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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평면표지(2D 앞표지)

인생여정


  • ISBN-13
    979-11-89805-20-3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국제문학사 / 국제문학사
  • 정가
    10,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2-05-2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장영희
  • 번역
    -
  • 메인주제어
    인물, 문학, 문학연구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자서전 #80세 시인등단 #고교졸업 #인물, 문학, 문학연구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195 mm, 210 Page

책소개

나이 80세에 자서전을 쓴 충청도 아지매 장영희 할머니,
초등학교밖에 못 다는 서러움을 70세에 중학교 입학,73세에 고등학교 입학, 77세에 시인으로 등단, 80세에 자서전 에세이집 출간하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자마자 6,25 전쟁이 터지고, 피난길에서 온갖 고난을 겪은 후 홍역을 앓다가 죽다 살아난 후 다시 초등학교를 다니며 시골길 심부름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육상선수가 되어 운동회 때마다 대표로 출전하고, 군민체육대회에 선수로 출전하고,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일하고 돈벌어서 아버지에게 송아지를 사주어 살림밑천을 만들어주는 억척소녀였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취직하고, 악착같이 노력하여 평생의 한이었던 공부를 하고, 시인으로 등단하고, 자서전을 내게 되었다.

목차

목 차

 

작가의 말 ………………………………………………………………………… 3

추천의 글 ………………………………………………………………………… 4 

  사진 모음 ……………………………………………………………………… 209

1. 세월 좀 잡아주소  

 

들꽃처럼…………………………12

봄이 오는 소리…………………13

세월 좀 잡아 주소……………14

노을 지는 인생…………………15

사랑마차…………………………16

통일아 빨리 오라………………17

나라사랑…………………………18

영원히 빛나소서………………19

두견새……………………………20

인생의 길목에서………………21

가는 세월………………………22

수락산…………………………23

나의 날개………………………24

 

 

 

