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마늘
1980년대 이후 경제학 분야는 1990년대 이전의 영국 음식 문화처럼 되어 버렸다. 한 가지 학문적 전통, 다시 말해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메뉴의 전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학파와 마찬가지로 신고전학파 또한 장점이 있다. 그리고 심각한 단점도 있다. 신고전학파가 경제학계 전체를 장악하게 된 경위는 너무나 복합적이고 복잡해서 이 책에서 살펴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원인이 어찌 되었든 간에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주류 경제학으로 자리 잡았고(일본과 브라질, 그리고 그보다는 조금 정도가 덜하지만 이탈리아와 튀르키예가 소수의 예외에 속한다), 그 영향력이 너무 강해져서 이제는 ‘경제학’과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동의어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경이 되었다. 이런 식의 지적 ‘단일 경작monocropping’은 이 분야의 지적 유전자 풀을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_<본문 30쪽>
우리 모두는 경제학 이론이 세금, 복지 지출, 이자율(금리), 노동 시장 규제 등의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고, 이런 정책은 우리 일자리와 노동 환경, 임금, 주택 담보 대출과 학자금 대출 상환금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 이론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생산성 산업을 발전시키고, 혁신을 꾀하고, 지속가능한 친환경적인 개발을 가능케 하는 정책 수립에 영향을 끼쳐 그 경제 체제의 장기적・집단적 발전 가능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경제학은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경제적 변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다시 말해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 자체를 변화시킨다. _<본문 32~33쪽>
나는 우리 모두가 경제학의 원리를 몇 가지라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더 중요한 차원, 즉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런 주장을 하면 경제학은 보통 시민의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눈이 돌아가게 어려운 전문 용어와 기술적인 논쟁, 복잡한 수학 공식과 통계가 난무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경제학 이론이 난데없이 나타나 우리가 몸담은 세상 전체를 뒤집어엎고 주물럭거리는 것을 “절망 어린 침묵 속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_<본문 36쪽>
1장 도토리
내가 도토리묵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이 음식을 최고급 요리라고 우길 수는 없다. 도토리묵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서 등산을 한 다음 길가 노점에서 요기를 하거나 저렴한 동네 술집에서 친구를 만나 한잔할 때 곁들이는 음식이다. 사실 도토리를 재료로 해서 만든 최고급 요리를 떠올리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도토리를 이베리코 돼지들에게 먹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타 네그라Pata Negra(검은 발굽) 돼지라고도 부르는 이 이베리코 돼지의 다릿살로 만드는 햄이 바로 하몬 이베리코jamó Ibéico다. 최고급 하몬 이베리코는 파타 네그라 돼지를 도축 전 일정 기간 동안 떡갈나무 숲에 방목해서 도토리만 먹도록 한 다음 만들기 때문에 하몬 이베리코 데 베요타jamó Ibéico de bellota라고 부른다(베요타는 스페인어로 도토리라는 뜻이다). 도토리 덕분에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소하고 깊은 맛을 내는 햄이 탄생한 것이다. _<본문 45쪽>
자, 이쯤 되면 이슬람 문화가 본질적으로 개발에 방해가 된다는 고정 관념은 없어졌을 것이다. 배움을 강조하고, 과학적 사고의 전통이 있으며, 사회적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고, 상업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법치와 관용의 전통이 강한 이슬람 문화는 경제 발달에 유리한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두바이는 모두 이슬람 문화가 경제 발전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다.
우리는 무지 때문에, 그리고 어떨 때는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낯선’ 문화에 부정적인 문화적 고정 관념을 적용할 때가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골라내서 그 문화권의 나라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문화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놓치는 오류로 이어진다. _<본문 51~52쪽>
적절한 경제 정책, 사회 정책을 사용하면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든 발전을 꾀하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은 정확한 시간 개념과 산업 사회의 규율을 갖춘 현대적 산업 노동력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두 나라는 그러한 노동력을 구체적인 조치를 통해 만들어 냈다. 시간과 규율을 잘 지키는 습관을 학교 교육을 통해 가르치고, 경제 발전을 통해 ‘국가를 재건’하는 ‘애국 전쟁’을 위해서는 근면한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념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긴 근로 시간과 힘든 노동 조건을 허용하는 노동법을 유지하는 등의 방법이 사용되었다.
