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소중한 가치가 반짝반짝 빛나기를!
크기가 작거나 값어치가 나가지 않아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다. 분명 쓰임이 있어서 만들어진 것일 텐데, 하찮은 취급을 당하는 걸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그 물건의 역할이 눈에 띌 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역할이 희미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분이 없는 전체는 존재할 수 없듯이 아무리 역할이 적은 물건이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 그 물건의 가치마저 낮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66년에 만들어진 십 원짜리 동전 ‘십조 어르신’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고, 화폐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동전들 사이에서조차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긴 오백 원짜리도 아니고 십 원짜리 동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십조 어르신은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냈다. 떡볶이는 먹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어깨가 축 늘어진 어린이들 앞에 혜성처럼 나타나 소원을 이루어 준 것이다. 이 장면을 읽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영화에서 슈퍼맨이 등장해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할 때처럼 머릿속에 ‘딴따다안’ 하고 비지엠(BGM)이 좍 깔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십조 어르신은 허구한 날 ‘옛날엔 말이야’로 시작하는 소싯적 이야기를 늘어놓기 바쁜 동전이었다. 대부분의 동전들이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어린 동전 ‘오롱이’만큼은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성격도 소심하고, 남들 앞에 잘 나서지도 못하고, 이렇다 할 꿈도 없던 오롱이였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배려할 줄 아는 태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뿐인가? 호기심과 모험심이 없었다면 행운 슈퍼 금전 등록기 안에서 과감히 탈출을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는 쉽게 꿈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꿈과 가치를 발견해 간다.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 각자의 소중한 가치가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았던 쨍그랑 대모험
오백 원짜리 동전 오롱이가 바깥세상으로 나가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자, 십조 어르신은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도 더럭 겁이 났다. 자기가 살아온 세상과 어린 오롱이가 살아갈 세상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롱이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넓적한 등을 내밀었을 때, 어르신은 그만 오롱이의 등에 폴짝 업히고 말았다. 어스름한 새벽빛 아래 바깥 공기를 가르며 오롱이와 어르신은 세상을 향해 구르고 또 굴렀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길거리, 버스 안, 웬 남자의 주머니 속, 학교 앞, 전통 시장 등을 오가는 사이, 두 동전은 엎치락뒤치락 서로를 배에 깔고 엎어져 보호하면서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갔다.
십조 어르신의 풍부한 경험이 오롱이로 하여금 바깥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도록 영감을 주었다면, 오롱이의 용기와 결단력은 510원의 모험이 계속 이어지게 만들었다. 10원짜리 동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때가 오더라도 오롱이처럼 어린 동전에게 꿈을 심어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긴 십조 어르신. 그리고 어르신 덕분에 큰 세상을 경험하고 누군가의 꿈과 자신의 꿈을 함께 이룰 수 있어 행복한 오롱이. 두 동전은 결코 두렵거나 외롭지 않았다.
웬만한 일들이 비대면으로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고 세대 간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요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신나는 모험을 즐기는 오롱이와 어르신을 보고 있자니 괜히 코끝이 찡해 온다. 동전이 동전을 등에 업고서 점프를 하고, 외모 타령을 하는가 하면, 눈물 콧물을 흘리는 모습에 귀엽기도 했다가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리는 건 왜일까? 아무래도 오롱이와 어르신의 모험이 끝나지 않은 듯한데, 다음 목적지는 과연 어디가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혼자가 아니니 어떤 모험이든 꽤 신나지 않을까? 짤랑짤랑, 쨍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