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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

죽음으로 완성하는 단 한 번의 삶을 위하여


  • ISBN-13
    979-11-91742-08-4 (03100)
  • 출판사 / 임프린트
    안타레스 유한회사 / 안타레스 유한회사
  • 정가
    1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1-12-03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윤영호
  • 번역
    -
  • 메인주제어
    사회, 사회과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윤영호 #죽음 #존엄사 #웰다잉 #안락사 #연명의료 #호스피스 #삶과죽음 #죽음으로보는삶 #사회, 사회과학 #철학, 종교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5 * 200 mm, 260 Page

책소개

“준비된 죽음이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EBS 〈명의〉 서울대 윤영호 교수의 웰다잉 이야기
죽음으로부터 삶을 들여다본 32년의 통찰

‘죽음을 준비시키는 의사’ 서울대 윤영호 교수가 ‘죽음’으로부터 ‘삶’을 들여다본 32년의 통찰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일찍이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로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로서의 죽음을 환기하고,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로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에 무관심한 ‘죽기 싫은 나라 대한민국’을 고발하면서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 앞장섰던 그가, 이번에는 『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위한 참된 웰다잉의 길을 제시한다. 이른바 ‘웰다잉 트릴로지(Well-dying Trilogy)’ 완결편이다.
저자는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지켜본 의사로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라는 사실과 함께,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이 계속되는 ‘역설적 희망’을 이야기한다. ‘좋은 삶(웰빙)’은 ‘좋은 죽음(웰다잉)’으로 완성되며, 죽음은 삶을 완성할 단 한 번의 기회이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죽음을 준비하면 할수록, 내 삶의 의미와 가치가 명확해지고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법’과 ‘제도’가 국민의 죽음을 통제하는 한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임을 지적하고, ‘광의(廣義)의 웰다잉’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면 곧장 ‘안락사 합법화’ 요구의 거센 물결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목차

프롤로그 삶을 완성할 한 번뿐인 기회

제1장 잘 죽는 것이 왜 중요한가
어차피 죽으니 삶은 무의미한가?
삶의 마지막에 기억되는 삶
소유의 가치보다 존재의 의미를
죽음을 생각하면 보이는 삶

제2장 먼 곳에 있지 않은 죽음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
살아남은 자들의 몫
죽음을 준비시키는 의사

제3장 누구에게나 잘 죽을 권리가 있다
헛된 희망보다 남아 있는 삶의 진실에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죽음이기에
죽음을 말할 수 있는 세 번의 기회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연명의료결정법

제4장 좋은 죽음 그리고 의미 있는 삶
잘 죽고 싶은 것도 인간의 욕망
죽음이 삶에 미치는 영향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죽음으로부터 삶을 바라보다
주어진 삶이 아닌 내가 선택한 삶

제5장 그날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그날은 갑자기 찾아온다
그날을 맞이할 연습
죽음에 이르는 세 가지 시나리오
준비 안 된 죽음은 후회를 낳는다
준비된 죽음은 삶을 변화시킨다
희망을 선사하는 평범한 삶의 기록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추억 만들기
주도적인 죽음 준비

제6장 의료 집착에서 삶의 완성으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환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고독사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공동 부양으로 막는 고독사 쓰나미
달라져야 할 장례 문화

제7장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결정한다는 것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최소한의 절차
계속되는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은 국가의 죄
삶을 마무리하는 다양한 선택들
안락사 찬성론: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안락사 반대론: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받아야 한다
안락사 문제, 다른 나라에서는
안락사 논쟁 전에 광의의 웰다잉부터

제8장 이별을 돌보는 일, 국가가 나서야 할 때
이대로는 어려운 웰다잉
좋은 죽음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갈 길 먼 연명의료결정법
줄어들지 않은 연명의료
지금 당장 병원 관행을 바꿔라
존엄한 죽음, 호스피스 투자가 답이다

에필로그 매일매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본문인용

피할 수 없이 마주친 외딴 길 끝자락에 매달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삶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할 시간을 가질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웰다잉,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다.
요컨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내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기회이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나는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환자를 지켜본 의사로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기보다 삶의 완성으로 승화할 때 의미 있는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의 ‘역설적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까닭은 삶의 끝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그 절망적인 순간을 어떻게 하면 희망의 순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어떻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준비하고 두려움이 아닌 희망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찾아보고자 이 책을 쓰게 됐다.
---「프롤로그: 삶을 완성할 한 번뿐인 기회」중에서

