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39세린은 언제나 답답한 소리를 하는 엄마가 못마땅했다. 문득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구멍 난 양말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낡고 해져서 누가 봐도 초라하기만 한 모습. 버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버리고만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잠든 줄 알았던 세린이 벌떡 일어나더니 책꽂이에서 두툼한 책을 꺼내 들었다.
“만약에 말... 더보기
P. 56~57상점은 하얀색 가래떡을 길게 세워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처 건물들에 비해 유난히 높고 웅장해서, 옥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다른 집들은 성냥갑처럼 보일 것 같았다. 출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토리야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충분히 들어갈 만한 커다란 문이 있었다.
그들이 문 앞에 도착하자, 별다른 신호도 보내지 않았는데 저절로 ... 더보기
P. 61“갖고 계신 불행을 없애고 싶으신가요? 꿈꾸던 삶을 살아보시는 건 어떤가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요?”
듀로프는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일부러 잠시 시간을 끌었다.
“소개합니다. 저희 장마상점의 자랑, 도깨비 구슬입니다!”
곧이어 듀로프가 마술사처럼 현란한 동작으로 천을 걷었... 더보기
P. 121“저는 대체 어떤 걸 훔쳐야 할까요? 여기서 몇 년이나 책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도깨비들이 훔쳐오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훔쳐오고 싶어요.”
도깨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세린을 올려다보았다. 세린은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펜 끝을 잉크통에 담갔다가 뺐지만, 아무것도 적을 수가 ... 더보기
P. 160“저것들은 모두 자기만의 계절을 기다리고 있죠.”
세린이 포포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자기만의 계절이요?”
포포는 차를 한 모금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꽃과 나무에는 자기만의 계절이 있답니다. 어떤 날에는 화사하게 피어나지만, 늦은 여름이나 가을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는 나... 더보기
P. 174~175잇샤는 거의 엉겨 붙다시피 한 나무들 사이를 약 올리듯 지나다니며 그들의 화를 돋웠다. 나무뿌리 아래를 지날 때는 연체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미끄러지듯 통과하기도 했다. 공격을 피하는 잇샤보다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세린이 더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세린은 억지로 ... 더보기
P. 264“아저씨도 원하는 게 있나요?”
“물론이지.”
노인은 아직도 열띤 토론 중인 사람들을 어깨너머로 슬쩍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세린의 눈망울이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얻고자 했던 건 자네와 같은 젊음이었어.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자네에겐 추억이... 더보기
P. 297“잇샤는 먹는 것만 밝히는 멍청한 고양이가 아니야.”
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뒤에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서 있었다. 분명 자신이 던진 판자 조각에 맞고 쓰러져 있어야 할 세린이 멀쩡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판자 조각이 정확히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너, 어떻게….”
세린은 그... 더보기
P. 316“아….”
세린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침부터 무섭게 쏟아져 내리며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멈추고, 어느새 시커먼 먹구름이 걷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어김없이 무지개가 떠 있었다.
세린은 문득 어느 상점과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남학생과의 약속 때문인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