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 운동은 지금 어디에 있나
개념, 연구, 실천, 비판 등 현재진행형 탈성장 논의의 모든 것
기후 재앙, 대량 멸종, 팬데믹의 위협, 성장과 관련한 다양한 위기로 만성적인 비상사태가 전개되면서 탈성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인류의 삶보다 경제 성장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현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보다 탈성장이 더 현실적인 제안이라고 여긴다. 이 책은 경제 성장에 대한 의문이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고,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다면서 탈성장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성장에 대한 비판이자 변혁을 위한 제안으로 체계화한다. 이를 위해 먼저 탈성장의 개념을 정의하고 탈성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발표한 1972년, 프랑스에서 ‘탈성장’(데크루아상스)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부상으로 밀려났던 성장 비판은 2000년대 초반 다시 힘을 얻는다. 오늘날 ‘탈성장’은 성장 헤게모니를 비판하기 위해 학자와 활동가들이 점점 더 자주 동원하는 용어다.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었듯이, 이는 산업화된 국가의 추가적 경제 성장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성장이 지구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어느 시점 이후에는 삶의 질 향상에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정의한 탈성장은 “전 지구적 생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의 처리량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모두에게 좋은 삶과 사회 정의를 보장하는 사회로의 민주적 전환”이다.
탈성장 지지자들은 자연 파괴 없는 경제 성장은 환상이며, 산업국들이 생산과 소비를 공평하게 줄여야 한다고 본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성장, 자본주의, 산업주의에 비판적이라는 기본적인 합의가 있고 탈성장에 관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사회과학과 인문학 중심의 분석을 포함해 전면 탐구한 문헌은 그리 많지 않다. 탈성장 운동이 진보적이고 대체로 반자본주의적이라 해도 자본주의에 대한 명백한 비판적 관점에서 탈성장을 탐구하며 좌파의 더 광범위한 논쟁에 개입한 책은 더더욱 드물다. 이 책은 가부장제, 식민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지배 체제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핵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직시한 독보적 저작이며, 수백 건의 탈성장 문헌을 인용해 탈성장이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미래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탈성장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는 탈성장이 경기 침체나 긴축을 강요하거나 필연적으로 경제 붕괴와 사회적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경기 침체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고 탈성장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다. 경기 침체는 불평등을 악화시키지만, 탈성장은 불평등을 줄이고자 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아마존을 집어삼킨 화재, 과거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원주민 학살과 같은 위기는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이미 재앙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충족, 돌봄, 정의에 기반한 다차원적 변혁의 조합인 탈성장이냐, 아니면 야만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즉 우리 앞에 다가와 있고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인 현실이 된 재앙을 피하기 위해 탈성장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탈성장이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위기다.”(p.35)
이외에도 저자들은 “현대성과 진보에 반한다”, “덜 가져야 한다며 좋은 것을 빼앗고 허리띠를 졸라매게 할 것이다”, “모든 유형의 생산과 소비를 전반적으로 감축하는 것이다”, “지속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려면 성장이 필요하다”, “가난한 국가에서 탈성장은 불합리하다”, “탈성장은 사회적으로 쇠퇴한 후기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경향이다”라는 등의 탈성장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세밀하게 반박한다. 경제학자들이 침체를 문제로 여기는 이유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에 의존하기 때문이며, 오히려 끊임없는 경제 성장을 고수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를 저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성장 이데올로기가 무너뜨린 오늘의 세계를 직시하기
자본주의의 기둥이자 기후 위기의 근원인 ‘성장’ 개념을 해체하다
탈성장을 알기 위해 다음으로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으로서의 성장을 분석한다. 이 책은 성장을 단순한 GDP의 증가가 아닌 사상이자 관념이고 사회 과정이며 물질 과정으로 서술했다. 점점 더 빠르게 우리를 낭떠러지로 몰아가며 수많은 자원을 폐기물과 배출물로 남기는, 자연에 대해 팽창하는 사회적 신진대사이자 가속, 확대, 강화의 힘을 서로 키우고 동적으로 안정화하는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성장을 다뤘다. 아울러 성장 이데올로기가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어 헤게모니를 쥐게 된 과정을 탐구하며, 성장이라는 가치가 어떻게 임노동을 비롯한 생산관계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 권력과 위계를 정당화하고 강요하게 되었는지 논의한다. 경제가 안정되려면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지배적 관념이 사회 갈등을 무마할 모종의 약속이 된 것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려면 사상과 관념으로서의 성장 해체는 물론 광범위한 사회 동학의 측면에서 성장의 역할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탈성장 관점을 구성하는 여러 프레임워크를 한데 모아 성장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7가지 주요 형태로 정리해 제시한다. 이는 생태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반자본주의적, 페미니스트적, 반산업주의적, 남반구-북반구 비판이다. 각 입장에서 본 경제 성장으로 인한 해악들, 즉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 삶을 임의로 측정하고 평등을 저해하는 점, 일과 삶과 자연과 맺는 관계를 깨뜨리는 점, 착취와 축적을 가속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점, 재생산 노동을 폄하하고 여성, 특히 유색인종 여성과 토착민 여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점, 권위적인 생산력과 기술 발달로 다수를 소외시키는 점, 중심부와 변방 사이의 지배, 추출, 착취 관계에 의존하고 이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여러 문헌을 인용해 설명했다. 탈성장 논의 바깥에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는 성장 비판-보수주의자들, 녹색 파시즘, 반현대주의, 부자들의 환경주의도 덧붙여 소개했다.