유교 문화권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것은 공자가 학식을 강조해서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후 토지 개혁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통해 계층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교육이 계층 상승의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_<본문 56쪽>
2장 오크라
수프와 스튜 중간 정도 되는 미국 남부 음식인 검보에 없어서는 안 될 대표적인 재료가 바로 오크라다(미국에서는 흔히 오크라 자체를 검보 또는 곰보gombo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미국 남부 요리 전문 요리책을 보고 처음으로(그리고 아직까지는 유일한) 오크라가 재료로 들어가는 요리인 서코태시succotash 만들기를 시도했다. 완성된 서코태시를 맛본 나는 요즘 젊은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심쿵’을 경험했다. 내 요리 솜씨가 뛰어나서 ‘심쿵’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감동의 원인은 오크라 덕분에 생긴, 뭐랄까 부드럽고 끈끈한 식감이었다. 처음 오크라를 먹었을 때 나를 멈칫하게 했던 그 점착성이 서코태시의 맛을 부드럽고, 편안하고, 심장을 녹일 듯 맛있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 것이다. _<본문 63~64쪽>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과 그들의 후손이 아니었으면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공장과 은행을 운영하고 노동자를 먹여 살릴 금, 은, 목화, 설탕, 쪽빛 염료, 고무 등의 온갖 자원을 값싸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없었다면 미국은 현재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은 (무보수) 노동만을 제공한 데서 그치지 않았다. 노예는 매우 중요한 자본 동원 수단이었다. 고백하자면 이는 나도 최근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뉴욕타임스》에 기고할 글을 위해 노예 제도가 남긴 유산을 조사한 미국의 사회학자 매슈 데스먼드Matthew Desmond는 이렇게 썼다. “노예가 된 인간들은 주택 담보 대출이 시작되기 몇백 년 전부터 대출의 담보로 사용되었다. … 땅값이 별로 나가지 않던 미국 독립 전 … 대부분의 대출은 인간이라는 자본을 담보로 이루어졌다.” 데스먼드는 거기에 더해 노예 한 명 한 명을 담보로 한 대출들을 한데 묶어 만든 채권 거래도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_<본문 66~67쪽>
그러나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는 매우 좁은 개념의 자유다. 첫째,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경제 영역 내의 자유로, 기업이 가장 높은 이윤을 낼 수 있는 것을 만들고 팔 수 있는 자유, 노동자가 직업을 고를 수 있는 자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자유 등에 한정되어 있다. 정치적 자유나 사회적 자유 등의 다른 자유가 경제적 자유와 충돌을 일으키면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경제적 자유를 우선순위에 둔다. (…)
거기에 더해 프리드먼이나 헤리티지 재단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는 좁디좁은 경제적 자유의 개념 중에서도 자산 소유자(지주와 자본가)가 가장 큰 이윤을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다. 자산가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노동자들이 집단행동을 할 자유(예를 들어 파업), 실직한 노동자들이 새 직장을 구할 때 강력한 복지 국가의 보호를 받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자유 등―는 잘해야 그냥 무시되고, 많은 경우에 반생산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면치 못한다. _<본문 74~75쪽>
3장 코코넛
