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집에서 멀어지기(열다섯의 방황, 집에서 멀어지기 /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선우에게는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언니가 있다. 어렸을 때는 동네 아이들이 언니를 놀리면 언니 대신 주먹을 쥐고 화도 내면서 언니를 지켰다. 하지만 점점 언니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딜 가든 눈에 띄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언제나 전전긍긍해야 하는 현실이 짜증 난다. 태권도장을 하는 엄마와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접은 채 집안일을 하며 언니를 돌보는 아빠도 못마땅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선우의 유일한 꿈은 '독립'이다. 날마다 학원 가방을 싸면서 “독립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문처럼 되뇐다.
어릴 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가족의 존재감. 내가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들. 선우뿐일까? 이 책은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더 넓게는 평범한 우리네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살 수도 있지만 열다섯 인생에게는 걸림돌일 수도 있다. 간섭하고 자꾸만 붙잡아 두려는 가족, 그래서 벗어나고 싶고 멀리 떠나고 싶은 꿈을 꾼다. 소설 속 선우처럼. 이 이야기는 “모든 게 구질구질하고 귀찮았다. 나는 왜 이런 집에 태어났을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선우는 뜻밖의 사건으로 가출을 하고 만다. 독립이 아니라 가출! 추운 겨울 외투도 걸치지 않고 집을 나온 선우는 갈 곳이 없다. 그 순간 친구 혜주가 보낸 문자 한 통.
“어디야. 내가 가고 있어. 어딘지 모르지만 가고 있어.”
선우는 혜주가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무엇이든 야무지고 착한 혜주한테서 질투를 느끼기도 했는데, 혜주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늘 혼자서 하루하루 '존버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우는 혼자가 아니었다. 혜주 말고도 또 한 명의 친구 수호가 있었고, 언제 가도 맛있는 떡볶이를 해 주는 동네 친구 은옥할머니도 있었다.
그리고 낯선 친구 온유. 온유에게도 장애인 형이 있다. 온유는 '나도 네 마음 알아' 하며 자꾸만 손을 내민다. 온유가 보낸 생일 선물 '이선우 탐구 영역' 노트까지. 자꾸 숨고 달아나려고만 했던 선우한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꿈을(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선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한 축에는 선우 아빠가 있다. 가수가 꿈이었지만 몇 번 사기를 당하고 큰아이 선희가 자폐스펙트럼이란 걸 안 뒤에는 엄마 대신 집안일을 하며 선우와 선희를 돌보고 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엄마는 '김 관장'이지만 아빠는 그냥 '선희 아빠'일 뿐이었다. 그러던 아빠가 느닷없이 방송국 가수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노래 앞에서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아빠의 도전이 선우는 낯설다. 그리고 아빠의 가수 도전으로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지는 게 불편하기만 하다.
다 큰 어른인데도 꿈이 있는 아빠, 춤을 추는 혜주와 야구 선수가 꿈인 수호를 바라보며 선우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늘 꼭꼭 숨으려고만 하다 진짜 자기 마음도 모른 채 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곁에 있는 식구와 친구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선우는 세상에 새롭게 닻을 내린다.
어디든 멀리 떠나려고만 했던 선우가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그 길을 함께 따라가는 여정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고 감동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선우를 응원하게 되고, 그 응원이 내게 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가족들과 갈등 때문에 괴롭고, 친구 때문에 외로운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빚어내는 이야기가 조금은 덜 외롭고, 따스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교실에서 학생들과 장애와 차별, 갈등과 관계,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마중물이 되어 줄 것이다.
작가의 말
발달장애가 있는 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기다리는 것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쓰는 시간은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선희의 세계를 공감하기까지, 흔들리고 가라앉는 선우의 마음에 다가가기까지….
어느새 선우네 가족이 내 마음 깊이 들어왔다. 선우네 가족이 조금 더 편안하게 외식도 하고 마트도 갔으면 좋겠다. 선희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은 따뜻함으로, 놀란 시선은 이해로 바뀌어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씩 변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