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유로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모를 차디찬 겨울바람은 어린 소년의 마음에 ‘그때 거기’라는 경험으로서의 장면을 깊이 새겨 주었다. 이후, 초조와 불안이 성장의 운율로 점철되긴 했지만, 경험의 온도로 덥혀진 기대가 불균질한 개인의 미끄럼틀처럼 안전하게 작동하였다. 하지만 주변은 바람과 달리 안전하지 않았다. 인천이라는 파도에 맞서 능숙하게 균형을 잡기까지 높고 기다란 평균대 위에서 위태롭게 지내야만 했다. 한 시절이 잔인하다. 인천의 장소가 주는 인상은 어렸을 적 겨울밤, 집으로 향하는 눈길을 걸으며 날카로운 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던 경험과도 닮아 있다. 얼마 있다가 집에 가까워지면 노란빛이 어둠을 태우는 광경에 안도할 수 있었다. 사실, 본다는 것 자체는 불안한 경험의 연속극이다. 그래서 이미지의 속성을 빌어 보게 된다. 이미지는 자주 시간의 뒤편을 밝히는 스위치나 다름없다. 모든 방의 스위치를 켠다면 커다란 기억의 집을 지을 수도 있다. 산책과 사유의 걸음으로 만난 인천의 장소들은 지역을 안내하고 공간을 의미화하는 기억집의 스위치들이다. 그런 면에서 장소를 모아 집을 짓는 게 어떤 호소일까? - 「들어서며」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