코코넛에 대한 내 견해가 완전히 뒤집힌 것은 1990년대 말 멕시코 칸쿤에서 내 생애 최초로 열대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피냐 콜라다piñ colada를 처음 맛보면서였다. 파인애플 주스는 항상 좋아했지만, 그 파인애플 주스가 코코넛 밀크와 럼을 만나서 탄생한 음료는 마법처럼 황홀했다. 아마 그 휴가의 절반은 피냐 콜라다를 홀짝거리며, 또 다른 절반은 당시 아장거리던 딸아이를 쫓아 해변과 풀 주변을 돌며 지낸 것 같다._<본문 80~81쪽>
잘사는 나라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흔히들 추정하곤 한다. 그리고 다는 아니지만 가난한 나라 중 많은 수가 열대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근로 윤리가 부족한 이유가 열대 지방에는 천혜의 자원이 풍부해서 쉽게 먹고살 수 있어서일 것이라 상상하거나 추측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상의 세계에 등장하는 열대 지방에서는 음식(바나나, 코코넛, 망고 등)이 사방에서 자라고, 춥지 않기 때문에 튼튼한 집을 지을 필요도, 옷을 껴입을 필요도 없다. 따라서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고, 그 결과 덜 부지런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이런 이야기―이 주장이 너무나 모욕적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적인 자리에서만 거론되곤 한다―에는 코코넛이 주로 등장한다. ‘열대 지방 사람들은 근로 윤리가 약하다’라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열대 지방에서는 ‘원주민’이 농작물을 적극적으로 키우거나,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야자나무 아래에 누워 코코넛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말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 _<본문 84~85쪽>
이처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면 그들의 빈곤이 근면성 부족 때문일 수가 없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이들이 부자 나라 국민보다 인생의 훨씬 더 긴 기간, 훨씬 더 오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많이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이 그만큼 높지 않아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성이 낮은 것은 교육 수준, 건강 등 노동자 개인의 능력이나 조건과 크게 상관이 없다. 노동력의 질은 전문직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생산성의 차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종에서 가난한 나라 노동자와 부자 나라 노동자의 개인적인 생산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_<본문 88~89쪽>
4장 멸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발효 멸치 소스의 가장 열렬한 팬에게 주는 상은 미국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멸치 소스를 마시는 사람들 아닌가?(웩, 멸치 소스를 마시다니!) 하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칵테일인 블러디 메리Bloody Mary(비록 헨리 8세의 딸이고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 언니인 영국 여왕 메리의 이름을 붙인 칵테일이지만)에는 발효 멸치 소스가 들어 있다. 다만 우스터 소스Worcester sauce에 숨어 있을 뿐이다. 영국인도 구운 치즈 토스트(치즈 토스티cheese toastie. ‘15장 향신료’ 참조)에 우스터 소스를 양껏 뿌려 먹는 걸 좋아하니 ‘변장한’ 발효 멸치 소스의 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멸치는 풍부한 맛뿐 아니라 한때 풍부한 부를 가져다주는 고마운 생선이기도 했다. 이 작은 생선은 19세기 중반 페루가 누린 경제적 번영의 원인이었다. 페루가 멸치를 수출해서 돈을 번 건 아니었다. 당시 페루는 바닷새의 구아노guano(마른 새똥)을 수출해서 국가적 번영을 누렸다. 구아노는 질산염과 인이 풍부하고 냄새가 그다지 역겹지 않아서 인기 높은 비료였을 뿐 아니라 화약의 핵심 재료인 질산칼륨이 들어 있어서 화약 제조에도 사용되었다.