2.  인 생 여 정

1.  나의 유년시절 

2.  하고 싶은 공부 

3.  외할머니 회갑 날 

4.  피난민 

5.  인민군 

6.  장마철 

7.  숫돌고개 

8.  밤길 

9.  우리 부녀

11. 피난살이 

11. 외가 동네

12. 막내 삼촌

13. 승구네 문간방 

14. 어린 시절 

15. 방죽말 겨울 피난 

16. 우리 아버지 삼형제 

17. 가난살이 우리 어머니

18. 입학식 

19. 교실 

20. 좁은 교실 

21.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 

22.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 소녀

23. 나날이 깊어만 가는 병

24. 아버지의 심부름

25. 집 나와 뛰는 소녀

26. 의사 선생님

27. 동행

28. 항상 내 마음을 달래주는

29. 체육대회

30. 달리기

31. 릴레이 선수

32.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

33. 우리 집은 학교에서

34. 풀밭에 누워

35. 군민체육대회

36. 군단이

37. 차비

38. 껌 장사

39. 초등학교 마지막 계절

40. 수수밭에 새보기

41. 달그림자

42. 군대 갔던 오빠

43. 우리 오빠

44. 아버지 병환

45. 약국

46. 어머니 목소리

47. 초등학교 졸업

48. 집에서 살림살이

49. 친구 정순

50. 친구 따라

51. 청주에서

52. 추석에 고향으로

53. 가을

54. 친구와 아산

55. 송아지 값 벌다

56. 장 구경

57. 담배 밭

58. 집에 도착

59. 여름방학에

60. 서울 가는 버스

61. 북아현동 전차

62. 미동초등학교

63. 주소지와 문패

64. 딸의 손주를 키워

65. 퇴근 시간

66. 다음 날 아버지는

67. 옆집 온전 엄마

68. 서울에서 일하게 되니

69. 온전 네 외갓집

70. 할아버지

71. 언니 집으로

72. 우리 형부

73. 전매청

74. 시장구경

75. 고모님

76. 동동구리무

77. 저녁 준비

78. 직장에서 오신 형부

79. 일주일

80. 기쁨

81. 우리 집

82. 일주일 후

83. 저녁에 퇴근 하신 두 분

84. 12월 1일

85. 공장

86. 어린애가 일 잘한다

87. 아리랑 부서

88. 열심히 작업

89. 월급날

90. 언니와 함께 시장구경

91. 언니 집에서 탈출을

92. 도둑

93. 고향길이 그리워

94. 어느 날

95. 정권이 바뀐다

96. 군인 유가족

97. 파주 구경

98. 반가운 큰아버지 가족들

99.  군인세탁소

100. 세탁공장 

101. 어린 조카

102. 시민회관

103. 말썽 많은 조카

104. 맞선

105. 군자동

106. 첫 아들 

107. 저녁에 들어온 남편

108. 이혼 생각

109. 둘째 임신

110. 시금치 장사

111. 연립주택 계약

112. 내 힘으로 집을 사다

113. 계약서

114. 남편! 놀랬지?

115. 우리는 십년 살이 셋방

116. 드디어 이사

117. 큰 아이 학교 보내고

118. 왕자물산공장

119. 셋째 아이 임신

120. 산부인과

121. 맹장 터진 남편

122. 아이 혼자 보낸 소풍

123. 친정엄마

124. 남편 퇴원

125. 산부인과 

126. 친정어머니

127. 둘째 입학

128. 우리 수준에 맞는 집

129. 비가 너무 많이 와

130. 장마 물

131. 재건축

132. 집을 매매하고

133. 둘째 아들의 결혼

134. 작은 아들 살집

135. 기가 막혀서

136. 아들 회복

137. 그런 어느 날

138. 작은 아들 가게 차려

139. 우리 집 3층 전세

140. 작은 아들

141. 큰 아들

142. 사진관

143. 큰아들 이력서

144. 어느 날 갑자기

145. 나의 예쁜 딸

146. 이제는 나의 생

147. 청암학교

148. 배정된 교실

149. 시화전에 출품한 시 한편 

150. 2학년

151. 두 번째 시화전

152. 정보산업고등학교

153.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154. 친구 연락

155. 방광암이라고?

156. 영감님

157. 어느 날 갑자기

158. 엎친 데 덮치고 

159. 큰아들이 아파트를 팔고

160. 우리의 만남

161. 장동규 교수

162. 백병원에서

163. 수술 과정이 두 번

164. 교통사고

165. 애어른 손자 

본문인용

세월 좀 잡아 주소

 

 

사는 게 뭐길 래

뒤도 안보고 앞만 보고 살다보니

어느덧 세월 속에

인생 칠십이 넘었네

내 나이 칠십 넘어

청암교정에 들어서니

어린 시절 내 또래 친구들

여기 다 모여 있소

 

벗님들이시여

우리 가는 세월 잡아두고

쉬었다 가세.

모든 삶 뜬구름 속에 실어 보내고

우리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 가세.

 

-청암학교 시화전 출품 작-

노을 지는 인생

 

 

아침해살에 희망을 싣고

그 상처 아픔도 흐르는 세월에

새겨 엮어서 보내리라

 

멋지게 살고파 몸부림 쳐봐도

그렇게 얼룩이 져버렸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어느 사이에 노을 진 석양에

해오라기만 반짝이는구나

 

하늘에는 별빛이 쏟아지고

거침없이 물에 흘러가듯이

나의 인생도 이렇게 흘러가네.

 

- 청암학교 시화전 출품작 -

사랑마차

 

 

인생길 돌고 돌아온 나의 행복

당신이 내 곁에 있어주어 감사하고

사랑스런 아들 며느리들 고맙고

딸 사위도 예쁘게 살아주어 고맙고

예쁜 손자손녀 건강하게 잘들 자라주어 사랑스럽고

 

이만하면 만족한 삶을 살아온 이 행복을  

사랑마차에 가득 싣고

무지개 너머로 달려가리라.

 

- 국제문학 22호 수록 -

통일아 빨리 오라

 

 

어느 누가 

반 토막 내버렸나

이 강산 이 강토를

 

긴긴 세월 

한 맺힌 그 소원을 품고

그 날을 기다리며 살다 가신 선조들

 

언젠가는 

백두산 천지에 태극기 꽂아 놓고

임진강 나루터에 배 띄우고

 

너와 나 한 핏줄 한민족

얼싸 안고 춤을 추며

칠십년 맺힌 한을 풀자.

 

- 2021년 평화통일시화전 출품작 -

나라사랑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요?

