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면서도 낯선 제자들의 이야기
모처럼 책이 주는 기쁨으로 충만하다. 대부분의 정보가 짧은 동영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글이 갖는 힘이 있다는 걸 되새겨주는 책이다. 첫 장을 넘기면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베드로의 목소리를 마주한다. 아끼는 동역자에게 전하는 베드로의 마지막 편지인데 모닥불 앞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다. 어렵게 짬을 내어 독서를 하더라도 들고 있기 힘든 책이 있는가 하면 바쁜 일정에 쫓기면서도 도무지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은 단연코 후자의 기쁨을 대변한다.
저자인 이진경 교수는 복음서를 전공한 학자이지만 학문을 변명 삼아 지루함과 건조함을 견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극과 재미에 길들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오늘의 영혼을 붙잡아 책 속에서 뛰놀게 한다. 아마도 대학에서 학생들과 만나 대화하기를 즐겨 하는 저자의 따뜻하고 친절한 일상이 고스란히 문장 속에 담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열두 제자의 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익숙한 건 우리의 일상을 닮았기 때문이고, 낯선 건 그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수제자인 베드로와 예수님이 아끼셨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얽힌 몇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들뿐 아닌가. 그마저도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할 뿐 그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게을렀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찰스 거킨의 표현처럼 ‘살아있는 인간문서’로서 제자들을 조명한다. 복음서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제자들의 말과 행동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풍성한 초대교회 전승과 자료를 활용하여 그들의 삶을 통전적으로 이해하게 돕는다. 놀라운 건 치밀하고 학문적인 고민의 결과물이 매우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마치 머릿속에 들어와 내가 가진 질문을 알고 있는 것처럼 책을 읽으며 떠오른 호기심들을 낚아채듯 해결해준다.
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는데도 부활 이후에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의 일인자 자리를 제자명단에도 없던 야고보에게 순순히 내어준 걸까? 예루살렘에 순례 온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굳이 빌립을 찾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유다는 정말 돈만 밝히는 제자였을까? 도대체 바돌로매와 다대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예수님 대신 살게 된 바라바의 이름도 예수였다는 말이 사실일까?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분명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답하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탄탄한 논리, 성실한 근거에 감탄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보여주는 제자의 삶과 결단, 헌신과 변화의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 사람도 닮은 이가 없다. 갈릴리 호수에서 배와 일꾼을 갖고 크게 사업을 하던 야고보 형제도 있었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이도 있었다. 사리에 밝은 이도 있었고, 도무지 말씀을 못 알아듣는 둔한 이도 있었다. 로마의 앞잡이인 세리도 있었고, 로마와 싸우던 열심당원도 있었다. 도무지 하나 되기 어려운 다양한 인간군상의 조합이다. 그렇게 우리를 닮았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희망이다. 그들이 변화되어 쓰임 받았다면 우리도 못할 바 아니다. _ 김영석 목사(배화여자대학교 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