페루의 구아노는 태평양 연안의 섬들에 모여 사는 새들인 가마우지와 부비booby(얼가니새)의 배설물이다. 이 새들의 주된 양식은 생선, 특히 칠레 남쪽에서부터 페루 북쪽을 잇는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의 영양소 풍부한 훔볼트 해류를 타고 이동하는 멸치들이다. _<본문 98~100쪽>
다시 말해 1차 상품의 주요 생산국이라는 위치는 쉽게 빼앗길 수 있다. 1차 상품이란 것 자체가 생산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화학 산업이 페루, 칠레, 과테말라, 인도 등 1차 상품에 주로 의존하던 나라들에 끼친 타격은 베트남이 브라질, 콜롬비아를 비롯한 커피 생산국들에 끼친 타격과 비교할 수 없다. 천연자원을 대체할 인공 물질 제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제 체제는 기존 시장(예를 들어 구아노 시장)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이 경우 화학 비료 시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과 다름없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아노 퇴적층이나 연지 ‘딱정벌레’ 또는 인디고 식물이 없었던 독일인은 화학적 대체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런 결여를 극복했다. _<본문 105~106쪽>
5장 새우
하지만 곤충을 먹는 데 혐오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프론이나 슈림프 또는 바닷가재나 민물가재 등 그들의 친척까지 굉장히 만족스럽게 잘만 먹는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면 묘한 일이다. 곤충을 피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특정 음식을 기피하는 심리 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갑각류와 곤충은 둘 다 촉수와 외골격, 분절된 몸체, 그리고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절지동물이다(독자들이나 나 같은 비전문가는 이들을 벌레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갑각류는 먹고 곤충은 못 먹겠다는 걸까?
곤충의 이름을 바꾸면 더 많은 사람이 먹게 될까? 귀뚜라미는 ‘덤불새우’, 메뚜기는 ‘들가재’로 부르면 어떨까? _<본문 113쪽>
한 나라의 생산 능력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는 데는 적어도 20여 년이 걸린다. 이 말은 자유 무역 환경에서는 이런 변화가 생길 수 없다는 뜻이다. 자유 무역 체제에서는 신생 산업 부문의 비효율적인 초보 기업들이 우월하고 규모가 큰 외국 경쟁 업체들에 순식간에 전멸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뒤처진 나라에서 미성숙한 제조업체들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유치산업론infant industry argument’이라 부른다. 경제 발달과 아동의 성장 발달을 비슷하게 보는 관점에서 나온 용어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노동 시장에서 어른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랄 때까지 그들을 보호한다. 유치산업론에서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의 정부가 자국의 신생 산업 업체들이 생산 능력을 길러 우월한 외국 기업들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고 양성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자유 무역의 본고장이라는 현재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영국과 미국은 경제 발전 초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보호주의 국가였다. _<본문 118~119쪽>
6장 국수
오르조/리조니는 작은 낱알 모양인데(글자 그대로 보리나 쌀을 의미한다) 뜨겁고 맑은 수프에 넣어서 먹는 경우가 많다. 그 음식이 내 앞에 놓인 순간 나는 밥을 국에 말아서 준 것인 줄 알았다. 한국에서도 흔히 뜨거운 국(맑은 국이든 아니든)에 밥을 말아 함께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방금 먹은 음식이 ‘국수’(파스타)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만드는 데 쓰이는 거의 유일한 탄수화물원은 밀 한 가지뿐이다(‘1장 도토리’ 참조). 그러나 모양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20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파스타가 만들어진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줄 모양이나 납작한 끈 모양의 파스타도 있지만 튜브, 고리, 나선/나사, 나비, 사람 귀, 조개, 낱알, 공, 속을 채운 만두, 판 등을 망라한 온갖 모양의 파스타가 있다(나는 아직 먹어 보지 못했지만 마차 바퀴, 올리브 잎, 팽이, 심지어 라디에이터 모양까지 있다고 한다). _<본문 129~130쪽>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성공 스토리가 영웅적인 기업가 세계의 몇 안 되는 예외 사례 아닌가 하고 되묻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가 그에 대한 대답이다.
우선 현대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성공을 거둔 한국 기업들이 많다. 설탕 정제와 의류 사업으로 시작한 삼성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와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되었고, 화장품과 치약 사업으로 출발한 LG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했다.
널리 알려진 일본의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 MNC들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토요타는 단순한 방직 기계를 만드는 기업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되었고, 운송 회사에서 시작한 미쓰비시는 조선업에서 원자력 발전소, 전자, 자동차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모든 기업은 뛰어난 개인의 능력, 기업적 노력, ‘기업 내 교차 보조’, 정부 지원, 그리고 소비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런 변신을 할 수 있었다.