애국선열들의 그 정신을

가슴깊이 새겨보면서 

얼마나 조국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아 !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선열들의 뜨거운 나라사랑 

숭고한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 

나라사랑 조국사랑 대한민국

길이길이 빛내리라 영원히

선열의 뜻을 가슴깊이 새기리라 .

영원히 빛나소서

 

 

애국선열들의 뜻을 

길이길이 본받아 

오늘은 어떠한 삶을 

꿈꾸고 살아갈까

온 민족이 함께 뭉치자 

 

애국선열들이 손을 잡고 외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려오는구나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뭉게구름에 묻혀 

둥실 떠오는 소리여

애국선열들이시여 

숭고한 정신이여

영원히 빛나소서.

두견새

 

 

봄바람이 볼을 스쳐오네

뒷동산에 보리 밭길은

시퍼렇게 돋아나오는데

두견새 울음 소리가 들려오네

 

아픈 사연 있는지

슬피 우는 두견새 소리

너는 누구를 기다리는지

나는 너의 울음소리에

내 마음에도 쓰라리구나

 

너와 나는 왠지 모르게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구나

그래도 나는 너를 알고 있다.

인생의 길목에서

 

 

우리 집 담장 밑에 감나무 한 그루

가지마다 파란 잎 사이로

날아와 앉은 참새들의 노랫소리

종알종알 새소리에 장단 맞춰서

지지배배 종알종알 거리네

 

지나던 길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감나무의 싱싱함에

모두들 고개를 올려다보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오늘따라 그 감나무가

푸릇푸릇한 싱그러움에

그만, 향이 흠뻑 젖어 버리네.

가는 세월

 

 

아침햇살에 희망을 싣고

그 상처도 아픔도 흐르는 세월에

새겨 엮어서 보내리라

 

멋지게 살고파 몸부림 쳐봐도

그렇게 얼룩이 저버렸네요.

 

한 치 앞도모르는 인생길에

어느 사이에 노을 진 석양은

해오라기만 반짝이는구나.

 

하늘에는 별빛이 쏟아지고

나의 인생도 이렇게 흘러가네

시냇물도 흐르고

내 인생도 흐르는구려.

수락산 

 

 

수락산 허리춤에

내려앉은 뭉게구름

해맑은 구름

이 구름을 몇 번이나 볼까

 

한해살이 남지 않은 

우리 학우들 세월을 벗기고 

배움을 찾아 들어온 

이 교정 멀지 않았네

 

배움에 소리 등 너머

오순도순 눈길 따라 

웃음소리 오고가는 정

친구들의 동공 깊은 눈빛에

은빛 꿈을 피우네.

나의 날개

 

 

가난해서 초등학교만 나왔던 나

늦은 나이에 중학교 진학했던 나

내 나이 칠십 넘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창공을 날고 싶어라

 

내 마음 어깨 죽지에 날개 달고

창공에로 날아 올라가고 싶은 심정

이 내 마음 어느 누가 알아주랴.

어머니! 저도 해냈어요!

 

살아계셨다면 

참 잘했다 칭찬을 하셨겠지만 

불현 듯 그리워 불러보네

내 마음 돛대 달고

창공에 올라가네.

 

 

묶음 개체입니다.  

 

 

2

 

인생여정

1. 나의 유년시절

 

 

나의 고향은 충북 음성군 금왕면이다. 

그 곳에서 오빠와 나, 남매가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순박한 농사꾼이셨다.

가난하지만 그런대로 거짓 없이 

정직하게 살아오시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오셨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오빠와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였다. 

나의 담임 선생님은 남자선생님이셨다. 

남자선생님이셨지만 섬세하고 예쁘고 잘생기신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떠오른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겨우 2개월 다니다가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이곳 저 곳으로 피난을 다니다보니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는데 

피난 간 곳에 정착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공산당들에 의해 반토막이 되어버린 이 나라를 보면 너무나 슬프다.  같은 민족끼리 갈라져서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언제나 합쳐진 통일이 이루어질 것인지,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그 전쟁으로 인하여 다 잃어버린 우리 집은 가난 때문에 공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그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하고 흘려보낸 한 많은 세월은 이렇게 노을에 젖어들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저녁하늘 붉은 노을이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나이 80이 되어 보니 저 노을이 가슴 저리도록 슬프다. 

