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지극히 사적인 한 사람의 상실과 회복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름 모를 당신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바이러스가 우리를 위협한다면, 혹은 당신과 내가 늙는다면 언젠가는 만나야 할 절망과 희망 사이 그 어디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서 감추고 있던 질병과 노년에 대한 편견과 불안을 드러나게 하는 기폭제였을 뿐이다. -9~10쪽
확진자로 낙인찍힌 후,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은 동네 사람들에게 감시를 당했다. 엄마의 움직임들은 재판대에 올려졌고 엄마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간대와 길로는 다니지 말라는 판결을 받은 듯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엄마가 안락동 사람들에게 ‘마녀재판’을 받은 것만 같았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의 작은 움직임마저 불길한 행동으로 보았고 엄마로 인해 공동체의 안전이 파괴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47쪽
누군가 엄마에게 ‘코로나19 완치자’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했다. 엄마가 진정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으로부터 해방된 완치자일까. 엄마는 정말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53쪽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면 딱히 나타나는 질병은 없지만, 엄마는 분명 코로나19 후유증을 겪고 있다. 엄마는 여전히 몸과 마음을 다해 이름 모를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그리고 더딘 걸음이지만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루하루 애쓰며 살아가는 ‘회복자’이다. -54쪽
엄마도 많이 힘들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혼란스럽고 불안하지? 근데 나도 그렇다, 엄마? 그러니까 우리 둘 다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오늘만 살면 어때? 내일의 돈 걱정, 내일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오늘 누릴 수 있는 엄마와 나의 시간을 우울하게 써버리는 게 너무 아깝잖아요. 그리고 엄마, 아파도 돼! 아파도 행복할 수 있어. 또 다른 질병이 찾아오면 새로 온 심술궂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살살 달래 가며 살아가 보자. 엄마 몸, 70년이나 애쓰며 살았잖아. 아픈 게 당연하고, 쉬고 싶어서 아픈 것일 수도 있으니 탓하지 말고, 원망도 말고, 엄마가 아픈 건 잘못이 아니니까 아프다고 미안해하지 말아요. -77쪽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코로나19 회복기를 지나고 있는 엄마를 보듬는 중이다. 유머와 접촉이 담긴 가족 간 소통이 엄마에게 힘이 되는 보양식이자 마음의 치유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엄마가 일상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행복 회로’를 가동하는 시간이 더 늘어가기를 기도한다. -94쪽
내게 장보기를 부탁하는 일이 잦아지자 세 분 부모님은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늙으니 이런 사소한 일로 자식을 귀찮게 한다.”는 한탄과 푸념도 매번 덧붙였다. 처음에는 소소한 물건값은 내가 결제하고 돈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와 시부모님 모두 달가워하지 않았다.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미안한데 경제적 부담까지 지우는 부모가 되기 싫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당하게 쇼핑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 세 분에게는 오히려 자존심을 세우고 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덜게 하는 길이었다. 난 단지 구매를 대행하는 업무만 하면 될 뿐, 어른들이 누릴 ‘내돈내산’ 즐거움을 뺏을 자격은 없다. 장보기 심부름 후 가끔 잔돈이 남으면 나는 “이건 제 용돈 할게요. 남은 돈으로 며칠 동안 먹고 싶었던 조각 케이크 사 먹어야겠어요!”라고 없는 애교를 짜내기도 한다. 서로 귀찮거나 불편할 수 있는 쇼핑 시간이 즐거운 거래로 변하는 순간이다. 111쪽
한동안 엄마를 돌보는 일상으로 지쳐있던 나를 일으킨 것도 걷기의 힘이었다. 엄마의 회복에 속도가 붙어 혼자서 일주일을 거뜬히 보낼 수 있게 되자 나도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나의 걷기는 엄마의 걷기와는 조금 다르다. 엄마의 걷기는 일상 회복을 위해 좋은 습관을 만들고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나의 걷기는 기존의 내 생활과 돌봄 노동 사이를 오가며 긴장한 몸에서 힘을 빼고 가슴에 뭉쳐있던 응어리를 풀기 위한 움직임이다. -117~118쪽
엄마의 노년기는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엄마에게 노동하지 않는 지금이 권태롭고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가만히 멈추어 자신을 보살피고 배려할 기회라고 이제는 말해주어야겠다. 일하는 법을 몸으로 터득하고 마음에 길들였듯이 잘 쉬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첫 출근을 하던 나에게 엄마는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타인과 어울려 일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자기를 돌보는 기술들을 하나씩 알려줘야 한다. 고요함 속에서 명상에 잠기기,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목욕 즐기기, 좋아하는 음악에 흠뻑 빠져보기 등등. 그중 최고급 기술인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는 처방을 엄마가 받아들이는 날이 온다면 모녀가 함께 진정한 휴식의 맛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124~125쪽
엄마가 혹은 내가 더 나이 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겁내지 않기 위해, 노화를 반기지는 않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이기 위해 자세를 고쳐 앉을 필요를 느꼈다. 늙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노년의 일상을 그려본 적 없기에 단단히 채비하지 못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137쪽
