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을까?
올해는 하와이 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에서 떠나는 겐카이호에 탄 조선 이민단은 나가사키를 거쳐,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첫 발을 디뎠다. 121명이 승선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86명만 하와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와이 이민사가 시작되었다.
“모든 섬에 다 학교가 있어 영문을 가르치며 학비를 받지 않음, 월급은 미국 금전으로 매월 15원(대한 돈으로는 약 50원), 일하는 시간은 매일 10시간이고 일요일은 휴식함.”
하와이 이주민을 모집할 때 쓰였던 홍보 문구이다. 50원은 그 당시 매우 큰돈이었다. 조선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유혹적인 조건이었다.
처음 이민을 떠난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었을까? 무엇이 그들의 등을 떠밀었을까? 조상의 묘를 지켜야 하고 예를 갖추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시절에 고국을 떠나 하와이까지 가게 만든 역사적인 배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남경희 작가는 하와이를 오가며 이민사를 살펴보다가 이민을 떠났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그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백정의 아들이었던 용이를 중심으로 이민을 떠난 한 가족, 그들과 함께 떠난 우리 조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 《백정의 아들, 포와에 가다》이다.
글을 배우고 싶었던 백정의 아들 용이, 포와에 가다
1900년 초 우리나라는 혼란하고 급변하는 사회였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무너졌고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으로 바꿨다. 일본의 간섭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왕도 그대로고 나라의 체제만 바뀐 듯한 세상에서 백성들은 여러모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어수선한 세상에 나고 자란 백정의 아이, 용이는 장날 책을 읽어 주는 전기수를 보고 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 세상이 달라진 듯해도 백정의 아이는 여전히 글을 배울 수 없다. 용이 엄마 아빠는 당장은 어쩔 수 없다고만 할 뿐이다.
용이 엄마를 쫓아온 누군가 때문에 용이 가족은 야반도주를 하여 제물포에 당도했다. 당시 제물포에는 다양한 일거리가 많았다.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존 목사라는 사람이 포와에 가면 사시사철 따뜻하게 지내며 굶어 죽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이민을 권유하자 용이 가족은 포와에 가기로 결심한다. 백정으로서는 조선 어딜 가도 차별받는 삶을 살아야 하니 차라리 외국 땅에서 일하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면 큰돈을 벌 수도 있다고 들었다. 용이는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어서 포와에 가고 싶었다.
채찍질을 견뎌야 했던 고된 이민 생활
긴 항해였다. 용이 가족과 여러 조선 사람들이 포와 즉 하와이 땅에 드디어 발을 디뎠다. 하와이에는 신기한 게 많았다. 하늘로 치솟은 나무에 둥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기도 하고, 쇠 당나귀라 하는 전차도 있고, 끝도 보이지 않는 사탕수수밭의 규모를 보고 입을 떡 벌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농장에서의 일은 꿈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채찍을 휘두르는 루나(십장)에게 맞지 않으려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야 했다. 용이와 장쇠 같은 아이들도 일을 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매일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친구 장쇠의 보호자인 양반 나리는 사탕수수 농장의 힘든 노동을 견뎌 내지 못했다. 굼뜨게 일한다고 루나에게 상투가 잘리는 치욕을 경험하기도 했다. 상투가 잘린다는 건 양반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뜻이다. 조선의 계급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괴로워하던 양반 나리는 미국 본토로 떠났다. 그 바람에 용이는 하와이 이민 길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 장쇠와 이별을 한다.
먼저 이민 온 일본인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루나의 폭압에 괴로워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용이는 아이답게 일본인 친구와 딱지치기를 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에 재미를 붙여 나갔다. 시간은 갔고 조선에서 새로운 이민단이 왔다. 조선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로 했다. 그제야 알고 보니 용이 엄마는 몰락한 양반가의 여식이었다. 노비로 팔려갔다가 도망 온 처지라 용이에게 글을 가르쳐 줄 수도 없었던 용이 엄마는 하와이에 와서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선생이 되었다.
캠프에 교회가 세워지고 국어 학교가 문을 열었다. 조국에서는 나라 잃은 슬픈 소식이 들려왔지만 하와이에 이민 온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돈을 모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 자금을 모아 조국에 전달하기도 했고 '3.1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낭독하며 만세 운동을 하기도 했다. 서당 담장에 까치발을 딛고 귀동냥을 하던 용이는 하와이에 와서 간절히 바라던 글을 배웠고 독립 운동에 보탬이 될 만큼 하와이에 뿌리를 제대로 내렸다.
하와이 이민사 뒤에 묻힌 개개인의 생생한 역사
1903년 이후 2년에 걸쳐 약 7천여 명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떠났지만 녹록지 않은 타향살이였다.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도 먼 타국에서 힘없는 조국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조국에서는 양반 백정 따졌지만 타국에서는 그런 계급 차는 소용이 없다. 그저 제시간에 일을 잘하는 사람만 필요할 뿐이다. 양반이면서도 타국까지 가야 했던 이의 사정, 백정이라 차별받는 조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이민 여정 중 아비를 잃은 아이 등 하와이 이민사라는 큰 카테고리로 뭉뚱그릴 수 없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이 이 책에는 잘 드러나 있다.
요즘 우리 땅의 역사에 무관심한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떠난 해외 이주 동포들의 역사는 더더욱 잊힌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동화의 역할과 의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신인 작가이지만 힘 있는 필력으로 하와이 이민사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