제지 공장으로 시작했지만 성장을 거듭해 한때 세계 휴대전화 산업을 리드한 전력이 있고, 이제는 네트워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산의 주역이 된 핀란드의 대기업 노키아도 위 기업들과 비슷한 성장 역사를 거쳤다. (…)
자국의 ‘자유 기업’ 체제에 대해 높은 긍지를 보이고 영웅적인 기업가를 늘 칭송해 마지않는 미국마저 현대 경제에서 ‘집단적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통해 발전한 나라다. _<본문 137~138쪽>
7장 당근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한 (수많은) 것들 중 하나가 당근carrot 케이크였다. 당근은 김치를 만들 때 양념으로 쓰거나 양파, 감자와 함께 끓여서 일본식 카레를 만들거나 각종 채소와 볶아서 잡채를 만들거나 샐러드로 먹는 재료지 케이크 같은 달콤한 음식에 들어가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이제 당근 케이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 중 하나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흠… 얼토당토않은 음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_<본문 142쪽>
특허는 정부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개발자에게 일정 기간 동안 그 기술에 대한 독점권을 허용하는 대신 그 기술을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특허라는 영어 단어 patent에는 ‘보여 주어서 명백하게 알도록 하는’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식 향상의 효과만을 따지면 특허 제도는 양날의 칼이다. 충분히 새로운 지식이라고 인정되는 지식을 창출해 낸 사람에게 그 지식을 일정 기간 동안(요즘은 보통 20년. 과거에는 이보다 더 짧았다. 이 문제는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새 지식의 창조를 촉진하고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기간 동안 그 새 지식의 개발자는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장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용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특허 제도는 독점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이 그 새 지식을 이용해 또 다른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내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새 지식의 창조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문제는 지식 생산에 가장 중요한 재료가 지식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연관 지식의 많은 수가 특허의 보호를 받고 있으면 새로운 지식을 개발하는 비용이 비싸진다. 황금쌀이 좋은 예다. 이 문제를 나는 ‘맞물린 특허interlocking patents’라고 부르고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특허 덤불patent thicket’이라 부른다. _<본문 148~149쪽>
8장 소고기
소고기 추출물로 큰 성공을 맛본 렘코는 또 하나의 세계적인 히트 상품을 내놓았다. 바로 1873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콘비프corn beef 또는 콘드비프corned beef 통조림이다.
소고기를 소금에 절여 보존한 콘비프는 유럽에서 적어도 수백 년 동안 먹어 오던 식품이었다. 그러나 렘코는 값싼 재료와 보존 기술을 결합해서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이 음식을 사 먹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렴한 우루과이 소고기 중에서도 원래 ‘정식’ 레시피에서 사용하는 양지머리 대신 더 싼 부위의 고기를 갈아서(아마 더 싼 부위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갈았을 것이다) 만들었기 때문에 생산비가 더 싸졌다. 렘코는 통조림 제조 방식을 사용해 원래의 소금 절임(염장) 방식보다 소고기를 훨씬 더 오래 보존해 더 먼 곳까지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옥소 큐브와 콘비프 통조림은 “이전까지는 육류가 사치품이었던 유럽 전역의 노동자 계급에 없어서는 안 될 주된 식료품이 되었다. _<본문 163쪽>
콘비프는 콘, 즉 요즘 사람들이 대부분 옥수수라고 생각하는 곡물이 들어가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콘이 옥수수만을 의미하게 된 것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미국식 영어에서다. 더 오래된 영국식 영어에서 콘은 옥수수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곡물’을 의미했다. ‘콘비프’라는 이름은 곡물 알갱이처럼 보이는 굵은 소금을 쓰던 당시의 저장 방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_<본문 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