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안데르센상 수상자 우에하시 나호코의 최신작!
향기를 통한 식물의 커뮤니케이션을 소설에 녹여내다
향기로 만물을 읽어내는 살아있는 신 ‘향군’과 그가 신의 나라에서 가져온 ‘오아레 벼’. 우마르 제국은 그 둘의 힘으로 다른 나라를 종속시키며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장해도 겪지 않는다고 알려진 오아레 벼에 어느 날 역사서의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병충해가 발생하자 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편 생물들이 내뿜는 ‘향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후각을 지닌 소녀 아이샤는 제국 서쪽에 위치한 서칸탈의 왕 주쿠치에 의해 생명을 위협받는다. 제국의 시찰관 마슈는 아이샤의 능력을 알아차리고 위험한 도박 끝에 그녀를 구해낸다. 아이샤는 마슈의 집안이 운영하는 농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신분을 숨긴 채 생활하고 있는 향군 올리애를 만나 보필하게 된다. 특별한 후각이라는 공통분모로 친근감을 느끼며 올리애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할 무렵,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진다. 이윽고 아이샤는 마슈와 올리애로부터 제국을 둘러싼 비밀을 듣게 되는데…….
2014년 《정령의 수호자》로 국제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작가 우에하시 나호코. 《香君 : 향기의 소리를 듣는 자》는 그녀가 새로운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서는 《사슴의 왕》이후 7년 만에 선보인 작품이다.
명실상부한 일본 아동문학계의 거장이자 저명한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풍부한 상상력 외에도 전문가적 소양을 십분 활용하여 작품을 창작해왔다. 저자 후기에 의하면 본 작품은 식물이 뿌리나 잎줄기에서 특정한 화학물질을 분비해 이웃하는 다른 종의 생장, 발아, 번식에 영향을 주는 작용인 ‘알렐로퍼시(allelopathy)’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작중 아이샤가 감각하는 ‘향기의 소리’는 이 ‘알렐로퍼시’를 문학적으로 구현한 소재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식물과 생물의 존재 방식이 그려지도록 한 저자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우마르 제국’ 외에도 ‘동/서칸탈’, ‘리그달’, ‘오고다’ 등 다양한 국가가 등장하는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 때에도 전문가의 자문에 기반해 묘사함으로써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저자는 《香君 : 향기의 소리를 듣는 자》를 통해 전문가적 소양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되 소설 작품이 가져야 할 흥미로움 또한 놓치지 않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작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은유
다양성이 부재한 산업의 위험을 예리하게 꼬집다
우마르 제국은 오아레 벼라는 특별한 작물로 세력을 확장해왔다. 다른 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하고 수확량이 많은 오아레 벼는 제국뿐 아니라 번왕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오아레 벼를 심은 곳 주변에는 다른 작물이 자라지 못하게 되지만 오아레 벼 하나만으로도 상당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까닭으로, 사람들은 점점 오아레 벼만을 기르게 되었다.
전 대륙이 하나의 품종에 의존하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에 비춰보아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우수한 종과 경제적인 재배 방식 위주로만 농사 및 경영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향은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품종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 대표적인 예로 바나나가 있다. 바나나에 피는 곰팡이병인 ‘파나마병’은 1950년대에 처음 나타나 산업을 크게 붕괴시켰고 당시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품종인 ‘그로 미셸(Gros Michel)’을 단종시키기도 했다. 이후 파나마병에 대한 내성을 키운 품종인 ‘캐번디시’가 그 자리를 대체했지만, 파나마병의 변종인 ‘TR4(Tropical Race 4)’가 퍼지면서 이 또한 멸종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감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아일랜드를 덮친 식량난과 ‘감자 역병균’으로 인한 ‘대기근’ 역시 한 작물에 과하게 의존하는 것이 가진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香君 : 향기의 소리를 듣는 자》의 우마르 제국 역시 오아레 벼에 닥친 병충해를 시작으로 점차 더 큰 재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역시 가지각색이다. 제국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사람, 경제적 손실만 계산하고 양보하지 않으려는 사람, 당장 눈앞에 닥친 사건이 아니기에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사람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공존한다.
저자는 이런 혼돈 상태를 어떠한 압도적인 권위를 내세워 종식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향군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작품의 중심에 두고 있지만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몫이 된다. 인간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계에 직면하는 순간이 오지만 그 한계를 짊어지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면서 나아가는 것. 저자는 압도적인 재난을 헤쳐 나갈 실마리를 바로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배우고, 관찰하고, 상상하며, 지식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서로 지지한다. 그런 것이 이 가혹한 세계 속에서 우리를 어떻게든 생존시켜 온 것이 아닐까요.” (저자 인터뷰 중)
저자가 《香君 : 향기의 소리를 듣는 자》를 통해 보여준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면서, 각기 다른 재난의 전선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을 향해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 지식의 차별 없는 공유, 타인에 대한 관심과 격려가 퍼져나간다면 우리는 비록 “가혹한 세계”일지라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유일하다시피 한 특수한 후각을 지닌 주인공 아이샤가 태생적인 외로움을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