 대관원이라는 정원에 운집한 미녀들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삶과 함께 슬픈 동화처럼 펼쳐진다.
냉정하고 잔혹하기까지 한 봉건예교의 현실 속에서 비극적으로 희생당하는 주인공들의 순수한 이상을 통해 덧없는 꿈과 같은 인생의 본질을 120회나 되는 장편의 이야기로, 또 ‘꿈속의 꿈’으로 절묘하게 서술해나간다. 특히 일부 앞뒤의 서술에서 미묘한 모순이 있다는 점은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여전히 ‘미완성’인 이 작품의 줄거리를 자기 나름대로 완성하는 상상력을 발휘하게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