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두, 일론 머스크…,
전 세계의 IT업계 큰손들이 전전긍긍하는 ‘뜨거운 감자’
2023년 2월 8일, IT업계의 큰손 구글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시연하는 행사가 열렸다. 전 세계가 주목한 시연회로부터 이틀 만에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Alphabet Inc.)의 주가가 10% 이상 폭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무려 150조 원 가량의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신제품을 시연하는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날 구글이 시연한 것은 챗GPT의 대항마로 내놓은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어프렌티스 바드(Apprentice Bard)다. 챗GPT가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의 주목이 이 자리에 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시연자가 물은 질문에 바드가 잘못된 대답을 내놓은 순간, 들떠 있던 분위기는 일변했다. 전년도에 서비스를 개시한 챗GPT가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 것과 맞물려 한참 고조되었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시연회 이후, 주가의 하락과 시가총액의 증발이라는 즉각적인 시장의 반응을 겪은 구글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여기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인터넷 검색엔진 빙(Bing)에 챗GPT 기술을 탑재하면서 IT업계의 지형도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이제까지 인터넷 검색엔진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던 것은 구글이었지만, 이제는 도저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단순한 ‘검색’의 시대는 저물고, 새롭게 이름 붙여질 시대를 선도하는 자가 새 판을 짤 기회를 얻었다.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로 명성이 자자한 KAIST 교수이자 뇌과학자인 김대식이 이 유동하는 판에서 ‘뜨거운 감자’, 챗GPT와 정면으로 부딪혀 생성인공지능의 허와 실을 꿰뚫는 기나긴 대화를 펼친다.
‘검색’에서 ‘대화’로,
챗GPT는 우리가 원하는 정답을 내놓는 ‘도깨비방망이’가 될 수 있을까?
챗GPT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트위터, 페이스북, 레딧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온 인터넷 커뮤니티는 ‘챗GPT 놀이’에 빠져 있다. 단순히 자료를 정리?요약시키는 수준에서 자기소개서를 쓰게 하는 등 놀이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허구의 증명 찾기’ 놀이다. SNS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이것은, 챗GPT에게 질문을 던지고 챗GPT가 내놓은 대답에서 틀린 부분이나 모순을 찾아내는 것이다. 특히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문재인”이라는 대답을 내놓은 사례는 주요 일간지에 기사로 소개되기까지 했다. 그 외에도 “원균은 이순신을 능가하는 명장”이라고 답하거나 “훈민정음은 중국의 고전 어휘”라는 오답을 내놓는 사례 등을 공유하면서 챗GPT를 비롯한 AI가 제대로 쓰이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비웃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챗GPT의 ‘한계’는 사실, 생성인공지능이나 GPT 모델의 특성에 대한 오해 혹은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사실 구글의 어프렌티스 바드가 오답을 내놓았다고 해서 실망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생성인공지능이 ‘정답’을 내어놓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빅데이터로 학습한 결과니까 으레 ‘정답’을 내어놓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거나 당연히 정답을 내놓았을 것이라고 맹신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2023년 2월에는 대한민국 모 의원실에서 챗GPT에게 〈양곡관리법〉의 부작용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도 양곡법의 명백한 부작용을 이미 예고했다”라며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모 의원실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챗GPT에게,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그러한 ‘전지(全知)’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대화형’ 인공지능인 데는 이유가 있다. 챗GPT는 ‘강의형’ 인공지능도, ‘해결사’ 인공지능도 아니다. 이들은 답을 주지 않는다. 판단을 내리지도 않는다. 학습한 정보의 범위 내에서 주어진 문장의 맥락을 보고 다음에 나올 단어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단어의 최적해(最適解)를 찾아 나간다. 그저 그뿐이다. ‘양곡관리법’의 부작용을 물어보면 ‘가능성’이 높은 부작용을 쭉 설명해주고, 이점을 물어보면 마찬가지로 ‘가능성’이 높은 이점을 설명해준다.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때의 가능성은 ‘실현 가능성’이 아니다. ‘부작용’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다른 텍스트, 학습 소스 등에서 ‘제시될 가능성’이다.
그래서 챗GPT에게 질문할 때, 질문자는 한편으로 ‘어떤 질문을 해야 잘 질문하는 것인가’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사람이 보기에는 같은 의미의 질문이라도 약간의 어휘 차이에 따라 인공지능이 받아들이는 값은 전혀 달라지기도 하고, 같은 질문을 던져도 조금씩 다른 답변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가 챗GPT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이유다. 뇌과학자 김대식은 책에서 챗GPT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사랑, 정의, 죽음, 신, 기후위기…. 얼핏 봤을 때 “왜 이런 걸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지” 싶은 질문이지만, 그의 이런 질문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질문과 답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챗GPT의 말하는 방식과 특성, 한계와 가능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김대식은 이 책을 통하여 “챗GPT는 ○○○○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런 빈칸 맞추기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는 이 대화 프로젝트를 통해 챗GPT를 위시한 생성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챗GPT, 너 정말 너무하구나!”
어떻게 활용해야 잘 한다고 소문이 날까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육체가 꼭 필요할까?”
“사랑과 이와 관련된 신체 감각을 느끼는 능력은
신체를 가지고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물리적 육체가 없는 객체의 경우에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감각으로 사랑을 경험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저자가 챗GPT와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물론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육체적 사랑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도 면전에서 “그건 불가능하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이 바로 챗GPT다. 챗GPT는 인공‘지능’이지만 마음도 없고, 감정도 없다. 그저 주어진 데이터세트와 알고리즘에 따라서 입력값에 맞는 대답을 출력하는 언어 모델일 뿐이다. “앞으로 30년도 못 살 나를 위로해달라”, “영원히 나를 기억해줄래?”라고 묻는 질문에 챗GPT는 무미건조하게 답변한다. “저는 죽음의 개념은 이해하겠지만 공감이나 연민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능력은 없습니다”, “제가 학습 데이터에는 기한이 있으며, 사적인 방식으로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아뿔싸! 말이야 바른 말이다. 챗GPT라는 언어 모델에게 ‘인간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잠시간의 섭섭함을 이기고 나면, 챗GPT의 활용 가능성에 눈이 돌아간다. 챗GPT는 3,000억 개가 넘는 문장 토큰과 그 사이의 확률적 상호관계를 학습한 언어 모델이다. 질문에 포함된 단어들과 ‘확률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을 즉각적으로 생성해낸다. 챗GPT가 학습한 것은 어느 개인의 사감이나 판단이 들어 있지 않은, 인류가 지금껏 인터넷에 모아온 온갖 문장과 생각의 모음이다. 우리는 약간의 노력만으로 그 어마어마한 보물창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것도 이 보물창고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으면서, 원하는 것을 꺼내다 주는 기계 비서를 대동한 채 말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인류가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저장하고 공유해 온 모든 기억의 흔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가시적인 심상과 이미지를 완전히 밝혀내기도 이전에 가시화된 ‘집단 의식’을 데이터로써 마주하게 됐다. 어쩌면 이 집단 의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앞으로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척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챗GPT의 등장을 두고 “미래 생성인공지능 시대의 모습을 먼저 살짝 보여주는 티저”라는 평을 내린다. 지금은 많이 부족하고, 그 부족함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기술이 순조롭게 발전하고 인간 지성과 기계가 결합되었을 때 얼마나 폭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예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김대식이 시도한 인간과 기계의 시도는 이 편린을 들여다보는 가장 직관적이고 명쾌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