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불확실성의 바다와 인간의 아름다움,
기억과 꿈이 주는 힘에 대하여
에디스코의 일러스트 고전 명작 시리즈 두 번째 책, 『노인과 바다』가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20세기 미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대표 소설로,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통해 퓰리처상 소설부문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필독서로 널리 읽히고 있는 이 작품이 전 연령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에디스코의 『노인과 바다』에는 일러스트와 영어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특히 ‘고전’ 하면 떠오르는 무게감에서 벗어나 전 연령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밝고 생동감 있는 스타일의 일러스트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일러스트 작업에는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 <위 베어 베어스: 곰 브라더스>,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 <더 그레이트 노스>, <프린세스 스타의 모험일기>, <스쿠비두>, <파워퍼프걸>, <레귤러 쇼> 등 다수의 작품에서 한국 OEM LAY- OUT / KEY-ANIMATION 작업을 한 애니메이터가 참여했다.
불확실성의 바다와 인간의 아름다움
“그는 항상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불렀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바다를 사랑할 때 부르는 말이었다. … 그러나 몇몇 젊은 어부들, 낚싯줄을 띄우기 위해 부표를 사용하거나 모터보트를 가진 그런 젊은 어부들은 상어 간으로 많은 돈을 벌었을 때 바다를 남성 명사인 ‘엘 마르(el mar)’라고 부른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 혹은 경기장 심지어 적으로도 부른다. 그러나 노인은 항상 바다를 여성으로, 호의를 베풀거나 베풀지 않는 어떤 존재로 여겨 만일 바다가 거칠고 악한 행위를 했다면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_ 『노인과 바다』 본문 중에서
인간의 삶은 바다를 닮았다. 바다는 풍요롭지만, 날씨가 바뀌면 언제든 사납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공간이다. 그 바다에서 평생을 일해온 노인은 아주 ‘단순한 사람’이다. 또한 노인은 자신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평범함을 부끄러워하거나 자부심을 잃지도 않는다.
단순하다고 해서 노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수심에 정확히 미끼를 드리우고, 무엇보다 자신의 작업에 확신을 가져야만 행운의 여신이 손을 내밀어 줄 거란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노인의 단순한 성격은 그가 바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노인의 생각을 잘 드러내 준다. 노인은 바다를 경쟁자나 적으로 상정하는 다른 어부들과 달리 때때로 ‘호의를 베풀거나 베풀지 않는 그런 불확실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살라오’(가장 불운한 사람)라고 불릴 정도로 불운한 상황을 맞이한 ‘지금’을 견딜 수 있다. 지금은 바다가 베풀지 않는 시기이므로, 그는 베풀지 않는 바다의 영향하에 있는 것일 뿐이라고.
오랜 시간 바다에서 생활했던 그는 거대한 물고기가 풍기는 피 냄새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미래의 패배를 단정짓거나 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매 순간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존재는 노인의 말마따나 “죽을 순 있어도 무너질 순 없는” 법이기에, 이 단순한 행위는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고기를 놓쳤다는 경제 논리에서 도약해 인간의 행위 자체가 가진 존엄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열어준다.
기억과 꿈의 힘, 문학
이렇듯 모든 것이 불확실한 공간인 바다에서 노인을 끝내 버티게 한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노인의 기억이다. 물론 과거의 기억은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그저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억은 기적과도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기억은 노인이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고 상어 떼와 싸우는 내내 현재화된다. 카사블랑카 선술집에서 부두에서 가장 강한 흑인과 팔씨름을 했던 기억이나 소년을 그리워하는 마음, 해변을 어슬렁거리며 내려오는 사자 꿈은 불확실성 앞에서 투쟁하는 노인의 정신을 보호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도우며 현실의 삶을 지탱해 준다.
“그 후에 긴 황금빛 해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둑해지자 첫 번째 사자가 해변으로 내려왔고 다른 사자들도 왔다. 배가 닻을 내리고 있는 곳에서 그는 저녁 바다의 미풍을 느끼며 뺨을 뱃머리 판자에 대고 있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자를 보기 위해 기다렸다. 그는 행복했다.”
_ 『노인과 바다』 본문 중에서
바로 이 기억과 꿈이 가진 힘을 우리는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허구이지만 현실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그 속에 숨어 있다. 노인의 기억이 그러했듯 문학 역시 우리의 정신을 보호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도우며 우리가 올바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한다.
노인이 바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고작 물고기의 앙상한 뼈임에도 『노인과 바다』가 절망에 맞선 인간 정신의 승리라고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노인이 바다에서 건져온 앙상하지만 아름다운 물고기의 뼈는 한 인물의 전 생애이며 동시에 문학의 은유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