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29첫 승차
내일이 첫 승차라고 생각하자 잠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초등학 교 때 소풍 전날에 기대돼서 잠을 설친 것과는 달랐다. ‘손님이 말 하는 장소를 모르면 어쩌지’라든가, ‘이상한 손님과 엮이면 어쩌나’ 라든가, 나쁜 상상만 하게 되었다.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동안에 ‘그래봤자 죽지는 않겠지’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나는 이제 쉰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경 험을 하며 단맛이고 쓴맛이고 다 봤지’라고 대담해졌다.
P. 33처지에 대한 이야기
우리 같은 소규모 도매상은 개인상점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유통업계의 변혁으로 거래처 였던 개인 상점의 대부분이 도태되었다. 이윽고 유통까지 끌어안은 편의점이나 마트가 주류가 되어 도매상 무용론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영세한 도매상은 도태되어 필요 없게 되는 것도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렇게 한창 쇠퇴하던 차에 맞이한 게 거품 경제였다. 아버지는 가업이 설 자리를 잃어가자 주식을 시작해 거금을 손에 넣었다. 맨 처음 몇 년 동안 주식투자는 잘되었다. 아니,아버지가 한 주식투자가 잘풀린 게 아니었다. 누가 해도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P. 53성적 우수자들
택시기사가 되어 처음 몇 개월 동안 휴일에 시내버스를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길을 외웠다. 시내버스는 같이 일을 시작하고 1년 동안에는 영업 수익이 늘 3만 엔대여서 얄미운 사무직원에게 신입사원 몇 명과 함께 비교당하며 ‘턱걸이를 면한 신세’라고 놀림받았다. 2년 째에 들어서자 나름대로 아이디 어를 더하다보니 하루 영업 수익이 다소 상향되었으나 사내 평균 수익이 4~5만 엔을 왔다 갔다 해서 절대 자랑할 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당시 나의 목표는 하루 근무로 영업 수익 5만 엔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P. 63그쪽 세계의 사람
명백하게 ‘그쪽 세계’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들고 있었다. 밤 11 시를 넘긴 아사쿠사의 도로 뒤편이었다. 본래라면 모르는 척하고 그대로 지나가고 싶었으나 눈이 정확하게 마주치고 말았다. 이래서는 시선을 돌릴 수도 없었다. 정차해서 태웠다. 평소대로 공손하게 응대했다. 그가 말한 장소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술집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가 “잠시 갔다가 올 테니까 여기서 딱 기다려. 도망칠 생각 마. 회사랑 이름 외웠으니까”라고 운전기사증을 확인하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