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을 살았던 한 아이, 세상이
이 이야기는 1958년 5월에 있었던 경상북도 영일군의 국회의원 선거를 바탕으로 썼다. 이 선거는 부정선거로 대법원의 판결을 받고, 재선거와 재재선거까지 치르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만 좇아가지 않는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고, 부정선거로 3선 대통령이 된 이승만 정권까지 치열한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는 그 사람들을 담고 있다.
주인공 세상이는 농사짓는 부모님과 평범하게 살고 있다. 세상이 아버지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 생각하며 아들이 그런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도 세상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위험한 꿈이기도 했다. 보리 수확을 앞두고 불이 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로 세상이 아버지와 세상이의 친구인 순이 아버지까지 끌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세상이 아버지를 의심하고, 예고 없이 나타나는 괴한들과 경찰들 때문에 세상이는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그리고 옆집 사는 친구 순이까지 갈밭에 갔다가 낯선 사람들의 총에 맞아 다리에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도시에서 왔다는 낯선 아저씨들은 처음으로 세상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고, 순이 일도 진심으로 사과하며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윽박지르거나 다그치는 법이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고, 세상이와 함께 세상이 아버지 일을 걱정해 준다. 그리고 세상이에게 묻는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억울하게 잡혀간 걸 알게 된다고 차근차근 ‘생각해’ 보라고 한다. 불안하기만 하던 세상이는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세상이의 선택, 그리고 함께 가는 사람들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하나하나 증거를 찾아가는 길에서 세상이는 경찰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지, 아버지는 물론 순이 아버지와 종만이 아저씨까지 왜 억울하게 경찰에게 맞고 잡혀가는지 알게 된다. 두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세상이는 이제 그전의 세상이가 아니었다. 어른들이 시키는 것만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몸을 움직여 한 걸음씩 세상 속으로 발을 디딘다.
그리고 그 길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상이를 응원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교수 아저씨가 있었고, 먼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 부정선거 현장을 기록하는 기자 아저씨도 있었고, 어려운 친구 순이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공장장 아저씨도 있었다. 협박하고 괴롭히는 어른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동등하게 대해 주는 어른들이 세상이가 걸어가는 길에 힘이 되어 준다. 세상이는 그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단단해져 갔다. 그리고 세상이는 위험에 처한 아저씨들을 위해 대신 길을 나서게 된다. 불안해하는 엄마를 오히려 다독이며 세상이는 위험한 모험을 떠나게 된다. 과연 세상이는 그 길에서 또 무엇을 만나고 얻게 될까?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 내는 오늘의 이야기
이야기는 1958년 과거가 무대이지만 과연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로만 흘려보낼 수 있을까? 시간과 사건은 다르지만 지금도 우리는 부당한 일을 겪기도 하고, 억울할 때도 있다. 피해 가기만 할 수도 없고, 분노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위험하거나 부당한 일 앞에서 숨거나 공격적인 반응을 한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살기 위해서라면, 좀 제대로 살아 내려면 지금 내 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몫의 삶이니까, 스스로 해야 한다. 하지만 혼자는 아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아저씨들처럼 내 옆에 사람이 있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누군가 함께 있어 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곁을 내줄 수도 있고, 다른 이가 내게 손을 내밀어 줄 수도 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세상이와 아저씨들처럼. 이 책은 ‘함께하는 힘’이 무엇인지, ‘권리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의 말
저는 어릴 때 어른들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아이였어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착하다고 칭찬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답니다. 숙제도 꼬박꼬박하고, 정해 준 길로만 다니고, 기다리라면 이유를 묻지도 않고 그 자리를 지켰어요.
그런데 철이 들면서 이상한 아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떤 일을 만나면 우물쭈물, 주춤주춤, 머리가 하얗게 되곤 했지요. 내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야말로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까요. 그때 나는 깨달았어요. 착하게 사는 것과 당당하게 사는 게 다르다는 것을요. 내 생각을 키우는 일이 나답게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착하게만 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어렵고 힘들지만 당당하게 바른 생각을 지켰던 사람들, 오래전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슴에 머물러 있던 이야기를 마침내 세상에 내놓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행복할 권리가 있답니다. 하지만 그런 권리도 지키려는 노력 없이는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소중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우리 이웃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의 권리가 어떻게 지켜지는가?’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