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이렇게 운동한 티가 팍팍 나는 사람인지 몰랐다. 시쳇말로 ‘근수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기 시작하자 덩달아 체력도 좋아졌고 감기 바이러스초자 내 몸은 피한다는 착각도 들었다. 운동이 내 몸에 남긴 흔적 덕분에 표정에도 생기가 돌았다. 자신감이 생겼다. 어느덧 운동은 내 일상에 들어와 ‘꾸준하게’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4쪽)
사람들은 종종 처음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하던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처음 이후에 올 여러 가지 경험의 기준점이라서 그런가 싶다. 크로스핏의 첫 경험이 나쁘지 않았다. 생경한 고통은 아프긴 해도 견딜 만했다. 여러 도구와 여러 방법으로 내 몸을 움직여 주는 이 운동을, 난 계속해서 하고 싶어졌다. (33~34쪽)
돌이켜 보면 운동을 할 때 타인과 나의 몸을 비교하는 것보다 어제와 오늘의 내 몸을 비교하는 것이 더욱 영양가 높았다. 타인보다 성장하는 것은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오지만, 어제의 나보다 발전하는 것은 그것이 더디더라도 이루어진다는 희망이 있었다. (66쪽)
나는 굳은살이 그동안 열심히 운동하고 연습한 시간의 흔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 같다. 따지고 보면 굳은살 때문에 노동자 같다는 말도 그만큼 성실하게 일한 시간의 가치를 표현하는 말 아닌가. 누군가는 “여자 손이 그래서 어떡해요?”라고 되묻기도 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시간을 들여 운동한 흔적이 뿌듯하고 그것을 몸에 새겼다는 감각이 더 기쁘다. (72~73쪽)
크로스핏을 하며 손바닥에 굳은살을 새겼다. 이 흔적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걸 몸소 체험한 나는 안다. 아파도 꾸준히 철봉을 잡고 바벨을 들어 올린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걸. 연습의 과정이 없었다면 이토록 단단해지는 일도 없었겠다 싶다. 약한 시간을 잘 버텨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단단함이 나를 잡아줄 거라는 믿음. 운동으로 단단해진 내 손바닥을 보니 이제 알 것 같다. (74쪽)
운동을 시작한 후 근육도 커지고 체력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운동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하는 운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얘기할 때면 저절로 눈이 반짝거린다. 마침 나처럼 운동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꼭 같은 운동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운동에 재미를 붙인 사람과는 대화가 잘 통한다. 특히 여기에는 근육 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83쪽)
몸이란 느린 속도지만 분명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나간다. 단련한 만큼 몸에 근육을 새기고 능력을 향상해 나간다. 그것이 기쁘고 즐거워서 계속 운동한다. 단단한 몸을 만져보며 스스로 자랑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또 운동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 물어봐야지. “요새도 운동하고 있어요?” (88쪽)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온탕에 몸을 담그고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가쁜 호흡을 몰아쉰 후에 찾아오는 이 개운함은 느껴본 사람만 알 테다. 개운함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화해 준다. 좋지 않은 기분이나 마음도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려 보낸다. 운동은 하기 전의 귀찮고 하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고 막상 해버리면, 결국에는 좋은 기분을 안겨준다. (94~95쪽)
내 몸을 잘 돌보려면 운동하는 것만큼 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한다. 아예 운동에 대한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과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건 좀 다르다고. 게다가 난 직업적인 운동선수가 아니므로 철저하게 스케줄에 맞춰 운동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그저 아프지 않게 즐겁게 취미처럼 즐기면 되는 거라고. (105쪽)
운동은 몸을 움직이고, 글쓰기는 마음을 움직여 쓴다. 몸을 움직이면 체력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고, 글을 쓰면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을 수 있었다. 때때로 글을 쓰는 일이 복잡함과 답답함을 안겨줄 때면 운동으로 도피했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은 생각을 멈출 수 있었기에 평소 잡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속이 맑게 비워졌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쩌면 운동과 글쓰기는 치열해서 여유라곤 눈곱만큼도 못 느끼던 나를 살리러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42쪽)
달리기를 오랫동안 한 사람은 그 특유의 체형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크로스핏도 마찬가지다. 크로스핏을 오래 한 사람이나 전문 선수들을 보면 확실하게 보인다. 승모근이 솟아오른 어깨는 직각 대신 다각형을 연상시킨다. 허리 부근의 몸통은 곡선보다는 직선 여러 개가 이어져 더욱 단단해 보인다. 더군다나 허벅지 앞쪽은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듯 옹골지다. 나는 선수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특유의 근육을 하나둘 장착해 나가는 중이다. (161~162쪽)
어떤 것이 너무 좋으면 그 단어 앞에 ‘인생’을 붙이고, 없으면 안 되는 물건 앞에는 ‘애착’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또 살면서 서로 보듬어 주고 돌봐주는 것 앞에는 ‘반려’라는 말을 붙인다. 인생, 애착, 반려는 모두 한곳을 향하는 단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 내게 힘을 주는 것에 붙는 단어다. 크로스핏은 내게 인생 운동이고 애착 운동이며 반려 운동이다. (170~171쪽)
공익광고협의회는 눈꺼풀이 가장 무겁다고 했고, 크로스핏 코치는 각자의 몸뚱어리가 가장 무겁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서 내 몸의 무거움을, 오롯이 견뎌낸다. (1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