 

 

 

2. 하고 싶은 공부

 

 

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피난민 생활이기에, 

환경에 적응해야하기에,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3. 외할머니 회갑 날

 

 

아버지 어머니는 피난 갈 준비를 다 하시면서 

“너는 집에서 놀아라.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거라.”

당부를 하시면서 외할머니의 회갑이라면서 나만 집에 놔두시고 떠나셨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 동생 네 식구가 떠나고 어린 나만 집에 남겨졌다.

저녁때가 될 즈음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동네의 이집 저집을 돌아다녀보았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르는 사람들만 보인다. 

온 동네가 서울에서 내려온 피난민만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피난민으로 아수라장이었다.

4. 피난민

 

 

내가 우리 집 마당에 서 있으려니 

하루 저녁 자고 떠나는 피난만이 가고 

다시 오고 

며칠 동안 피난민이 바뀌고 하더니 

다음에는 인민군이 몰려들어 왔다.

어린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자꾸만 바뀔까?

우리 집은 동네의 첫 집 길가 집이다보니 

피난민이나 인민군이 먼저 들어왔다.

 

 

5. 인민군

 

 

피난민보다 인민군이 더 무서웠다.

인민군은 무조건 먹을 쌀을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간장 된 장 고추장 가져오라 명령한다.

나는 시키는 대로 심부름을 해야 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맛비가 말도 못하게 쏟아졌다. 

6. 장마철

 

 

장맛비가 눈을 뜨기도 힘들게 주룩주룩 쏟아진다.

어린 인민군 오빠랑 부엌에서 저녁밥 짓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서 고개를 들고 얼핏 밖을 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나와 눈을 마주치니 입을 가리시고 손짓을 하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본 후 인민군 오빠의 심부름을 해준 후 잠시 화장실에 간다고 핑계를 대고 집에서 살짝 빠져나와 아버지를 만났다. 

나는 밥을 굶은 채로 아버지 등에 엎이어 밤새도록 숫돌고개를 넘었다.

7. 숫돌고개

 

 

아버지는 아는 집을 찾아 들어가셨다.

그 집 식구들은 모두 피난 보내고 할아버지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아버지가 입고 계신 무명옷은 나를 업고 밤새 걸으시면서 비를 맞으시며 땀에 흠뻑 젖었고, 이리 저리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진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입었던 옷을 찾아 주시며 갈아입으라고 하셨다. 나에게는 손녀가 입던 옷을 찾아 주셨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아침밥을 준비해주셨다. 그 밥이 꿀맛이었다. 

그 할아버지 덕분에 장마를 피했다. 

비가 그치면 가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캄캄한 밤중에 길을 나서는 우리 부녀에게는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지금까지 생각난다.

 

8. 밤길

 

 

한밤중에 나를 등에 업고 길을 가시는 아버지는 

“언년아”

하고 부르신다.

“아버지, 나 안자요. 걱정 마세요.” 

하고 대답을 했다.

아버지는 캄캄한 밤중에 나를 등에 업고 가시며 무서움에 온몸에 땀이 줄줄 흘리면서 나를 못 자게 깨우셨다. 

아버지도 캄캄한 밤중에 무서운데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서워할까 그래서 말을 붙이셨다고 말씀하셨다. 

 

 

9. 우리 부녀

 

 

밤을 새워 산을 넘고 돌고 돌아 외갓집을 찾아 갔다. 

어머니는 기다리다가 못해 외갓집을 나가 고모네 집으로 찾아갔다고 하신다. 고모님께서는 

“돌아다니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라.”

고 하셨다.

아버지는 나를 업고 외갓집에 맡겨놓고 어머니를 찾아나가 서로 헤매고 다녔다고 하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가 찾아다니다가 길이 엇갈리어 헤매고 찾아다녔다고 하셨다.

아랫동네에서 윗동네로 길이 엇갈리어서 헤매며 찾아다녔다고 하신다.

피난민들 사이에서 살아야하는 고생살이가 시작되어 날마다 울다보니 날 가는 줄도 모르게 흘러갔다. 그렇게 피난민 틈에서 살아가느라고 엄마의 등에 업힌 동생이 아픈지도 모르고 시간이 흘렀다. 결국 엄마 등에 업힌 동생은 비를 맞아 감기 들어 세상을 떠났다.

