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의 틀을 바꾸는 ‘애착 회복 연습’
샘은 늘 자신이 꿈꾸던 이상형인 마크를 만나 금세 푹 빠졌고, 친구들 모임이나 운동 강습 등 다른 일을 제쳐 두고 그와의 데이트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그렇게 만난 지 두어 달이 지나 그가 자신의 운명의 짝이라고 확신한 순간, 어쩐지 마크가 몸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정하던 사람이 온종일 안부 연락도 없고, 주말이면 친구를 만난다고 했다. 샘은 급격히 자신감을 잃고 불안감에 휩싸였고, 그 모습을 본 마크는 더욱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결국 마크는 샘을 떠났다.
이 익숙한 전개의 이야기에서, 상대와 계속 연결되고 싶은 샘의 강렬한 욕구는 어린 시절 일관성 있는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서 형성된 불안형 애착 체계의 특징이다. 이들의 불안의 근원에는 대개 ‘유기 공포’라는 핵심 상처가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같은 애착 관계가 되풀이되어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상대의 작은 소홀함에도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를테면, 연인이 문자에 답이 없을 때 ‘일하느라 바쁜가 보네’라고 생각하는 대신, ‘예전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라고 의심하는 식이다.
한편 마크 같은 회피형은 자라면서 아예 감정 방치를 겪은 경우가 많다. 인간의 본능인 감정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고통을 피하려고 이들은 아예 독립적인 성향으로 자란다. 연인을 사랑하면서도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위험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샘이 자기만 바라보며 다가오는 기분이 들자 마크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선 것이다.
원래 극과 극은 서로 끌리는 법이다. 그러나 안정감을 애타게 찾는 불안형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친밀감을 피하려는 회피형은 결코 서로에게 원하는 걸 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나와 상대의 유형을 미리 파악해서 이런 불행을 미연에 방지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이미 이런 관계에 빠져 버렸다면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다행히도 애착 체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실제로 평생에 걸쳐 변화한다.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관련된 신경회로는 어린 시절 양육자와 최초의 애착을 형성할 때 이미 만들어지는데, ‘신경 가소성’이라는 놀라운 능력 덕분에 성인이 되어서도 바꾸거나 새로 만들 수 있다. 이 책에서 안내하는 치유법인 ‘자기 채움’은 바로 이 신경회로를 다시 놓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에 받지 못한 애정과 보살핌을 지금 경험하고 스스로 채워 넣는 애착 회복 연습이다.
이 연습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애착 패턴과 연결된 핵심 상처를 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시로 든 내담자 캐리는 매번 자신에게 한눈에 반하는, 성공한 사업가 유형의 상대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이들이 일에 빠져 감정적으로 소홀해지면, 캐리는 곧 외롭고 불안해져서, 매력적인 외모로 다시 상대의 관심을 붙들려고 애쓰곤 했다. 과거를 되돌아보니, 회사 일로 바빴던 부모님에게서 어린 캐리가 어쩌다 받은 관심과 칭찬은 외모에 관한 것뿐이었으며,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늘 무시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캐리의 내면에는 외모로 사랑받지 못하면 버려질 것이라는 상처가 자리 잡았다.
핵심 상처를 방치하면 거기서 생겨나 굳어 버린 관계 패턴은 어른이 된 후에도 우리의 행동을 계속 조종한다. 괴롭다고 하면서도 매번 비슷한 사람을 만나, 비슷한 연애를 되풀이하는 이유다.
