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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괜찮다.
지금 내 모습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몸매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먹는 것,
남들이 자는 시간에 나도 잠드는 것이 간절한 꿈이었기에.
몇 년 전만 해도 폭식과 구토로 하루를 다 보냈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라면을 두 개씩이나 끓이는 모습이 좋다.
체중이 증가한 것 같으면
은근슬쩍 체중계를 외면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마른 몸매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 나를 나답게 했다.
결국 나의 목표는 ‘나다워지는 것’이었다.
”
변화의 시작 – 의지를 넘어선다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극히 작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관심사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기왕 하루를 살 거라면,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면서 쓸데없이 나를 비난하는 하루를 살기보다 좀 더 나은 기분으로 하루를 지내고 싶었다.
변화의 시작 – 용기와 그냥 한다
용기를 내는 게 어려운 이유는 ‘용기’ 그다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아무리 첫 용기를 내더라도 다시 ‘반복’될 것을 알기 때문에 용기 내기를 망설이게 된다. 나도 여러 차례 용기를 내보았지만, 다시 반복되는 ‘먹토’와 ‘씹뱉’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진정한 용기는 ‘반복’의 두려움까지 견디겠다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꺾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꺾여도 그냥 가겠다고 마음먹고는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어 갔다.
작은 변화
작은 일의 성공은 조금 더 큰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불러왔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세상에는 걱정하는 만큼 무서운 일보다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경을 쓰고 용기를 낸 만큼 나는 자유로워졌다.
변화의 시작 –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문제들은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그것들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힘은 하루 이틀 만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지는 날도 있고, 이기는 날도 있겠지만 도망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성과는 있다. 도망치지 않고 꾸준히 맞서기만 해도 마음의 힘은 향상한다. 이기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전리품은 자기효능감이라는 이름의 작은 성취감과 깨달음들이다. 그 작은 것들이 모여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내면 조금 더 큰 성취감과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것들은 점점 더 큰 문제도 해결해 준다.
변화의 시작 – 아무 길이나 가본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다. 가치 있고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무 길이나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아무 길이나 가보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 나와 맞는 일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이었다.
변화의 시작 – 내 기분이 먼저다
이뤄야 할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산더미처럼 많을 것이다. 쫓기듯 허덕대는 날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 내 기분이 먼저다. 내 마음을 돌보는 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전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무엇보다, 다 이룰 필요 없다. 아무도 그렇게는 못 산다.
변화의 시작 - 식단일기
식단일기를 쓴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그 말뜻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남자친구나 가족과 말다툼을 하면 2~3일을 넘기지 못하고 폭식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폭식과 구토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과의 다툼이 폭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내 폭식에도 이유가 생겼다. 폭식하는 순간에도 ‘내가 지금 화가 나서 먹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다툼이 끝나고 나면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폭식할 수도 있겠다’라고 예상했다. 여전히 폭식과 구토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느닷없이 찾아온 고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과 ‘고통이 찾아오겠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일기가 쌓여갈수록 나는 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갔다. 화가 날 때, 외로울 때,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나는 많은 순간 취약했지만 내가 취약해지는 시점을 알고 나서는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왔구나. 잠시 통제력을 잃긴 하겠지만 이 시간도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변화의 시작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구분하기
나는 지금껏 섭리를 거스르기 위해 버둥대왔음을 깨달았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이라 착각하고, 왜 불가능한 일을 해내지 못하느냐고 애먼 자신만 들들 볶아댄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였다. 그냥 하루를 살아내기.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기.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구분하기. 조금 더 나아간다면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다이어트를 내팽개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목표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는 있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에게 미련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실패자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또한 나에게 실패자라고 필요가 없었다. 못 할 만한 일이라서 못한 것뿐이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 책임에서도 함께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변화의 시작 –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한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나는 너무 오랜 시간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몰랐다. 나는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로 조금씩 관심을 옮겨갔고, 곧 바람직한 일을 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뭔가 시도하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먼저 던졌고, 웬만하면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1. 실현 가능한 일인가.
2.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하는 일인가.
3.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섭식장애는 입체적인 심리적 외상이다
섭식장애는 폭식과 구토, 과격한 운동 등의 증상을 동반한 심리적 장애인데, 이는 결과적인 증상에 해당한다. 섭식장애 치유를 위해서는 증상 그 자체보다 그 기저에 깔린 심리적 요인, 주변 환경 요인 등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는 섭식장애 극복 하나에만 매달리지 않고, 작가의 그 당시 삶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망하여 심리적 상처들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