11. 피난살이

 

 

어린 동생은 6.25때 죽고 네 식구만 남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살이가 시작되었다.

피난민은 어디론가 다 떠났고 우리도 살던 동네로 돌아왔다. 우리 집은 온데간데없고 비행기가 폭격하여 폭파되고 물이 가득 찬 웅덩이만 보인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 어머니는 앞으로 어린 자식을 데리고 살아갈 일이 아득하다면서 울며, 울며 정든 고향을 버리고 외갓집으로 돌아갔다.

철없는 나는 

“왜 울지, 엄마 울지 마” 

여직까지 잘 살고 왜 울까 이해가 안 되었다.

 

 

11. 외가 동네

 

 

우선 

외삼촌 집으로 찾아간 우리 가족들.

가슴 아픈 마음으로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연하다면서 

눈물이 마를 새 없이 우시는 어머니 모습.

참으로 6.25가 너무나 싫었다. 

12.  막내 삼촌

 

 

우리 막내 삼촌은 

오빠와 함께 의용군에 입대했다.

삼촌의 소식은 지금까지도 모른다. 

함께 나간 오빠는 돌아왔다.

아버지는 

삼촌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면서 

한평생을 사셨다.

이제나 저제나 동생을 기다리며 

한 세상을 살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13. 승구네 문간방

 

 

삼촌 집에서 한 보름을 살던 중에 아버지는 아침 일찍 나가시더니 승구 아버지를 만나 사정이야기를 하셨다. 승구네 문간방이 비었으니 거기서 우선 살아보라 하시었다. 

우리 가족은 보따리만 챙겨가지고 승구네 문간방으로 이사하여 문간방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린 내게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들.

그 어려운 시절, 승구 형수가 어린 시동생에게 감자를 캐다 밥솥에 쪄주면서 먹고 놀라고 하며 주시면 승구는 인정이 많아 감자를 반으로 쪼개어 내게 나누어 주었다. 지금도 그 시절 그 기억이 생생하다. 

 

 

14. 어린 시절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어린 시절. 

철없는 나는 승구 뒤에 졸랑거리며 따라다닌다.

승구는 나를 잘 데리고 놀아주었다. 

15. 방죽말 겨울 피난

 

 

어느 날인지 잘 모르지만 

우리 집은 방죽말로 이사를 했다.

방죽말로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겨울 피난을 가야만 했다. 

홍역에 걸려 한 걸음도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어 자리에 누웠다. 마을에서 네 명이 홍역을 앓았는데 다 죽고 나만 살아남았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온 동네가 돌림병으로 목숨이 쓸려갔다.

아들은 군대 보내고 남은 자식이라곤 어린 딸 하나 남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남은 딸이 홍역에 걸려 죽을까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나는 홍역을 앓으면서 대문 앞에 앉아있으려니 눈앞에 봄눈이 펄펄 내리고 피난민들이 오고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저 피난민들의 행렬에 합류했다. 

우리 가족은 별안간에 오빠는 군대에 가고, 동생은 죽고, 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세 식구만 남게 되었다.  

16. 우리 아버지 삼형제

 

 

우리 아버지의 형제는 삼형제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형님을 부모처럼 따라다니며 살았다. 

삼형제가 함께 살아가다가 형님은 돈 벌어 온다고 집을 나가셨고, 동생과 의지하며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의용군에 입대한 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어 평생을 동생을 기다리며 살아가신 아버지.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큰아버지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된다.  

 

 

17. 가난살이 우리 어머니

 

 

우리 집은 가난하여 이웃 집 일들을 도와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밥을 지어 먹고 이웃집 일 도와주고 돌아오신 어머니.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아버지와 함께 의논을 하시더니 어서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하신다. 

“엄마, 왜?”

“내일이 쌍봉학교 입학식 날이다. 

 너도 학교에 보내주려고.”

어머니 말씀에 정말이지 나는 뛸 듯이 기뻐서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18.  입학식

 

 

다음날,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어머니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했다.

운동장에는 나와 비슷비슷한 또래들이 모였다. 

또래들이 모인 운동장에서 일주일 동안 담임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를 알려주셨다. 

일주일이 지나니 우리들을 교실로 안내해주셨다. 

