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이가 주고받는 대화
불평하고 투덜대는 아이에게 엄마가 전하는 사랑과 존중의 언어
오늘날 인간이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된 데에는 언어가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인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회를 세우고 문명을 일으켰다. 언어는 우리가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기본적 기능 중 하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기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언어 환경에서 조금씩 조금씩 말을 배우고 더 자라서는 글을 배우고 언어 능력을 습득해 나간다. 그러니까 아기의 옹알이를 받아주고, 아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일러주고, 집안 인테리어를 망치면서까지도 ㄱㄴㄷ 포스터를 붙이는 엄마의 정성과 애정에는 알고 보면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전략이 압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엄마와 아기의 대화 속에는 인간의 우주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림책 『엄마소리가 말했어』는 바로 그 엄마와 아이의 대화를 이야기 형식으로 가져온다. 아이가 말하고, 엄마가 응답하며, 아이의 말과 엄마의 말이 차례로 이어지고 교차한다. 그런데 아이의 말은 죄다 불평불만에 자기 부정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난 내가 싫어,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어, 난 못난이인가 봐. 사실 아이들의 자기 비하나 열등감은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맞닥뜨리는 통과의례에 가깝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멋진 사람들이 가득하고 미디어는 그런 사람들을 미화하고 부풀려서 내보내기 마련이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감정 코칭’ 이론에 의하면 아이의 부정적 감정도 충분히 공감해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따라서 아이가 투덜투덜 내뱉는 부정적 언어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여기에 따라붙는 엄마의 말이 위로와 위안의 메시지이며, 애정과 존중을 담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네가 있어서 세상은 아름답고 특별하단다, 힘내, 사랑해.
그러고 보면 언어는 언제나 정서와 감정을 동반한다. 옹알이 시절부터 엄마와 아이는 눈빛과 마음과 온기를 함께 주고받아 왔다. 말문이 트인 아기가 어휘력을 늘려 나가는 시기는 감정의 분화가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어휘 하나하나를 익히며 자기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싫고 짜증나고 슬프고 서운하고 안타깝고 지겨운 모든 순간, 바로 옆에 엄마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이 되는 일인지. 『엄마 소리가 말했어』는 엄마와 아이의 대화를 통해 곧 엄마와 아이가 주고받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질 수 있는 다양한 정신적 관계(애정, 친절, 선의, 우정 등등)는 엄마와 아이 사이의 사랑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폴 디엘(『사랑의 욕구』)의 말을 참고한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교육과 돌봄은 또 없을 것이다.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한글 인형 그림책
『엄마소리가 말했어』는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을 언어유희를 이용해 아이 소리와 엄마 소리로 풀어낸 다음, 자음과 모음이 어울려 언어가 되는 과정을 대화로 구성했다. 이때 아이 소리는 다시 한글 자음 하나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기역이, 니은이, 디귿이 등등의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같은 초성으로 시작하는 부정적 언어를 나열하며 투덜거린다. 그러면 엄마소리가 이번에는 똑같은 초성으로 시작하는 긍정적 언어를 제시해준다. “가난해, 그저 그래”처럼 기역이 들어간 말 중에는 좋은 말이 없다고 불평하는 기역이에게 “기역이 있어야 길이 있고 걸을 수 있고 같이 갈 수 있다”고 일러주는 식이다. 엄마소리는 맨날 받침으로만 쓰여서 속상한 리을(ㄹ)에게는 앞에 있어야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는 조언도 해주고(리을이 있어야 부를 수 있고 갈 수 있고 머물 수 있으니까), 너무 세 보일까 봐 의기소침한 티읕(ㅌ)에게 타고난 것은 다 다르다며 토닥토닥 위로의 말을 건넨다.
불평불만과 위로, 자기 비하와 인정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대화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것은 이은 작가가 만든 헝겊 인형들이다. 『엄마소리가 말했어』에서는 ㄱㄴㄷ 자음들의 울상도, 엄마소리의 따뜻한 메시지도 헝겊 인형으로 만들어 그림을 대신했다. 잔털이 살아 있는 헝겊의 질감과 폭신한 인형의 양감이 엄마와 아이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표현해준다. 헝겊 인형들은 ‘소리’라는 추상적 양식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의인화해 우리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림책 속에서 히읗(ㅎ)은 이렇게 말한다. “난 너무 변덕쟁이 같아. 마음이 자꾸 변해.” 히읗은 웃음소리에도, 울음소리에도 들어가니까 말이다. 하지만 원래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 변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리지”라는 엄마의 다독임처럼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의 변화도, 부정적 언어의 그늘도 아이에게는 다 필요한 과정이다. 말하자면, 다 크느라 그런 것이다. 이렇듯 『엄마소리가 말했어』는 말이 가진 힘과 마음이 갖는 가능성을, 아이의 잠재력과 엄마의 사랑을 갈피마다 꼭꼭 여며놓은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이제 막 글자를 익히는 아이부터 어휘력을 늘려나가는 시기의 아이까지, 폭발적인 감정의 변화를 감당하느라 헤매는 청소년부터 심리적 치유를 필요로 하는 어른들까지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