탈성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식인 자본주의의 엔진을 멈출 구체적인 대안 경로
책의 후반부에서는 본격적으로 탈성장의 비전과 실현 방안을 탐구한다. 탈성장 스펙트럼 내에 존재하는 그룹을 제도 지향적 조류, 충족성 지향 조류, 커머닝 및 대안 경제의 조류, 페미니스트 조류, 포스트 자본주의와 대안 세계화의 조류로 분류한 후 탈성장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이는 1) 지구적 생태 정의를 가능하게 하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물질적 신진대사를 변화시켜 생산과 소비를 감소시킬 것 2) 사회 정의와 자기 결정을 강화하고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위해 노력할 것 3) 제도와 인프라를 재설계하여 그것들의 작동이 성장과 끊임없는 확장에 의존하지 않게 할 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1) 경제 민주화, 커먼즈 강화, 연대 기반 경제 및 경제 민주주의 2) 사회보장, 재분배, 소득과 부의 상한선 설정, 3) 공생공락적이고 민주적인 기술 4) 노동의 재분배와 재평가 5) 생산의 공평한 해체와 재구성 6) 국제 연대의 6대 변혁으로 나누어 정책들을 제안한다. 요약하면 탈성장 경제민주주의는 현재 소수에 집중돼 있는 경제력을 해체하고, 거시적 미시적 차원에서 국민이 경제적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적 대안을 평가한 에릭 올린 라이트의 기준에 따라 탈성장이 ‘바람직한가’, ‘현실성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면, 다음으로 ‘달성 가능한가’를 검토한다. 성장과 대결한다는 것은 현대의 주류 경제와 관련해 대부분을 재발명, 재창조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들 역시 이를 ‘어마어마한 도전’이자 ‘관계적 혁명’, ‘역사적인 세계 체제 전환’으로 보고 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숙고한다.
첫 번째 전략은 ‘나우토피아’로 명명한 틈새 전략이다. 카탈루냐 통합 협동조합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제도, 인프라, 조직 형태의 실험을 소개하고 좋은 삶을 위한 자율적 공간에서 ‘탈성장 주체성’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두 번째 전략은 공생 전략인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킬 구체적인 개혁과 개선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사회 세력의 협력 형태를 만들고자 하며, 이는 전통적인 정치 시스템 안에서 이뤄진다. 기존의 구조와 규제에서 시작하지만, 목표는 자본주의적이고 성장 지향적인 생산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회 변혁을 체제 내부에서 시작해 체제와 함께 이행하려는 것은 구조적 한계에 끊임없이 직면하며 급진적 변화에 따른 파국의 공포를 키우는 대신 토론과 참여를 통해 제도를 바꾸고 이로써 사회의 동학을 크게 바꿔낼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체제를 만들어 가려면 세 번째 전략이자 단절 전략인 ‘대항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이는 성장 패러다임에 대항하는 민중의 힘을 구축하는 것이며, 급진적 변혁을 추동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수준에서 국가를 근본적으로 민주화하고 전유하는 조직화된 저항이다. 이 운동은 이민자, 노동자, 기후 및 인종적 정의뿐 아니라 반제국주의, 페미니즘, 반자본주의 운동과 긴밀한 동맹 맺기, 파업과 봉쇄 등 자본과 국가의 요구를 차단하거나 요구할 역량 구축하기, 연대와 협력, 운동 내 민주적 구조 수립으로 스스로 권력의 원천 만들기 등을 구성 요소로 삼는다. 탈성장 사회를 향한 변혁에는 이 세 전략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세 전략의 공통된 특징은 탈성장 지지자들이 ‘혁명 이후’의 먼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변화를 꾀한다는 점이다.
“탈성장은 다양한 원칙과 아이디어가 담긴 하나의 초대장이며, 아직 우여곡절을 겪어보지 않은 길이다. 이 여정을 시작하려면, 생명을 위하고 자본주의적 성장에 반대하는 광범위하지만 통일된 ‘운동들의 운동’이 필요하며, 그래야 자신 있게 변혁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우리는 탈성장에 대한 비판과 제안의 핵심 관심사가 점점 더 많은 투쟁과 변혁적 실천으로 통합되기를 희망한다. 이 길을 따라가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의 궤적은 다르지 않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p.326-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