 

 

19. 교실

 

 

교실 바닥에는 가마니가 깔려 있었다. 

2학년, 3학년, 4학년까지 교실바닥에 가마니때기를 깔아놓고, 학생을 모집한 것이다. 

5학년, 6학년 교실만 책상과 걸상에 앉아 배웠다.  

철없는 어린 시절, 학교에 보내 주신 것만도 마음 깊이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20. 좁은 교실

 

 

교실바닥에 앉아 서로 밀고 당기며 글씨를 쓴다. 글씨를 쓰려고 하면 옆에서 툭치는 바람에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되니 우리들은 서로 싸워가며 배운다. 선생님은 칠판을 회초리로 두드리면서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신다. 

“떠드는 어린이는 회초리로 매 열대를 맞는다.”

하고 칠판을 치시면 그 순간은 조용해진다. 그러나 금방 수근 거린다. 어이가 없으신 선생님은 우리들과 함께 따라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이놈들! 회초리도 안 무서워?”

하시며 칠판을 두드리신다.

우리들은 금방 깔깔 한바탕 웃는다.

 

21.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

 

 

벌써 이학년이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버지는 배가 너무 아프셔서 일어나지 못하신다.

혼자서는 꼼짝도 못한 채 물 한모금도 잡숫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실까봐 걱정되어 따라 운다.

“죽지 마! 아버지!”

하면 아버지는

“나 안 죽으니까 걱정 마.”

하며 같이 운다.

나는 너무 아프셔서 참을 수 없어서 우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울었고, 아버지는 울고 있는 어린 나를 보시며 함께 우셨다. 

22.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 소녀

 

 

아버지는 아무 것도 안 잡수시고 누워서 식은땀만 흘리신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쌀 한줌을 들기름에 달달볶다가 쌀뜨물과 함께 마냥 끓여서 박박 문지르고 조리에 바쳐 미음을 만든 후 수저로 떠서 아버지에게 먹여드렸더니 받아 잡수신다.  

그 미음을 잡수시고 하시는 말씀이

“속이 좀 가라앉는다. 저 어린 것이 애비 병간호를 할 줄 아네, 이렇게 너의 효도를 받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 아프지 말고 오래 살기만 하세요. 내가 얼른 자라서 돈 벌어 아버지 좋아하시는 것 많이 사 드릴께, 걱정하지 말고 사세요.”

23. 나날이 깊어만 가는 병

 

 

그 시절, 가난했던 우리 집.

아버지가 배 아프다하시면 어머니는 소다만 구입하여 드렸다. 

아버지가 항상 하신 말씀이 일하러 나가셨다가 점심 잡수신 것이 체기가 생겨 그렇다고 속앓이 병이라 하셨다. 

어느 날인지 모르게 아버지는 아편에 중독되셨다. 뱃병이 나면 양귀비 고운 덩어리 구입해 녹여서 주사기에 넣어 혈관에 놓기 시작 하셨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가 맞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버지는 그것을 맞으시고 조용히 한 잠을 주무시고 일어나면 진지도 잘 잡수시고 하셨지만 아편기가 떨어지면 도로 아파 못 견디어 또 맞곤 하셨다. 

나중에는 본인이 ‘이제는 한계에 온 것 같다’고 하시며, 스스로 노력하여 진통제 약으로 돌리시는데 일 년 세월이나 걸리셨다고 했다. 

24. 아버지의 심부름

 

 

항상 뛰어 다니던 지난 세월.

잠을 자다가도 어머니 소리에 깨어 벌떡 일어나 밤길을 달려가야 했다. 의사를 부르러 가야하는 나는 가기 싫어도 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집 사정을 잘 안다.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 계셔야만 했다. 아무 것도 없는 우리 집 형편이다. 

달밤에 읍내로 뛰어 가다가 냇가의 버드나무가지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았는데 내 눈에는 머리 풀어 산발한 귀신으로 보여서 소름이 돋아 무서움에 뛰기 시작한다. 우리 집에서 의사네 동네까지 2km가 되었다. 

 

 

25. 집 나와 뛰는 소녀

 

 

아버지 심부름으로 

언제나 뛰어다니다 보니 

뛰어다니기 일등, 달리기는 잘했다. 

