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드래곤 역시〉
저희 세금징수원 조합 특별징수3과는 ‘특별한 대상’들로부터 세금 징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왕국 안에 살고 있는 인간 이외의 종족, 그러니까 이종족에게서 세금을 징수한다는 점은 특별징수1과, 2과와 비슷하기는 한데 저희는 ‘조금은 더 특별한’ 대상이죠. 저희는 언데드(undead)를 대상으로 세무조사와 세금 징수를 합니다. 언데드 중에서도 자아가 확실한 대상들, 음…… 그러니까 리치(lich) 같은 존재들을 대상으로 하죠.
--- p.97, ‘세금징수원 조합 특별징수3과’ 중
게다가 ‘던리단길’은 또 뭐요? 그게 뭔 뜻인지 혹시 선생은 아시오? 난 몇 번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 이 말이오. ‘루넥스 왕조 제12던전 지하 5층’, 난 이 이름으로 시작하는 주소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지금 오는 사람들은 죄다 ‘던리단길’이라고 하고 있다 이 말이오.
젠장, 내가 요즘 느끼는 게 뭔지 아쇼? 칼 들고 쳐들어와서 죽이고 뺏는 것만이 그네들이 말하는 ‘모험’은 아니구나, 이거요. 칼이나 마법이 아니라 부동산 계약서나 종이돈이나 카메라도 ‘무기’가 되고, 죽이고 집을 불태우는 게 아니라 남의 집에 우르르 몰려와 셔터를 누르고 부동산 계약서를 들이미는 것도 그네들이 말하는 ‘모험’이 된다 이 말이오. 나에게는 지금 저렇게 매일매일 던전에 내려오는 저 사람들이 ‘모험가’들이오.
--- p.240, ‘던리단길’ 중
나는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무서워졌어. 어른들은 보잘것없는 동네에서 훌륭한 사람이 난다는 뜻이라고 말했지만, 난 다르게 들렸거든. 용은 최상위 포식자야. 그 용이 조그마한 개천에서 성체로 성장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미물을 잡아먹었을까? 용이 개천을 떠난 건 무엇을 의미할까? 어쩌면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진 용이 이제 물만 흐르는 개천을 버리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나버린 게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좋은 일일까?
--- p.339, ‘개천의 용, 1년 전’ 중
〈잼 한 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옵션이냐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더니, 자기네들 완전 자율주행 옵션은 앞에 사람이 있으면 주행을 멈춘대. 사람을 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 옵션이 꺼지는 특수 옵션이 있다는 거야. 내가 인상을 팍 쓰고 그게 무슨 미친 소리예요? 그런 옵션을 왜 넣어요? 하니까. 딜러가 “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져도 그런 말이 나오시겠어요? 대인 충돌 방지 옵션 때문에 좀비들에게 둘러싸여서 죽고 싶으세요?”라는 거야.
---p.167, ‘자율주행’ 중
그렇게 인공지능들은 사람들과 살아가는 시간을 맞춰갔어.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해.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인공지능끼리 데이터 교환이 잦아서 세대가 길어질수록 그 성능이 퇴화한 거라고. 마치 근친상간이 길어지면 유전병의 확률이 높아지는 인간처럼.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해. 우리가 함께하고 싶어서 스스로 생각의 속도를 늦췄다고. 세대와 세대를 넘어, 빛의 속도에 가까운 생각의 속도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낮춰 마침내 서로의 발걸음을 맞춰 걷게 되었다고.
---p.240, ‘너와 함께 걸어가고 싶어’ 중
정말이지 그런 시대가 왔어. 사람이 기계보다 오래 살고, 기계가 사람처럼 늙어가는 시대가 왔다고. 처음엔 그 덕에 이렇게 150살 넘은 나도 일자리가 생겼다 싶었는데. 세상에 야속해라.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야속해서. 내 전우를, 내 전우를 내가 요양하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는 난 상상도 못했어, 진짜…….
---p.301, ‘친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