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는 우리 인생의 모든 시절을 담은 책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담아내는 자서전과는 달리, 총 열두 명의 작가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인생의 모든 시절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치열한 청춘의 한가운데서, 누군가는 중년에 이르러 가는 시점에서, 누군가는 이제 노년에 다가가는 마음으로, 인생의 모든 시절을 이야기했다. 열두 명의 작가들이 펼쳐놓은 ‘모든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누구든 자신의 ‘모든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젖어 들어가게 될 것이다. - 4쪽 〈프롤로그〉 중에서
직장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도,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을 때에도 내가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이렇게 반짝거리는 나만의 고유한 경험 조각들 덕분일 테다. 동네 할머니들로부터 받았던 소소한 칭찬, 오빠의 맹목적인 배려, 어린 시절의 봄꽃, 땅굴, 잠자리와 함께한 기억들이 현재의 나에게 여전히 단단한 힘을 준다. 서른 살이 훌쩍 넘은 내가 지금까지 꺾이지 않고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건 그 시절의 기억들 덕분이다. 어린 시절 자연과 이웃, 가족과 함께한 경험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나만의 든든한 응원군이자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 42~43쪽 〈저장된 기억의 조각들〉 중에서
자랑스러운 일을 하지 못한 날이면 혼이 날까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애매하게 착한 나’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나를 찾아올 때마다 어색하지만 반갑기도 하다. 착하지 않은 나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엄마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던 시절이 꽤 길었던 것 같은데,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어린 시절의 내가 지고 있던 마음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듯하다. - 91쪽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 중에서
아이에게 가까운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치유의 과정이 될 때가 있다. 나와 별개의 타인이지만, 내게 있는 욕구가 상대에게도 있다고 가정하고 또 나와 상대를 동일시할 수 있는 상상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간절히 바랐으나 만나지 못했던 어른의 모습을 하고 아이 앞에 선다. 때로는 싱거운 농담을 하고 같이 배꼽을 잡는 이모로, 언제는 다친 상처를 물어봐주는 이웃 아줌마로, 또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강인한 엄마의 얼굴을 하고 아이를 마주한다.
아이에게 단단하고 다정한 우산이 되어줄 때, 어느새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우산 아래 서 있다. 세찬 비에 얼룩졌던 그 시절이 고운 빛으로 채워진다. 나를 그들의 어른이 되게 해준, 아이들이 주는 구원이자 선물이다. - 97~98쪽 〈내가 간절히 듣고 싶었던 질문〉 중에서
그렇게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시공간 속에서 이따금 서로에게 소년을 돌려줄 수 있다면, 그 삶은 꽤나 괜찮은 하나의 방식이 되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매일 소년 시절이 그립다. 그리고 가끔 소년이 된다. 또 가끔은 어느 소년소녀들의 아버지가 된다. 그 순환이 내게는 일종의 삶에 대한 긍정처럼 느껴진다. - 112쪽 〈나는 소년이었던 때가 매일 그립다〉 중에서
그럼에도 모든 터널에 끝이 있는 것처럼 그 시간에도 결국 끝은 있었다. 우연히 닿은 곳이 목적지가 아니어도, 우회해서 도착하더라도, 빛나고 소중한 무엇이 있었다. 어두운 것이 있다고 하여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경험했던 청춘은 추종이었고, 꿈을 있는 힘껏 부풀리는 것이었고, 거기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누군가는 그것을 이루지만, 또 누군가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는 시절이었다. 청춘이라 말하고 인생의 봄이라 믿지만, 또 그렇게 봄 같지 않았던 시절을 그렇게 걸었다. - 151쪽 〈그 시절의 배경음악〉 중에서
어른은 약하고 어린 누군가를 보듬어줄 수 있는 존재다. 마흔여섯의 나라면 어린 시절 그렇게도 원하던 어른의 돌봄을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의 내가 매 순간 이겨내고 싶어 했고, 도려내고 싶어 하던 흉터들을 잠잠히 응시하고 매만지는 것이다. 남이 보는 시선을 따라 내가 동요할 때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내 눈으로 보았을 때 보이는 세상을 내가 가진 언어로 하나씩 하나씩 새로 감각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 그러니까 어른의 시간은 남이 말했을 때 좋은 시간, 남이 말했을 때 좋은 조건이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좋은 시간, 내가 느끼기에 좋은 조건을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림자까지도 끌어안는 시간이라고 해야 적절하겠다. - 180~181쪽 〈어른의 시간〉 중에서