동주 집까지 가면 

온 몸이 땀에 젖어 머릿속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동주 아버지는 의사이셨다. 

의사를 부르러 갈 때에 무서웠던 길이 

동주 아버지와 함께 걸으면 하나도 안 무서웠다.

 

 

26. 의사 선생님

 

 

동주 아버지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조금만 불편해도 열일 제처 놓고 

주사를 놓아주시는 분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편찮으시면 

그 어른을 모셔다가 진정제 주사를 맞는다.

그 분의 주사를 맞으면 

자리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나 식사도 하신다. 

 

 

27. 동행

 

 

의사 선생님과 동행을 하면 

무서운 마음이 싹 사라지고 

걸음걸이도 가벼워 잘 따라간다.

달빛에 따라오는 그림자가 없이 

버드나무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혼자 달밤에 걸음을 걸으며 

머리를 풀어 놓은 귀신이 춤을 추며 

막 집으로 뛰어 오는 모습으로 변한다.

나도 모르게 

“따라 오지 마!” 

소리치며 뛰기 시작하여 

20분 정도 뛰면 

동주네 집으로 달리기 일쑤다.

28. 항상 내 마음을 달래주는

 

 

그 어르신 말씀에 항상 

“저 어린 것이 고생 많다” 

하신 말씀.

나는 그 어르신이 무척이나 감사하였다.

아프신 아버지를 달래며 

“어서 일어나세요.

어린 딸 그만 고생시키고 빨리 회복하시기를 바란다.”

고 하셨다. 

욕심이 없으신 분.

동주 아버지는 항상 고마운 분으로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계시다. 

29. 체육대회

 

 

팔월 명절 다음은 언제나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운동회가 열리면 온 동네잔치가 열린다. 

우리들은 부모님들이 싸가지고 오는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마음껏 먹고서 

부자가 부럽지 않다고 하며 사랑을 잔뜩 받는다.

30. 달리기

 

 

달리기만큼은 언제나 자신이 있는 어린이. 

우리 반 여자 중에 맡아 놓고 일등 자신 있는 어린이.

운동회만큼은 우리 반 친구들이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며

“장영희! 장영희!”

하며 사기를 돋아준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며 기분이 좋아

“그래! 걱정 말아, 오늘 만큼은”

하면 친구들 응원이 운동장을 들썩이게 한다.

 

31. 릴레이 선수

 

 

서로서로 주고받는 팀.  

서로가 위하며, 잘들 뛰어라 하고 

신나게 응원하는 친구들.

그 날 만큼은 살맛나는 세상이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나한테 하는 모습이 

그 날 만큼은 열 아들 안 부럽다고 하셨다.

 

32.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

 

 

운동회 날 만큼은 아무리 아파도 잠깐 오셔서 나의 사기를 돋아주고 가신다.

우리 아버지는 그 날 만큼은 나에게 돈을 주시며, 

“너, 아이들한테 기죽지 말고 

 맛있는 것 서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고, 마음껏 즐겁게 놀아라!”

하셨다.

그럼 나는 

“걱정 마시고 집에 가셔서 계세요.”

하고 말한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33. 우리 집은 학교에서

 

 

우리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20분 거리, 

뛰어가면 13분 걸린다.

아마도 나는 성격이 급해서 

노상 뛰어 다니며 노는 버릇이 생겼다.

그날도 역시 친구들과 집에 가다가 

빨리들 모이자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 말씀에

“오늘은 밥 먹고, 외양간에 매놓은 소를 풀밭에 끌고 가서 풀 뜯기라.”

고 하셨다.

아이쿠, 친구들이랑 놀기로 약속했는데, 

참말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하였다.

34.  풀밭에 누워

 

 

소를 끌고 풀밭에 나가 

풀 뜯기다가 잠시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을바람에 흘러가는 저 구름을 보니 

내 마음은 벌써 파란 하늘이 되고, 

고운 구름이 되어 둥실둥실 여울지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소를 찾았더니 보이지가 않는다. 

소는 저 혼자 풀을 뜯어 먹다가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나는 혼자 소를 찾아 이리 저리 헤매고 다녔다. 

소는 저 혼자 집으로 가버린 것이었다.

해는 저물어 어둑어둑 한데 집에 들어가니 소가 외양간에 매여 있는데, 나는 그 순간 얼마나 감사한지, 그날부터 소와 함께 노는 버릇이 생겼다. 

