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 때는 이런 아주 간단한 일조차 한없이 어렵게 느껴졌다. 월마다 하는 출결 마감은 실수 없이 끝내본 적이 없고, 30분 남짓이면 끝날 일을 몇 시간은 붙잡아야 마칠 수 있었다. 한번은 봉사활동 확인서를 작성하는데, 옆자리 선생님께 배운 대로 정보를 입력하고, 출력하고, 도장까지 쾅 찍어서 담당자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웬걸, 교무실 전체에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영문도 모른 채 선생님을 쳐다보니 아주 야망이 크다고 웃으시며 내가 제출한 확인서를 보여 주셨다. 거기엔 교장 직인란에 버젓이 나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렇게 첫해에는 크고 작은 실수들이 줄지어 이어졌다.
“1-1. “NEIS” 네이스? 나이스?” 중에서
군대에서는 남은 군 생활이 편하다는 '풀린 군번'이라는 말과, 남은 군 생활이 막막하다는 '꼬인 군번'이라는 말이 있다. 풀린 군번은 선임들이 곧 전역하고 자기가 선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꼬인 군번은 바로 위에 선임들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데 인원도 많아서 전역할 때까지 거의 막내로 지내야 한다.
어찌 되었든 나는 꼬인 군번에 해당했다.
“1-9. 30년간 막내가 될 운명” 중에서
내가 MZ세대니 90년대생이니 표현했지만, 사실은 개인 성향 차이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학교생활을 3년 정도 하고, 1급 정교사 자격도 얻었다면 이제 정체성 확립이 필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신규교사에서 벗어나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마다 문화가 달라서 분위기는 봐야겠지만.
사실 내가 만나본 선생님 중에는 나랑 나이가 비슷한데도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한 분도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데도 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도 봤다. 결론은 나이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교사로 학교생활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5. 90년대생이 학교에 온다?” 중에서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 민주를 학교에 오게 해야 하는데, 날카로운 아이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뒤 얼마 동안은 수업을 하다가도 내 앞에서 웃는 학생들이 나의 뒤에서는 나를 욕하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민주에게 하는 연락도 자꾸만 망설여졌다. '학교에 오라고 했다가 또 욕을 들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담임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만을 한 것 같다. 민주의 결석 일수는 하루하루 쌓여가고, 법정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한 민주는 결국 유예 처리가 되고 말았다.
아직도 민주의 이야기는 건 나에게 아픈 일이다. 너무 사랑했던 학생에게 욕을 들었다는 것도,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책무를 다 해내지 못했다는 것도 계속해서 나를 아프게 한다. 그때 다르게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는 내가 교직에 몸담은 내내 나를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3-1. 학생에게 욕을 들었을 때” 중에서
용기를 갖고 우물 밖으로 조금만 나서면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도전하고, 성장하고, 쉼 없이 고민하며, 자기만의 색깔을 칠해가는 선생님들과 함께하며 나 또한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이라는 말이 있다. 구부러진 쑥도 꼿꼿한 삼밭에 나면 자연히 꼿꼿하게 자라듯,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하는 사자성어다. 성장을 원한다면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더 넓은 곳으로 발을 내딛는 거다. 그렇게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관계를 만들면 좋겠다. 교사 동호회가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듯이, 선생님들께도 분명 그런 기회가 올 것을 믿는다.
“4-4. 성장을 원한다면 교사 동호회부터” 중에서
EBS 연계 교재 사전 검토를 시작으로 교육청 전국연합평가 출제 및 검토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때의 경험을 통해 전문성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자평한다. 나아가 공무원 시험 등 다른 시험 출제위원으로도 위촉되어 활동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전문성을 갖춤으로써 기회는 더 많이 생겼다. 우연한 기회로 혼공스쿨 모임에 참여해서 첫 영어 교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 일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전문성을 키우려 노력한 덕분에, 이제는 내가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작가로서의 삶도 살아가게 되었다.
만일 신규교사를 벗어나면서 안정적으로 학교생활 하며 해야 할 일만 처리하고 편하게 살았다면 과연 지금의 내가 있을지 의문이다. 부족하지만 항상 변화에 적응하고 성장하고자 노력했기에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세우고, 인생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4-6.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들도 행복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