죽음이라는 진실은 모두에게 두려운 법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만약 지금 말기 진단을 받게 되면 지난가을에 밟은 낙엽이 내 생애 마지막 낙엽이 된다. 올겨울 보게 될 눈이 이 세상에서 본 마지막 눈이 되며, 다음 봄에 만개할 목련과 개나리, 벚꽃과 라일락도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명절이나 이번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환자가 모른다고 가정해보자. 서로 꼭 해야 했을 마지막 말도 못 하고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떠나보내야 한다. 이것이 불행이 아니면 무엇일까? 삶을 마무리하고 이 세상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고마웠고, 행복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미안했다, 용서해라”는 말을 해야 했을 사람들도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는 사람을 위한 첫걸음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두려운 진실일지라도 결국 그 진실이 모두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제3장: 누구에게나 잘 죽을 권리가 있다」중에서

백혈구는 외부에서 들어온 미생물 및 세균과의 전투를 담당한다. 혈액 1세제곱밀리미터당 약 5,000~1만 개의 백혈구가 있다. 백혈구가 직접 세균을 포식하기도 하지만, 항체를 형성해 공격하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죽어가듯 백혈구 역시 몇 시간에서 며칠밖에 살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 몸의 일부이자 대단히 소중하고 필수적인 존재인데도, 평소 우리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며 산다. 숨이 가쁘거나 열이 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라야 이들의 존재를 인지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백혈구에 의한 면역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깨닫게 했다.
인간을 우주와 비교하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처럼 미미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이름도 지어준 적 없는 적혈구와 백혈구일지라도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이듯이, 우리 모두도 이 세상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다.
---「제4장: 좋은 죽음 그리고 의미 있는 삶」중에서

임종 단계에 이르면 영적 존재로부터 시작해 정신적 존재로서의 퇴보가 진행되며, 마지막 순간에는 오직 생물학적 존재로서만 시간을 끌게 된다. 정신적 존재가 아닌 생물학적 존재인 몸으로 압박붕대에 팔다리를 고정한 채 욕창이 생기고 폐렴에 걸리고 패혈증에 빠진다. 믿기 싫겠지만 늙어서 죽는 대개의 모습이 이렇다. 비단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가 아니더라도 온몸이 퉁퉁 부은 채 아니면 야윈 모습으로 누워서 입, 코, 비뇨기, 혈관에 플라스틱 튜브를 꽂고 연명한다. 이런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것이 자연스러운 죽음일까? 나와 인연이 전혀 없던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품위 있는 모습으로 죽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제5장: 그날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중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덜거나 벗어나게 하는 사회 제도의 부재 때문에 선택의 자유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행되는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은 불법 집단이나 반인륜적 국가의 폭력과 고문에 의한 살인 강요와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는 부자들이 누리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 거동이 불가능한 중증 환자를 적절히 치료할 만한 시설 마련이나 제도적 뒷받침 없이 사법적 책임만 묻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은 사회적으로 강요된 선택이다. 여기에 죄를 물어 처벌하는 것은 인간적인 삶과 품위 있는 죽음의 권리를 박탈하는 인권 유린이다. 죽음보다 못한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가 강요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정치 문제다. 단죄받아야 할 대상은 그 가족이 아니라 우리와 사회 그리고 국가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간병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일로만 치부하지 않고 공동체적으로 해결했더라면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매우 안타깝다.
---「제7장: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결정한다는 것」중에서

연명의료결정법에는 3가지 선언의 의미가 있다. 첫째, 질병 치료가 불가능해졌을 때 죽어가는 국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겠다’는 것이다. 둘째,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실패’가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셋째, 죽음을 ‘환자와 가족’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돌보겠다’는 것은 호스피스 또는 임종 돌봄을 제공한다는 뜻이며, ‘삶의 완성’은 웰다잉을 위한 사전돌봄계획을 세워 개인의 삶과 죽음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연명의료결정은 그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개인의 웰다잉을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기 위해 이 법을 만든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저 연명의료결정만이 아니다. 국민은 웰다잉을 원한다. 의사들도 원한다.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결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제8장: 이별을 돌보는 일, 국가가 나서야 할 때」중에서

서평

죽음 앞에서도 꿈꾸는 삶의 ‘역설적 희망’
그리고 그날을 위해 모두가 준비해야 할 것들

우리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니 어차피 죽는 것 아무렇게나 죽어도 될까?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 먼지처럼 사라져야 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금세 잊히고 지워지고 의미 없는 삶으로 끝낼 것인가? 그리고, 죽음은 과연 그저 개인의 문제일까? ‘죽음을 준비시키는 의사’ 서울대 윤영호 교수가 죽음으로부터 삶을 들여다본 32년의 통찰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웰다잉을 통해 삶이 끝난 뒤에도 삶이 계속되는 ‘역설적 희망’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결국 죽음으로써 완성된다. ‘좋은 삶(웰빙)’은 ‘좋은 죽음(웰다잉)’이 없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나아가 죽음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살피고 준비해야 할 사회 문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생겼어도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계속되는 한편 독거 노인의 고독사가 늘고 있으며, 질병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자살하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배우자나 자식의 간병 살인까지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대로 가면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웰다잉이 자리도 잡기 전에 안락사 합법화 요구의 거센 물결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죽음을 마무리하는 것까지가 인생의 완성이다.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을 완성할 그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떤 의미를 부여해 자신만의 전설을 남길지, 그 선택은 우리 모두에게 달렸다.