그러나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안락한 노후가 아니다. 축 처진 피부와 굽은 관절들은 얼굴과 체형을 바꿔놓아 아무리 예쁘고 비싼 옷을 입어도 예전처럼 빛나지 않는다. 일하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뭐든지 참아 버릇하다 보니 아픈 것도 나중으로 다 밀렸는지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다 하는 순간, 다양한 증상들이 베이비부머 세대의 몸 구석구석에 찾아든다. -141~142쪽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듯 늙어가는 몸이 비정상이고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라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환자’란 얘기다.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 지식을 가진 이라도 끝내는 나이 듦과 죽음을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환자면 또 어떻단 말인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마흔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병원을 한 번도 찾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일 년을 보낸 적이 있던가.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병을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아픈 몸이 정상이고 아프지 않은 몸이 비정상인 셈이다. 늙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153쪽
노년의 운동, 노년의 취미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과 나의 능력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견주는 일,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동작이라면 기꺼이 생활 속 도구나 기구에 기대어 나의 능력치를 조절하는 과정, 속도나 횟수에 집착하지 않고 나만의 호흡을 찾아 몸의 중심을 잡고 마음을 집중시켜 나가는 시간이 나이 들어가는 우리에겐 필요하다. -160쪽
남편과 나는 요즘 새로운 작당 모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의 신념과는 다르게 적금을 들어 목돈을 마련하기로 마음먹었다. 60대에 떠날 모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남편이 직장에서 은퇴하는 60대가 되면 그동안 여행하면서 다시 들르고 싶었던 장소를 찾아 ‘한 달 살기’를 해볼 작정이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일을 노년기에 한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노인이 되어서도 용기를 내어 도전할 일을 미리 만들어둔다면 미래가 불안해서 떨리기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의 시간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165쪽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부모의 걸음걸이를 보며 생각한다. 내 다리와 허리도 언젠가 늙어서 걸음걸이로는 나의 건재함을 말할 수 없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잡을 수 있을까? 어머니처럼 서글픈 마음이 들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내다 낡아버린 나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당당하게 주위 사람과 여러 도구의 도움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아기가 첫걸음마를 시작하면 어른은 당연히 자신의 손을 뻗거나 보행기를 내밀어 돕는다. 긴 생애를 살며 하루에 수백 보, 수천 보를 성실히 걸었던 나의 다리가 이제 지쳤다고 신호를 보낸다면 그때도 기댈 무언가를 내밀어 돕는 일이 당연하기를 바란다. -173쪽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질병이 평온한 일상을 덮칠까 봐 겁을 먹고 그럴수록 먹거리와 운동, 생활 습관을 관리하며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 도대체 건강한 삶이란 무엇일까? 실체가 있긴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사전에는 건강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네 생에서 과연 정신적으로 아무 걱정이 없고 육체적으로도 불편한 부분이 전혀 없는 순간을 꼽을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건강한 삶이란 일상 속 만연한 고통과 고단함을 견디기 위해 사람들이 막연히 바라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닐는지. -178쪽
질병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논리가, 인과응보라는 교훈이 적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질병은 우리의 몸을 침략하는 적도, 편안한 일상을 뒤흔드는 공포의 대상도 아니다. 질병은 그저 질병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일상의 존재다. -179쪽
이제 중년이 된 나도,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는 엄마도 늘 아프거나 덜 아픈 상태를 수시로 오간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건강과 질병의 두 왕국이 있다면 이들 사이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왕국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이제는 질병이 있는 상태가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의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새로운 증상이 나타난다면 노래 한 구절을 흥얼거리며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두려움이란 녀석을 차분히 앉히고, 병에 대해 상상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두 눈 부릅뜨고 마주 보면 될 일이다. 나이 들면 아니, 살아있으면 아픈 것이 당연하다는 진리를 읊조리면서. -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