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 높고 높은 굴뚝은 위대해 보였다. 나는 언젠가 그 꼭대기에 기어 올라가 높은 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베이징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조금만 더 치켜들면 아프리카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굴뚝은 단연 최고로 높았을 뿐 아니라, 굴뚝을 얼굴이라고 치면 뺨과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에 보석처럼 큰 스피커들을 잔뜩 달아놓았다. 그 소리는 여름의 빗소리처럼, 겨울의 눈보라 휘몰아치는 소리처럼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 장난기가 발동한 좐터우가 스피커 속의 낭랑한 여자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리즈 씨는 주목하세요. 리즈 씨는 주목하세요. 이 방송을 듣는 즉시 개처럼 꼬리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댁의 아궁이에 불이 났습니다! 댁의 집 아궁이에 불이 났습니다! 지금 댁의 집 아궁이에서 불이 나서 이불도 타고 있고 돼지우리도 불타고 있습니다! 지금 빨리 돌아가 불을 끄지 않으면 댁은 알거지가 될 것입니다. 댁은 곧 알거지가 될 것입니다!”
⚫ 수레 위에는 아줌마가 일 년이나 먹이고 키운 돼지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아줌마는 걷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눈물을 닦는 아줌마 귀에 돼지가 살이 포동포동하게 쪄서 예쁘다는 찬사가 들렸다. “세상에, 돼지를 어쩜 저렇게 포동포동 잘 키웠을까. 족히 이백팔십 근은 나갈 거 같아 보이네.”
아줌마는 그 소리에 바로 눈물을 멈추고 소리쳤다. “아니 이백팔십 근이라니! 삼백 근도 넘는다고요!”
아줌마는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무게 잴 때 확인해 봐요!”
몇몇 사람들은 정말 수레 뒤를 따라 돼지 무게 재는 곳까지 들어왔다. 몇 사람이 힘을 합해 돼지 무게를 달아보니 삼백 근이 넘자 리즈 엄마는 득의양양했다. “나는 매일 이 녀석이 살찌는 소리를 들었다니까요!”
⚫ 어느 날, 그 검은책을 비롯해 우리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빼앗겼다. 농장 광장에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누군가 거기에 불을 붙였다. 아버지의 검은책이 타고 있을 때 아버지는 현장에 계셨는데, 누군가 아버지를 잡아다 머리를 밀어 버렸다. 아버지는 안간힘을 쓰며 그들에게 말했다. “책만 태우면 될 것이지 왜 남의 머리까지 밀어요!”
머리 미는 사람이 말했다. “이런 검은책은 귀신이나 쓰는 거니까. 귀신이 한밤중에 몰래 와서 쓰는 거잖소. 그러니 이렇게 머리를 밀지 않으면 당신이 저 검은책을 쓴 귀신이라는 걸 알 수가 없지.”
⚫ 좐터우는 자기 아버지가 겨울에 마차를 몰고 하얀 눈 덮인 농장을 지날 때 마차 위에 앉아서도 먹이를 찾아다니는 쥐새끼들을 채찍으로 때려죽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와 리즈는 좐터우가 하는 말을 듣기만 했을 뿐 직접 보지는 못했다. 사실 좐터우도 직접 본 적이 없는데 본 것처럼 허풍을 떨었다. 녀석은 또 여름이면 자기 아버지가 채찍으로 얼굴 주변에서 윙윙거리는 모기를 잽싸게 때려잡아 손에 올려놓고, ‘숫놈이군!’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 뤼 단장은 무너진 무대 바닥 사이로 떨어졌다. 몇 초가 지나 우리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실감했을 때 돈강말은 이미 무너진 단상 위에서 뛰어내렸고, 사람들은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돈강말이 눈 덮인 담장을 뚫고 집회장 밖 머나먼 곳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굴을 심하게 긁힌 다뤼의 아버지는 총은 든 군인들에게 빨리 지프차를 타고 가서 돈강말을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생포가 안 되면 총으로 쏴 죽여도 된다고도 했다.
⚫그 애 아버지는 사람들을 시켜 아버지의 책들을 모두 묶어 마차에 실을 것을 명령했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물었었다. “마차 위에 있는 책이 당신이 갖고 있는 전부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양양의 아버지가 으름장을 놨다. “만약 또 어디 숨겨둔 금서가 발견되면 당신 그땐 끝장인 줄 알아!”
나는 그때 아버지의 고통스러워하는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소장했던 모든 책과 자신이 쓴 책이 마차에 실려 가는 광경을 보고 절망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탁상시계 옆에 초를 놓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탁상시계에게 말했다. “난 이제 남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거야.”
절름발이 탁상시계는 나를 향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탁상시계도 생명이 있고, 심장이 뛰고 있다고 느꼈다. 탁상시계의 눈은 촛불에 비추어져 밝게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장젠서, 아니 꽈배기 아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부터 차근차근 아재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그해 마지막 날 아재가 나를 위해 작은 목욕탕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색시를 얻고 싶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얘기도 썼다.