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의 붓질 한 번의 입맞춤”은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기간과 남해안에서 휴전선 너머 개성에 이르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27개 대표적인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작업에 참여한 고고학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모은 책으로서, 전문적인 영역에 종사하는 고고학 전문가들 사이의 내밀한 이야기를 일반 시민 대중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의도로 기획되었다. 딱딱하고 어려운 발굴조사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을 넘어선, 고고학자들의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난 진솔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을 통해 일반 대중들이 고고학 연구나 문화유적 보호에 대해 보다 친근하고 일상적인 인식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반인과의 눈높이 맞춤을 위해 친근한 문체로 씌여졌으며, 사소한 계기가 위대한 유산발굴로 이어지는 극적인 요소나 현대인의 일상사와 연관되는 기상천외한 유물의 쓰임새와 같은 요소를 부각시켜 일반인의 흥미를 자극하고자 하였다.
본서의 집필진은 국내 고고학의 최고 권위자인 이건무 현 문화재청장을 위시한 원로급 고고학자에서 이제 막 고고학 연구에 입문한 신참 연구자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루는 30명이 참여하여, 가히 현재 국내 고고학계 전반에 대한 조망이라 할 만하다. 저자들은 발굴조사 단장으로서 혹은 말단 조사원으로서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당 유적에 대한 상세한 요약과 더불어 현장에서 느꼈던 고달픔과 황홀한 희열에 대한 기억을 토로하며, 장년의 중견 고고학자가 초년병 시절 발굴현장을 헤매던 추억 속에서 소개하는 짤막한 에피소드는 각별한 흥미를 더해준다.
예를 들어서 소장고고학자로서 1977년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에 참여했던 배기동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된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러한 위대한 발견이 한 미국병사에 의해 우연에 가깝게 촉발되었던 사연이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던 당시 연천읍내의 풍경 등을 흥미롭게 전해준다.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연천 구석기 축제에 대한 관심이나 2010년에 들어설 유적박물관에 대한 기대는 중견 고고학자의 문화유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태안 해저유적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 것이 청자를 조개껍질대신 산란터로 쓰다가 낚여 올라온 주주꾸미였다는 사실이나, 켜켜히 쌓여있던 유기물 잔해 덕분에 곡물창고로 오인되었던 익산 왕흥사지 유적의 한 건물터가 대형 화장실로 밝혀지는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일반인들이 일상생활과 문화유산 보존을 연관지어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할 것이다.
또한 강동 풍납 토성 유적 발굴은 선조들의 문화유산이 후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겪어야 하는 갈등과 고통에 대한 고민이 계속 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무거운 사례이기도 하다.
본서는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대표적인 유적들을 선사시대 10건, 원삼국-삼국-통일신라 시대 13건, 고려 조선 시대 3건으로 구분하여 선정하였고, 개별 유적과는 별도로 ‘토기’와 ‘고인돌’ 및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서 분석까지의 과정’에 대한 내용을 독립적인 주제로 기술하고 있다.
본서는 문화재청이 주관하여, 진인진이 발행하였고, 편집위원으로는 김길식 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김용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소장, 손명조 국립제주박물관 관장, 심영섭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과장, 이강승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한창균 한남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가 지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