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뒷방에만 있었다. 온라인몰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AI 알고리즘이 상품을 구분하고, 모빌리티 서비스를 사용하면 AI 알고리즘이 가까운 택시를 배정해준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다르다. 기계가 인간 고유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여 결과물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인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19쪽, 한국어판 서문)
2020년에 미국의 AI 스타트업들은 투자금 약 380억 달러를 유치했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AI 스타트업에 몰린 투자금도 각각 250억 달러와 80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정부가 공히 AI를 연구하고 그 성과를 보고하는 고위급 위원회를 조직했다. 이제는 정치 지도자와 기업 경영자가 AI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최소한 AI를 저마다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운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선언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22쪽, 머리말)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AI가 이해할 수 없고 신기한 기술로 느껴지겠지만, 대학·기업·정부에서 AI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법을 연구해 일반 소비자용 제품에 점점 많이 도입하는 만큼 이미 많은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AI를 개발하는 사람은 많아졌어도, 사회적·법적·철학적·정신적·윤리적 측면에서 AI가 인간에게 끼칠 영향을 탐구하는 사람은 여전히 위험할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48쪽, 1장 현주소)
정보에 맥락이 더해질 때 지식이 된다. 그리고 지식에 소신이 더해지면 지혜가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신이 생기려면 홀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인터넷은 이용자에게 수천·수만·수억 명의 의견을 쏟아부으며 혼자 있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홀로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면 용기가 위축된다. 용기는 소신을 기르고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며 특히 새로운 길, 그래서 대체로 외로운 길을 걸을 때 중요하다. 인간은 소신과 지혜를 갖출 때만 새로운 지평을 탐색할 수 있다. (73~74쪽, 2장 그간의 궤적: 기술과 사유의 역사)
생성형 AI를 만들 때 주로 사용되는 훈련 기법은 상호보완적인 학습 목적을 가진 두 신경망을 경쟁시키는 것이다. 이를 ‘생성형 적대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이라고 부른다. GAN은 잠재적 출력을 생성하는 ‘생성망’과 조악한 출력의 생성을 막는 ‘판별망’으로 구성된다. 비유하자면 생성망은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판별망은 유의미하며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선별한다. (95쪽, 3장 튜링의 시대에서 현재, 그리고 그 너머로)
자유로운 사회가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콘텐츠를 생성·전송·필터링하는 AI 기반 네트워크 플랫폼에 의존하고 그 플랫폼이 비록 고의는 아닐지언정 혐오와 분열을 조장한다면, 그 사회는 지금껏 없었던 위협에 직면함에 따라 지금껏 없었던 방식으로 정보환경을 단속해야 한다. 이는 긴급한 문제지만 AI에 의존하는 해법은 그 자체로 중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인간의 판단과 AI에 의한 자동화를 저울의 양쪽에 놓고 항상 올바른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139쪽, 4장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
지금까지 군민 양용성, 확산성, 강력한 잠재적 파괴력을 모두 갖춘 기술은 없었다. 철도는 상품을 시장으로, 군인을 전장으로 수송하지만 잠재적 파괴력이 없다. 원자력 기술은 대체로 군민 양용이고 가공할 파괴력을 만들어내지만, 복잡한 인프라가 요구되기 때문에 정부가 비교적 확실히 통제할 수 있다. 엽총은 널리 보급됐고 군대와 민간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으나 성능의 한계 때문에 전략적 차원의 파괴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AI가 이 패러다임을 깨트린다. (193쪽, 5장 안보와 세계질서)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 칭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 이래로 이성과 함께 인간의 주요한 특징으로 꼽힌 것이 복잡한 사회를 형성하고 협력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각 사회에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원칙들이 기본적으로 존재한다. 그 원칙들에 의거해 정당한 수단으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정당성을 무시하고 질서를 잡으려 한다면 폭력에 불과하다. AI시대에도 중대한 판단을 하는 주체는 올바른 자격을 갖추고 이유를 제시할 수 있으며 익명이 아닌 인간이어야 한다. (225쪽, 6장 인간의 정체성)
지금은 인간의 지능이 인공지능과 연합해 국가적·대륙적·세계적 차원의 일을 도모하는 시대다. 이 변화를 이해하고 그 길잡이가 될 윤리체계를 마련하려면 과학자와 전략가, 정치인과 철학자, 성직자와 CEO 등 각계의 노력과 중지가 모여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 차원에서도 그 같은 노력이 요구된다. 이제 우리가 인공지능과 어떻게 협력해서 어떻게 현실을 탐구할지 규정할 때다. (257~258쪽, 7장 미래)
우리는 사람들이 생성형 AI의 상호작용성에 선뜻 의문을 제기하도록 정교한 변증법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의문을 던지는 목적은 단순히 AI의 답변을 정당화하거나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사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연합된 회의주의 하에서 AI를 체계적으로 검사해 그 답변이 과연 온전히 믿을 만한지, 혹은 어디까지 믿을 만한지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무의식적 편향을 의식적으로 완화하며 엄격히 훈련하고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271~272쪽, 부록: 챗GPT는 지적 혁명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