―오래만 살면 ‘아무렇게나 죽어도’ 상관없는가
‘100세 시대’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요즘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 기준 80.9세이던 ‘기대 수명’이 2019년 83.3세로 늘었다. 2005년에는 78.2세였다. 14년 만에 5.1세로 높아진 것이다. 50년 뒤에는 90.1세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그사이에 혁명적인 의료기술이 나오지 않는 한 우리 세대에서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 일은 없다. 게다가 기대 수명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오래만 살면 그만일까? 윤영호 교수는 정작 중요한 것은 ‘건강 수명’임을 지적한다. 2005년 68.6세이던 건강 수명이 2012년에는 65.7세로 줄었고, 2018년 기준으로는 64.4세에 불과하다. 기대 수명은 느는데 건강 수명은 짧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병을 앓다가 죽는 기간이 점점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의 불행한 노후다. 상황이 이런데, 장수가 과연 축복이기만 할까?
저자가 지켜본 수많은 죽음, 사고사를 제외하고 가장 일반적인 죽음의 모습은 이렇다. 암이나 심뇌혈관질환 또는 호흡기질환으로 수년 동안 투병했는데, 더는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더욱 악화해 진통제 등 통증 조절 처방에 의존하다가 가족과 별다른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물질적 재산은 남겼을지 모르나,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한 정신적 유산은 남기지 못한다.
윤영호 교수는 이보다 더 극단적인 죽음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살아생전 돈을 많이 벌었거나, 유명인으로 살았거나, 권력으로 세상을 휘어잡았거나, 세간의 존경을 받으며 살았지만, 막상 죽을 때가 돼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영양 튜브와 주사로 연명하다가, 임종 직전 응급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 입원해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비참하게 죽는다. 살아있을 때는 위대한 삶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겠지만,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과 분노만 가득 차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삶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더라는 것이다.

―삶이 끝나도 ‘삶이 계속되는’ 이유
“뇌세포를 제외한 모든 세포는 죽고 새 세포로 교체되는 과정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초당 380만 개, 하루 3,300억 개의 세포가 교체된다. 그래야 우리의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세포는 나의 일부다. 나는 매 순간 죽어서 새롭게 탄생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포에 이름을 붙여주거나 불러주지 않는다. 기억조차 하지 않고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몰라줘도 세포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윤영호 교수는 말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고. 그 어떤 초월적 존재가 우리를 의미 없는 존재라 여기더라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실수투성이의 후회스러운 삶이라도 우리 스스로 세상에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우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지탱시키고 있기에 우리 모두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자격을 갖고 있다고.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생물학적으로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멈추고, 뇌 활동이 멈추고, 세포 재생이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죽으면 신체적·정신적 존재로서의 나는 사라진다. 그러나 저자는 “영적·실존적 존재는 우리 자신과 남아 있는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음을 통해 실존적 존재로서 삶을 완성하고 전설로 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남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서 세상에 자신만의 전설을 남기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삶이 주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길 그날을 설렘으로 준비하는 것, 이것이 참된 웰다잉 문화”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우리의 존재와 에너지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할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변화를 ‘소멸’로 보느냐 ‘재생’으로 보느냐의 관점만이 다를 뿐”임을 환기한다. “존재의 연속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삶을 달리 보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재생이며,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삶이 끝나도 삶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잘 죽을 권리’가 있다
“예전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빨리 죽어야지’ 하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고 험한 꼴 보이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빨리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국가와 병원이 끝까지 ‘연명시키기’ 때문이다. ‘언제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요즘 어르신들은 ‘잘 죽어야지’ 하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렇기에 건강할 때 미리 훗날의 죽음을 생각하고 정리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영호 교수는 “죽음을 무조건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만 여기지 말고 자주 자신의 죽음을 그려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죽음을 떠올린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머릿속에서 멀리한다고 죽지 않는 것도 아니기에.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삶을 생각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며, 함께하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품위 있는 죽음, 인간다운 죽음은 우리 모두의 기본 권리”라고 역설한다. 피할 수 없이 마주친 외딴 길 끝자락에 매달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삶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할 시간을 가질 권리가 우리에게 있으며, 그것이 다름 아닌 웰다잉, 즉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라는 것이다.
“누군가 모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어 병이 점점 악화해 수개월 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면 그 사람이 남은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세상을 떠나기 전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미리 준비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더라도 남은 시간 동안 삶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죽는 것도 두렵지만, 죽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곁에 없는 것이 더 두렵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의미 있는 삶으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이다.”