나를 먼저 채우면, 관계가 쉬워진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어린 아이인 부분, 즉 내면아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를 보호하고(내면파수꾼) 보살피는(내면양육자) 부분도 있다. 내면파수꾼이 흔히 말하는 방어기제라면, 내면양육자는 살면서 자신에게 따스한 애정과 관심을 주었던 대상을 내면화한 존재다. 부모나 친한 친구, 때로는 반려동물도 내면양육자가 될 수 있다. 관계에서 위험 신호가 포착될 때 자신을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내면파수꾼이라면, 상처를 치유하고 애착 회로의 빈 부분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내면양육자이다. 내면양육자는 뇌와 장에 이어 제3의 뇌라고 불리는 심장뇌(heart-brain)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핵심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자기 심장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첫 단계는 ‘감정 끌어안기’다. 상처로 인한 고통이나 두려움을 포함해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을 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통 회피형은 아예 자기 감정을 마주하길 두려워하고, 불안형은 상대의 감정과 욕구에 온 신경이 쏠려서 자기 감정을 돌볼 여유가 없다. 이렇게 억누르고 건너뛰어 버린 묵은 감정들은 점점 쌓이다가, 마침내 사건 하나를 계기로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심장에 저장된 고통은 제대로 느껴야만 해방된다. 그러지 못하면 고이고 굳어서 독처럼 우리를 좀먹고,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에 걸림돌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다음 단계는 그 감정을 처음 겪었을 때 꼭 필요했으나 얻지 못했던 것을 채워야 한다. 두려웠다면 안전을, 수치스러웠다면 인정을, 고통스러웠다면 위안을, 버려졌다면 함께하는 느낌을 내가 나에게 건네는 것, 이게 바로 ‘자기 채움’이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내면양육자를 비롯해 자신에게 든든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어렵더라도 저자가 안내하는 단계별 연습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내면을 뒤흔들던 불안이 조금씩 걷히며 한결 차분하고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안형 애착 체계가 활성화된 이들은 자기 채움의 반대인 자기희생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이 사람이야말로 내 마음을 이해해 주고 채워 줄 유일한 사람, 운명적 사랑이라 믿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 상태 는 곧 버려지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의 하나인 자기희생으로 이어진다.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생각, 자기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억누르며 타인의 욕구에만 맞추는 것이야말로 사랑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리는 지름길이다.
관계에 서툴고 불안한 이들을 위한
나를 잃지 않고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
이런 사람들에게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것은 ‘경계선 긋기’다. 타인의 요구에 ‘노’ 하는 외부 경계선과 자신의 욕구에 ‘예스’ 하는 내적 경계선이 모두 중요하다. 경계선 긋기는 내 마음이라는 집에 누구를, 무엇을 들여놓을지 분별하는 것과 같다. 특히 공감 능력이 발달한 불안형일수록 적절한 선 긋기가 안 되면 상대의 감정에 휩쓸리거나, 습관적으로 상대에게 맞추고 자신을 내주게 된다. 그러다 보면 즐겁고 행복해야 할 연애에서 혼자 지치고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계선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 이 문을 넘나들며 ‘함께’와 ‘따로’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능력이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다. 모든 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사랑 중독이다. 때로는 혼자 시간을 보내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다시 서로에게 돌아와 각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깊은 친밀감을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기술이다.
이렇게 보면 커플 사이의 다툼과 갈등도 각자의 경계선을 확립하는 건강한 과정이다. 세상에 완벽한 관계란 없다.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절대 안 싸운다는 커플들도 있지만, 실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가 되는 것인데, 그러자면 갈등이 생겼을 때 두 사람 다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커플의 99센트는 서로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라며, 상대가 “진실을 똑똑히 보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진실은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각자의 진실을 주장하며 익숙한 방어기제(회피, 분노, 비난, 숨기, 통제하기 등)를 출동시키는 대신, 속도를 늦추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노력에 달려 있다. 다툼이 과열되거나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울 때는 책에서 소개하는 ‘타임아웃’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저자는 누군가 우리 인생에 등장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으며, 모든 관계로부터 우리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지금 혼자든, 불행한 연애를 하고 있든, 이별의 상처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든, 우리는 치유되고 성장하기 위한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이 책과 함께 자기 내면을 돌보고 관계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과정이 많은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안정되고 오래가는 사랑을 찾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