35. 군민체육대회

 

 

가을이 되면 면민체육대회, 군민체육대회가 일 년에 한 번씩 열린다. 

우리 반에서는 언제든지 꼭 선수 대표로 내가 나간다. 

그날도 학교에 남아 달리기 연습하고 집에 오니 캄캄해졌다.

어머니는 

“계집애가 뜀박질만 잘하면 아무데도 쓸데가 없으니 이제 그만 뛰고 일찍 집에 오라.”

고 말씀을 한다.

“어미니,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며칠 연습하면 되요.” 

하고 방을 나온 나는 엄마가 야속했다.

36.  군단이

 

 

흰 런닝셔츠에 쌍봉이라는 마크를 달고 까만 팬티에 머리띠를 한 학교 단체 선수들이 아침 일찍 우리 선생님들과 함께 걸어가야 했다. 

체육선생님과 함께 걸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버스 타는 데까지 왔다.

그날은 음성 수봉초등학교까지 가야 해서 차비가 필요했다.

점심밥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갔는데 차비가 부족했다. 

37. 차비

 

 

“아버지, 차비 주세요.”

하니 

아버지는 똘똘 말아둔 지갑을 풀어 

일원짜리 지폐를 주셨다.

차비를 하고 남은 돈으로 

껌을 한 갑을 사서 보따리에 넣었다. 

이제 며칠 안 남은 가을 소풍 갈 때에 

아이들한테 껌을 팔 생각으로 

용돈 주신 것으로 껌을 사서 감추었다. 

 

 

서평

그 어느 날, 화창한 여름이었다.

황혼이 노을져가는 70살이란 그 나이, 그 전 같으면 받쳐주는 식사를 받아먹을 나이이지만, 등에는 무거워 보이는 등산 가방을 메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그 모습으로, 초취한 얼굴에 힘없이 걸어오는 장여사를 보고, “어디 갔다 오느냐?”고 손자손녀 봐주고 오느냐 했더니, “회장님, 저 이 나이에 공부하고 돌아온다.”고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다시 물었더니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공부를 하러 다니고 있어요.

나는 다시 깜짝 놀라면서도, “참 잘했어요. 하고 싶은 공부는 언제든지 해야지, 꿈을 꼭 이루세요.”

나는 길에서 용기가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고, 헤어져 오면서 생각했다.

꿈을 꾸는 자의 삶에는 ‘늦고’, ‘일찍’ 이란 단어가 필요 없다. 

내가 희망을 갖고 하고 싶을 때 도전하는 것이다.

내가 한마음 회장을 할 때였다.

나는 지금도 장영희 씨가 9조 중에서 7조 조장을 할 때를 기억하고 있다. 

조장들 중에 말이 없고, 말보다 행동을 먼저 하는 성품이고, 남의 말을 소중히 듣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역시 내가 존중했던 그 사람이었다.

연약해보여도 열심히 공부에는 즐겨한다. 천재도 노력파를 못 따라오고, 즐겨하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장영희 씨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이 외길을 걸어온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나를 두 번 놀라게 한다.

“선생님, 못 쓰는 글이지만 그런대로 죽기 전에 나 자신이 얼룩투성이로 걸어왔지만 그 길을 그런대로 부끄럼 없이 살아온 삶을 나의 자식들이나 손자손녀들에게 책 한권 남기고 싶어요.”

그 말에 

“그대로 그려보세요.”

라고 말했더니 대 수술을 하여서 몹시 아픈 상황인데도 그 아픔을 견디어가며 이렇게 책 한권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소중한 삶의 여정을 글로 남기게 된 장영희 작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아름답게 여물어가는 인생여정에서 값진 열매를 남기길 기대합니다.

 

조 규 옥

시인, 아동문학가, 수필가

국제문학문인협회 회장

사)한국아동문학회 부이사장

 

저자소개

저자 : 장영희
장 영 희

■ 1943년 충북 음성 출생
■ 22회 국제문학신인작가상 시 당선(2018)
■ 광진구청장 우수구민 표창장 수상(2019)
■ 제5회 국제문학 우수작품상 수상
■ 국제문학문인협회 회원
■ 서대문전매청 근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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