―‘죽음’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윤영호 교수는 2016년 1월 국회 본회를 통과한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 공로로 같은 해 ‘홍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은 최소한의 ‘품위 있는 죽음’, 즉 ‘협의(狹義)의 웰다잉’을 위한 시작일 뿐이다. 저자는 “광의(廣義)의 웰다잉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한탄한다. 이제 ‘웰다잉’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존엄한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은 범국민적 관심사다. 문제는 웰다잉을 향한 변화의 속도보다 비참한 죽음의 양상이 펼쳐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데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어도 그 사각 안에서 고독사, 간병 살인, 동반 자살이 끊이지 않으며 해마다 가속화하는 실정이다.
연명의료 중단을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저자는 “연명의료 중단은 ‘죽음이 임박한 시점’에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기계적 호흡 등 생명연장의료를 중단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지만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는 제한돼 있으며, 중단 대상과 시기도 의학적 판단 절차에 따라 엄격히 결정된다”면서, 회복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더라도 ‘죽음이 임박한 시점’이 아니면 현행법상 연명의료 중단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다시 말해 회복 가능성이 없는 데다 살아있는 게 자신과 가족이 감당하지 못할 고통만 초래하더라도, ‘죽음이 임박한 시점’이 아닌 상태에서 치료를 중단하면 연명의료 중단이 아닌 ‘소극적 안락사’가 되어 법의 처벌을 받는다. 대개의 간병 살인은 이 같은 ‘소극적 안락사’이며 대한민국에서 아직 ‘죄’이기에 실형을 선고받는다.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이 벌어지는 원인은 개인이 죽음을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벌어질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다. 오죽하면 가족을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를 수밖에 없겠는가? 이들에게 도덕과 양심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저자는 “외부의 도움을 요청했거나 방법을 찾아봤지만 주어진 부담과 그에 따른 고통을 해결할 길이 없기에, 간병 살인으로 인한 법적 책임을 감당할 각오로 그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윤영호 교수는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을 개인의 차원으로 치부해 가족들에게 ‘생명 경시’라는 비도덕적 행위와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로 단죄함으로써, 이 문제가 ‘인간 불평등’의 극치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로 내몰아 범죄자 낙인을 찍고 있는데도, 나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과 사회 지도자들이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불평등을 사회적 약자에게 강요하는 현실을 애써 못 본 척하는 비겁함과 부도덕함을 보인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않는다.

―‘웰다잉’ 못 하면 ‘안락사’ 못 막는다
“법이 존재하는 까닭은 제대로 죄를 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억울한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법을 집행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면 그 법을 점검해야 한다.” 저자는 “국가와 사회가 광의의 웰다잉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채 간병 살인 및 동반 자살이 일상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면 결국 ‘안락사 법제화’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난다는 의미다.
“지금과 같은 좁디좁은 수준의 웰다잉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단언컨대 틀림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요구가 강해질 것이다. 광의의 웰다잉이 자리도 잡기 전에 안락사가 법제화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윤영호 교수는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할 만큼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 제도가 성숙한 상황은 아닌 상황”에서 “광의의 웰다잉이 안락사 문제의 유일한 대안이므로, 조속한 법 제정으로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어서 그 비전과 실천 방안을 호스피스 확대 정책 중심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윤영호
윤영호
서울대학교병원 암통합케어센터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건강사회정책실장, 연구부학장,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역임했으며, 삶의 질 연구 및 완화의료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가정의학 전문의다. 한국건강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89년 말기 암 환자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암 환자와 가족의 건강과 삶의 질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그 헌신적인 모습이 EBS 「명의」를 통해 소개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의사의 사명은 ‘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하는 것에 있다”는 신념으로, 특히 인간의 총체적 행복과 건강에 집중하고 있다. 암 환자들의 곁에서 생존에 관한 사투를 함께하면서도, 치료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암 경험자들의 건강과 삶 전반의 질을 함께 향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고자 애쓰고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을 돕고자 국립암센터에 ‘삶의질향상연구과’를 신설했으며,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설립위원으로 활약했다.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법제화에 앞장선 공로로 2016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화이자의학상과 보건복지부 장관상도 수상했다. 나아가 국내 최초로 건강에 ‘코칭’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건강 코칭(health coaching)’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했다. 이 같은 노력은 사회 전체로 확대돼 기업의 ‘건강 경영(health management)’과 ‘건강 가치 창출(creating health value)’ 연구로 이어졌다. 이를 현실로 구현하고자 2019년 ‘덕인원(德人願)’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웰다잉, 말기 환자, 호스피스·완화의료 등에 관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50편, 국내 학술지에 15편 발표했다. 저술과 강연도 연구 활동의 중요한 축이다. 학교와 병원을 오가는 바쁜 나날에도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습관이 건강을 만든다』 등 다수의 저작과 의학 칼럼 연재, 강연 활동을 통해 대중의 곁을 지키는 의사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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