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대해서라면 아는 게 전혀 없으므로 살고 싶은 동네도 없었다. 오로지 우연히 본 여성 잡지의 <살고 싶은 도쿄 동네 베스트 10>이라는 특집 기사에 의지해 집을 구하는 중이었다._<1장_내 집은 어디에> 중에서, p. 15
“엄마가 사줄게.”
그러는 엄마를 말리고 나는 직접 계산했다.
전부 내 돈으로 하고 싶었다. 이사 비용도, 집의 보증금과 사례금, 가전제품이나 가구까지 전부 단 한 푼도 부모님에게 기대기 싫었다. 도쿄에서 나를 시험한다는 건 그런 거다. 나는 하여간 황소고집이다. _<1장_엄마가 오다> 중에서, p. 39
접골원에서 갈고닦은 드라마 말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아르바이트 동료들의 말투를 적극적으로 흉내 내기로 했다. 어미에 “~했잖아”를 쓰는 아이가 있으면 따라 했고 “있잖아~”도 도입했고, “그치”도 더 자주 사용해서 “저기, 있잖아, 이번 근무표 말인데”라는 말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_<1장_아르바이트 찾기> 중에서, p. 52
그날 무슨 이야기를 더 했는지는 전혀 기억 안 난다. 그래도 왠지 기뻤다. 절에서 일하는 사람과 일러스트레이터. 직종은 전혀 다르지만 도시에서 혼자 산다는 점은 같다. 같이 도쿄에서 열심히 해봐요. 이런 기분이었다. _<1장_윗집 사람> 중에서, p. 75
그런 피아노 레슨도 10년 만에 일단락. 한번 그만두면 다시 못 치게 될 게 틀림없지만, 지금의 나는 시작하기 전의 ‘치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10년 치의 즐거운 화요일을 토핑할 수 있었다. _<2장_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 중에서, p. 96
이름이 있다는 건 동료가 있다는 뜻이다. 별빛 아래, 커튼을 내린 방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하는 사람들의 존재에 안심한다.
밤은 다정하다. 밖에 나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자기 가치를 높여라! 이렇게 재촉하지 않는다. _<2장_밤새우기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p. 133
그리고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건 오사카의 우리 엄마가 만든 찹쌀떡 ‘오하기’다. 부드러운 팥소에 고슬고슬한 찹쌀 알갱이. 신칸센을 타고 약 두 시간 반. 가까우면서도 먼 고향이다. _<2장_먹고 싶은 음식 베스트 5> 중에서, p. 163
나는 무리하고 싶지 않은 어른이었다.
무리하고 싶지 않은 것과 노력하지 않는 것은 조금 다르다. 노력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도 있고, 노력하는 것은 때때로 즐겁다. 그러나 무리하는 건 괴롭다. 무리하는 건 언제나 즐겁지 않다.
무리를 한다는 건, 수면 시간을 줄이거나 식사 시간을 줄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산책 시간을 줄이거나 혹은 멍하니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 또한 ‘무리’다. _<2장_무리하지 않는 어른> 중에서, p. 197
각양각색의 배움.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꾸준히 ‘좋아하는 마음’이 이어진 것은 그림 그리기뿐이다.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좋지. 핫핫핫(느긋한 부모님의 웃음소리).”
미술 성적도 보통인 딸인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계속 칭찬해줬다. _<2장_나보다 저 아이> 중에서, p. 229
“오사카에는 안 돌아올 거니?”
‘나이를 먹어 언젠가 은퇴한 다음에’라는 의미다.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아니 뭐, 도쿄에도 익숙해졌으니까, 하고 어물어물. 도쿄에서는 표준어를 쓰며 생활하는데, 내 내면에는 언제나 간사이 사투리의 리듬감이 새겨져 있다. 사투리에 품은 애착은 평생 사라지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나는 도쿄도 좋았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고, 친숙한 생활이 있다.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노르웨이 숲이 펼쳐진다면 좋겠다고 망상할 때도 있지만, 동네 산책로에도 매화는 핀다. 벚꽃도 핀다. 창문 너머로는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_<3장_그때의 우리>, p.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