어느새 중년의 부모가 된 나는 다른 삶도, 더 나은 삶도 꿈꾸지 않는다. 부모의 삶이란 그저 평생 이 자리를 지키며 내 아이들의 뒷배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매일 스스로에게 새길 뿐이다. 단 하나, 부모 된 삶이 건넨 생각지 못했던 유익이라면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내 부모의 가려진 시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부모가 그리고자 했던 큰 그림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197쪽 〈부모로 빚어지는 시간〉 중에서
1997년 겨울 호주 사막을 건넜던 일과 그때 내가 그곳에 두고 온 것들을 생각한다. 청년의 나는 미래에 대해 열려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게 아무리 아름답거나 좋을지언정 어딘가에 머무르는 일을, 정해진 미래에 갇힐지도 모르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사람들 사이를 나와서 사막으로 들어간 나는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도시로,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그저 더 늦기 전에 사막으로 들어가고 싶었고 내가 갈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나아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나고 싶었다. 그것을 보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었음에도, 치러야 할 대가가 있더라도. 그 청춘의 순간, 나는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 207쪽 〈사막에 두고 온 것〉 중에서
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내어다가 제대로 심는 것을 정식(定植), ‘아주심기’라고 한다. 나 역시 쓰고 깎고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무언가 우리만의 또 다른 결실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곳에서 아주심어 뿌리를 내리려 한다. 노년의 완전한 시간을 남편과 우리 아이와 만끽하려 한다. 머지않아 제 짝을 찾을 아이와도 충분한 시간을 이곳에서 함께 보내려고 한다. - 234쪽 〈노년의 한옥〉 중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꿈이 생겼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했던 나이인 여든 살이 되어 《파우스트》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이것저것 경험하고, 아름다움을 좇으며, 가끔은 소멸할 것들에 눈물 흘리기도 하고, 행복한 일들에 활짝 웃기도 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다 보낸 후에,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삶의 어느 순간이 죽음을 감내할 만큼 아름다웠는지 조용히 떠올려보고 싶다. 파우스트 박사가 자유의 땅에 자유의 백성이 살아가는 순간을 최고로 꼽았던 것처럼,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 순간이 바로 가장 자유롭고,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좋을 만큼,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순간일 것이다. 이제 비로소 노년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 254쪽 〈멈춰라 순간아, 너 정말 아름답구나〉 중에서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그가 떠올랐다. 내가 그를 부러워했던 건 체념이나 동정, 낯선 삶에 대한 얄팍한 낭만 같은 감정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에 있으면서도, 타인을 위해 빛을 밝혀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러웠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오직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불을 밝히는 나 같은 사람도, 언젠가 그런 선의에 닿을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아직 오지 않은 칠흑 같은 시간을 더듬을 때마다 나는 간절히 바라고는 했다. 저 깊은 골목에도, 공허한 두 눈에도, 언젠가 찾아올 우리 모두의 늙음에도, 빛이 있기를. 스위치를 올리듯 탁, 하는 소리와 함께. - 277쪽 〈점등〉 중에서
이 땅에 남겨진 이들을 위한 문장과 문단이 필요함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어떤 삶의 이야기가 있었다고, 어떤 지혜를 나눠주고 싶다고, 선명한 언어로 나의 딸에게, 딸의 자녀에게 남겨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나의 존재가 묘비의 이름 석 자가 아닌,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 살아 숨 쉴 것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중략) 시간이 지나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되었을 때 뭉뚱그려진 어슴푸레한 기억의 조각으로만 아버지를 반추하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인이 되었다고 느낄수록 자신의 글을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 어쩌면 노년기에 가져야 할 유일한 의무일지도 모른다. - 291~292쪽 〈단 하나의 의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